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베카>가 지난 달 10일부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엘리자벳’, ‘모차르트!’의 미하엘 쿤체(대본/가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이 만든 뮤지컬 <레베카>는 2013년 한국에서 초연무대를 가진 뒤 꾸준히 재공연 되고 있다. 이번이 서울에서의 네 번째 시즌공연인 셈이다.
<레베카>는 1940년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흑백영화로 유명하다. 영국에서 활동하던 히치콕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인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레베카>는 1938년 여성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그러니까, 소설,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 만들어진 셈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원작 소설의 구성과 히치콕 영화의 긴장감에 음악과 무대예술을 더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레베카’의 주인공은 레베카가 아니다. 주인공은 작중화자인 ‘나’이다. 수다스러운 미국인 반 호퍼 부인의 개인비서 겸 말동무이다. 어느날 몬테카를로 호텔에서 멋진 남자를 만난다. 막심 드 윈터이다. 얼마 전 아내(레베카)를 사별한 중후한 신사이다. 결국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른다. 이제 드 윈터 부인이 되어 웅장한 멘델리 저택의 안주인이 된다. 그런데, 이 저택에는 뭔가 음습한 기운이 나돈다. 게다가 집사인 덴버스 부인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 정도이다. 시간이 가면서 멘덜리 저택의 어두운 과거와 남편의 숨겨진 비밀, 그리고 레베카의 본성에 접근하게 된다. 실베스터 르베이의 풍성한 음악과 함께.
뮤지컬 <레베카>는 멋진 넘버로 유명한 작품이다. 덴버스 부인의 속삭이는 듯한, 그리고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레베카’와 막심이 절규하듯 부르짖는 ‘칼날같은 그 미소’와 함께 모든 캐릭터들이 각기 내세울만한 자신들만의 넘버가 있다. 이번 시즌 공연에서는 덴버스와 드윈터 부인이 부르는 ‘저 바다로 뛰어’가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듯 하다. (옥주현과 이지혜 공연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소설과 영화를 거치면서 이번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당연 덴버스 부인의 ‘정체성’이다. 히치콕 영화가 나온 지 80년이 되어간다. 1995년 할리에서는 <셀루로이드 클로젯>이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역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동성애 코드를 분석한 작품인데, ‘레베카’에서의 덴버스 부인을 그런 시각으로 평가한 작품이다. 실제로 이 부분은 많이 논의된 장면이다. 집착에 가까운 댄버스 부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영화에서는 덴버스 부인이 침실의 옷장에서 속옷을 어루만지며 몽환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훨씬 노골적인 대사가 나온다.
뮤지컬 <레베카>의 원작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풍성한 음악과 잘 배치된 캐릭터들의 열연, 그리고, 멘데리 저택의 비밀과 폭풍우 치는 바다의 모습,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무대전환이 객석의 관객에게까지 안개 속 비밀을 전해주는 듯하다.
이번 시즌에서는 김선영, 신영숙, 옥주현이 댄버스 부인을, 민영기, 정성화, 엄기준, 송창의가 맥심 역을, 김금나, 이지혜, 루나가 드윈터 부인을 연기한다. 11월 12일까지 공연이 계속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제공=EMK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