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구타유발자들>과 <세븐데이즈>, <용의자>로 스릴러에 재간을 보여준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설경구가 치매 걸린 왕년의 연쇄살인범을, 김남길이 그와 마주치는 순경을, 김설현이(AOA의 설현)이 살인범의 딸이자 두 위험한 남자의 연결고리가 된다. 물론, 소설을 읽은 사람은 “어? 그랬던가?”하는 의문이 먼저 들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소설을 읽은 사람도, 읽지 않은 사람도 만족할 만한 영화가 되었다. 원신연 감독은 원작소설의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영화적 재미로 완성시켰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가방 하나를 든 설경구는 안개에 싸인 터널 앞에 서 있다. 살인범의 회한, 치매 환자의 안타까움이 씰룩거리는 설경구의 얼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객들은 그가 오래 전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설경구는 컴퓨터 워드프로세스 ‘한글’에 자신의 살인기록을 남긴다. 딸 설현은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보이스레코더를 선물한다. 설경구는 방금 먹은 자장면, 방금 만난 남자, 방금 떠올린 기억들을 녹음해 나간다. 왜냐하면 얼굴에 경련이 파르르 이는 순간, 조금 전까지의 기억을 잃어버리니 말이다.
관객들은 설경구의 희미해져가는 기억의 조각을 통해 그가 선인인지 악인인지 판단해야한다. 마지못한 살인이었거나, 잘못된 출발에서 시작된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을 선악의 근거에서 무게를 달아야한다. 그런 설경구 앞에 나타난 김남길. 관객들은 김남길의 얼굴 표정에서 충분히 악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된 악인의 모습인지, 설경구가 그려낸 기억의 편린인지를 알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어야 영화가 전진한다!)
원신연영화답게, 영화 후반부는 할리우드 스릴러를 능가하는 충분한 액션씬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킨다. 오랜만에 제 옷을 갖춰 입은 설경구, 김남길 특유의 능글스러운 연기, 그리고, 설현의 부담 없는 캐릭터 동화로 <살인자의 기억법>은 완벽한 연쇄살인마의 혈흔을 스크린에 남긴다. 범인은 ‘그’다. 2017년 9월 6일 개봉/15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