조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도 고질병을 못 고친다. 인조가 그랬다. 알량한 왕좌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볼모로 잡혀있다 8년 만에 귀국한 세자 소현세자보다 말이다. 역사서(조선왕조실록)에는 “세자는 병이 난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만약, 누군가 그 현장을 보았다면? 여기 '소현세자의 최후‘를 목격한 어의(침술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사람 ’주맹증‘이란다. 주맹증 침술사 경수를 연기한 류준열에게 영화와 영화 속 인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화 <올빼미>는 23일 개봉한다.
Q. 앞이 (잘) 안 보이는 인물을 연기했다. 힘들었을 것 같다.
▶류준열: “물론 그 동안 고생을 안 하고 찍은 영화는 없다. 이 영화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찍었다. 스케줄 정해지는 대로 찍었다. 끝나고 바로 이어 작업한 작품도 없었다. 제작비가 작은 작품이고, 사극이라 장소이동도 많지 않았다. 제가 집중력이 좀 부족한 편인데 짧은 시간 찍다보니 몰입감이 있어 좋았다. 시사회 평이 좋아 다들 분위기가 좋다.”
Q. 밝은 낮에는 앞이 거의 안 보이지만, 밤에는 흐릿하게 사물이 보인다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류준열: “제가 게으른 편이기도 해서 주맹증에 대한 연구는 많이 못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연기에 녹여내려했다. <올빼미>는 다큐가 아니어서 개연성이나 고증, 이런 것 보다는 한 인물의 설정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힌트 얻고자 했지만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긴 시간을 같이 생활해야할 것이다. 가까운 사람끼리도 깊은 속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이렇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연예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내게 많이 물어보더라. 관객 분들도 이 정도를 좋아할 것 같다. 진짜냐 가짜냐 보다는. 영화보실 때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연기하려고 했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경수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
▶류준열: “처음 대본 봤을 때 짧아서 좋았다. 80페이지 정도였다. 난 90페이지 넘어가면 힘들다. 난독도 있고. 짧은 대본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본의 첫 인상이나 제목보다는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많은 배우들이 공감할 것 같다. 짧은 대본이지만 박진감과 몰입감이 대단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맹인이 뛰어다니고 하니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실제 그렇게 뛰어다니는 분들도 있다. 흐릿하게 보이는 분들도 있단다.”
Q. <응답하라 1988>에서 함께 연기한 최무성 배우가 어의 이형익을 맡아 날카롭게 부딪친다.
▶류준열: “저는 기싸움을 못 하는 편이다. 그리고 선배도 그런 타입 절대 아니다. 선배는 푸근하고, 농담도 재밌게 하신다. 좋은 형을 알게 된 작품이다. 큰 화면으로 봤을 때 악역의 강렬함이 더 있어 보이더라. 내가 생각했던 인물 설정과 다른 면이 있었다. 그 커다란 몸으로 왕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 초조해 하는 것이 재밌었다.”
Q. [외계+인]에 이어 [올빼미]에서도 사극풍이다. 결도 다르고, 장르적 요소도 다르다. 연기할 때 신경 쓴 점이 있었다면.
▶류준열: "[봉오동전투]도 사극이다. [올빼미]는 ‘인조실록’을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이다.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알고 보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대본에서 느낀 몰입감이 있다. 하룻밤의 소동 끝에 결말은 어디로 가는지. 감독님과 전화 통화를 많이 했었다. 사실과 허구 사이의 차이를 알면서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연기를 하기 위해서.“
Q.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침을 놓을 때는 어떤 식으로 촬영되었는지
▶류준열: “침을 놓는 장면에서는 대역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환자의 몸, 피부에 패드 같은 안전장치를 둔다. 소현세자도, 유해진 선배 목에 침놓을 때도. 전혀 걱정 안하셔도 된다.”
Q. 인조(유해진)가 경수에게 의심을 하게 된다. 확인하느라 침을 눈 앞으로 확 찌를 듯이 갖다 대는 장면이 있다.
▶류준열: “아, 그 장면. 침을 눈앞에 갖다 댄다. 짧은 침이다. 그걸 CG로 길게 늘여서 눈앞 까지 온 것처럼 찍은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는 많은 안전장치를 한다. 많이 해봐서 무섭지 않았다. 현장은 다들 전문가가 있으니. 선배는 괜히 ‘내 옆에 오지 마!’ 그러셨다. 테크니컬한 준비를 많이 했다. 그리고 한의사 모임에서 현장에 와주셔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
Q. 아역 연기는 어땠나.
▶류준열: “경이로웠다. 저는 저 나이에 논에서 축구나 하고 그랬었는데. 동생 경재로 나오는 아역 배우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시더라. ‘그날 현장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그 아이가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예전엔 연기자 보면 ‘TV에서 봤어요’ 그러는데, 요즘은 ‘형 연기가 좋았다’ 그런다. 세대가 바뀌고 있고, 요즘 애들은 또 다른 탤런트가 가지고 나타나는 것 같다.”
Q. 내의원 의관을 연기한 박명훈 배우는?
▶류준열: “내가 부러워하는 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눈으로 뭔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명훈 선배는 원래 눈이 커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저절로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영화작업에서 도움이 된다. 이 영화를 보시는 관객이 무장 해제될 수 있는 장면이 나온 것 같다.”
Q. 또래 연기자들과의 연기호흡을 어땠는지.
▶류준열: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성철(소현세자), 안은진(후궁 조씨), 조윤서(강빈), 예은이(시종)까지 또래거나 몇 살 어린 배우들까지 다 좋았다. 이들이 캐스팅 안 됐으면 어쩔 뻔 했을까 아찔하다. 이들 때문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찬 영화가 되었다. 같이 연기하면 안도하게 된다. 씬들이 꽤 긴장감이 넘치는데 그분들이 완성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소현세자를 연기한 김성철 배우의 경우 앞에서 잘 가꿔놓아서 뒤에 이어지는 비극을 개연성 있게 잘 연기할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Q. 좋은 배우, 뜻이 맞는 배우와 연기한다는 것은?
▶류준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계속해서 한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이 영광이다. 대본을 받을 때의 설렘이 있다. 이런 작품에 내가 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울컥할 때도 있다. [침묵], [독전], [뺑반] 등 전에 같이 작업했던 스태프들을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뻤다”
Q. 이제 주인공으로 작품을 끌고 가는 위치가 되어간다. 부담감은?
▶류준열: “부담 갖고는 일을 못한다. ‘잘한다 잘한다’ 해야 갈 수 있다. ‘재능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연기는 쉬지 않고 늘 하고 싶다. 단체사진 찍을 때 가운데 오라고 할 때가 있다. 감독과 주연배우가 앉는 자리. 그럴 때 부담이 된다. 사실 잘 튀지 않으려고 끝에 서는 편이다.”
Q. 예전에 출연했던 단편영화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류준열: “당연히 도움이 된다. 학교 다닐 때 독립영화를 찍으며 실수를 많이 했었고, 그게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실수를 많이 하라고 배웠다. 그래야 현장에 나가서는 잘한다고. 독립영화와 실험극을 과감하게 많이 했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했었다. 연기를 잘 해서, 오디션 잘 봐서가 아니라 무척 하고 싶어서였다.”
Q. 해외 스타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류준열: 저도 할리우드키드이다. 기회가 오면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 해외에 나가면 케이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엄청 높다는 걸 실감한다. 내가 찾아나서는 일은 없어도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타란티노 감독 작품 하나 해보고 싶다. 그 분 동양영화 너무 좋아하시니까. 언젠가는 동양배우 필요하지 않을까요?“
Q. 차기작은?
▶류준열: “한재림 감독의 <머니 게임> 한창 찍고 있다. 마무리 단계이다. <머니 게임>도 재미있다. 한 감독님과는<더 킹>도 같이 했었고, 같이 나오는 배우들과 호흡도 너무 좋다. 마치 한 장소에서 합숙 하듯이 즐겁게 찍고 있다.”
유해진, 류준열,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안은진, 조윤서 등이 출연하는 안태진 감독의 <올빼미>는 오늘(23일) 개봉한다.
[사진 =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