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베스트셀러 <남한산성>을 읽고 있으면 분통이 터진다. 임진왜란을 겪고, 정묘호란을 겪었지만 조선의 왕들은, 그리고 도매금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은 절대적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셈이다. 세계사적 - 그래 보았자 중국과 일본과의 역학관계가 전부일 테지만- 시각이 우물 안 올챙이였고, 자기 당파에 대한 우월감은 최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인조는 서인세력이 일으킨 정변 덕분에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을 쫓아낸 그 정변 말이다. 그리고, 13년 뒤 병자호란을 맞이한다.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에라도 도망갔지만 이번에는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영화에서 산성의 민초가 그런다. “아니, 한양성에서 끝장낼 일이지 왕이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서 난리야!”라고.
사료에는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넌 청군이 질풍같이 내달려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의주, 곽산, 정주를 무혈입성한다. 이 소식은 13일 조정에 전해졌고, 어디로 피난가야 하나 예의 그 입씨름을 펼치다가 13일 저녁, 겨우 남한산성에 기어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15일, 성문 밖에 청군 사자가 도착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철기병들이다.
지엄한 조선의 왕이 남한산성에 허겁지겁 기어들어가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영화 <남한산성>이다. 영화는 김훈의 소설에 충실하다. 무척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 47일 동안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은 산성에 갇혀 조선의 운명을 저울질했다. 성문밖에는 청나라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료에는 남한산성 내의 조선군 병력은 최소 1만 2천에서 최대 1만 8천으로 추산하고 있다. 성문 밖에 도착한 청군 병력은 정예 용사 14만 정도였단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영화는 기치를 선명하게 내건 노선 투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최명길은 주화(主和)론자이다. 더 이상 백성의 피해가 없도록,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은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청의 요구를 들어야할 것이다. 청의 요구? 청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다. 조선은 여전히 망해가는 명(明) 중심의 중화주의에 기댄 왕조였기에 오랑캐 나라 청을 받들 수는 없다는 것이 척화(斥和)론자의 주장이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김상헌 예조판서가 주장한다. 물론, 최명길과 김상헌만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온 조정이 둘로 쪼개져서 입씨름이다. 물론, 어전회의의 분위기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다 부질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남한산성의 신하들은 인조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얼어붙은 송파강을 건너, 몰살당할지 모르는 산성에까지 따라 들어온 것이니. 충성과 절개에 대한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의명분’과 ‘실리추구’라는 상반된 관점은 후대의 평가일 뿐이다.
인조(박해일)는 결국, 왕의 옷을 벗고 신하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서문을 걸어 나간다. 그리고 삼전도에 도달해 높게 자리한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한다. 왕은 그때 잠깐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은 덕분에 생명과 왕위를 지킨 셈이다.
그 뒷이야기? 인조가 쓸쓸하게 궁으로 돌아가고, 세자와 충신들이 청으로 끌려가서 곤욕을 당한 것? 그것보다는 50만의 조선 양민이 끌려갔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다.
병자호란 전문가인 한명기 교수의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의 비극이 있은 지 40년이 흐른 1675년. 안단이란 사내가 압록강을 건넌다. 이 사람은 병자호란 때 청군에 붙잡혀 심양으로 끌려가 노비가 된 조선인이다. 청이 마침내 북경을 차지하고 진짜 중원을 평정하자 그도 주인을 따라 북경으로 간다. 줄곧 노비신세였던 그는 주인이 북경을 비운 사이,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고국으로 도망간 것이다. 무려 40년만의 귀향이었다. 힘들게 탈출했지만 의주에서 조선관원에 체포된다. 그리고 다시 청으로 압송된다. 아마 처형당했을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자신의 임금 자리를 보존 받는 대신, 끌려간 조선백성은 저런 대우를 받아야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아니면 세상 보는 눈이 너무나도 좁아 외교력이 떨어지면 백성은 이리된다. 인조는 정말 운이 좋았던 셈이다. 청 입장에서는 조선 ‘왕’ 하나 죽이고, 다른 적당한 피붙이를 그 자리에 두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조우진이 연기한 ‘정명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으랴. 만주족은 만주족뿐만 아니라 여진족, 한(漢)족, 조선족, 몽고족까지 필요하면 다 끌어들여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말이다.
<남한산성> 영화 개봉 후 보인 정치권의 반응이 흥미롭다. “지도자가 못 나서..”, “국제정세를 잘 알아야..”같은 마치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얼핏 보아도 최명길이냐 김상헌이냐의 논리이다. 좋게 보자. 다들 애국애족하는데 있어 표현의 차이일 뿐이리라. 물론, ‘그’ 시점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것이 역사가 되는 순간, 어느 것이 더 나았느냐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고, <남한산성>을 읽고, <남한산성>을 보는 이유일 것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