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이라면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꼭 가보시라. MBC 건물 맞은편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자리잡고 있다. 영상자료원 지하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연중 끊이지 않고 기획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23일부터는 홍콩특별행정구 설립 25주년을 맞아 영상자료원과 홍콩국제영화제가 '홍콩 영화의 새로운 물결'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장국영의 <연지구>와 주윤발의 <가을날의 동화>와 함께 궁금했던 작품이 하나 소개된다. 이른바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방육평(方育平) 감독의 <반변인>(원제:半邊人,83)이란 작품이다. 1983년의 진짜 홍콩서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바쁘게 생업에 종사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는 청춘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아잉'은 생산가게에서 부모를 돕고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생선 내장을 발라내고, 손님과 흥정을 한다.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그야말로 ‘닭장’같은 아파트를 보게 된다. 열 명이 넘는 가족들이 좁은 아파트에서 부대끼며 산다. 아잉은 좁은 집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남자 친구와도 관계도 소원해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탈출구가 보이는 듯하다. 어느 날 길(砵蘭街)을 걷다 홍콩영화문화센터(香港電影文化中心)에서 사람 구한다는 전단을 보게 된다. 수강료 대신,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무료 강좌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장 선생을 통해 영화에 대한 사랑, 창작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희망을 배우게 된다.
방육평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홍콩 뉴웨이브를 이끈 감독들 중 한 사람이다. 서극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배운 뒤 홍콩에서 깜짝 놀랄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허안화 등 많은 신예들이 방송국 TV드라마에서 사회물을 찍으며 새로운 영화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방육평은 <부자정>으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방육평 감독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향을 받은 연출 스타일로 1983년 당시의 홍콩 사회를 리얼하게 담았다.
방 감독은 비전문 배우, 즉 일반 시민을 캐스팅했다. 주인공 아잉을 연기한 허소영(許素瑩,쉬수잉)이 그렇다.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허소영의 가족들이다.
아마도,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생선가게에서 고생하던 홍콩 소저가 대단한 감독을 만나, 하루아침의 은막의 스타가 되는 것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디딘 영화이다. 아잉은 힘든 삶 속에서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것이 곧 화려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영화에서 장 선생은 아잉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거야.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도 모르게 될 거야.” 이 말은 방육평이 이 영화를 찍은 이유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필름센터의 강사 장 선생(張松柏)을 연기한 왕정방(王正方)은 대만 사람이다. 전란 속에서 중국 후난성(湖南長沙)에서 태어난 그는 대륙이 공산화되자 가족들이 대만으로 건너온다. 그의 아버지는 대만 언론사 부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대만에는 '국어일보'(國語日報)라는 신문이 있다. 당시 대만은 민남어를 쓰고 있었고, 대만으로 쏟아져 들어온 대륙인을 포함하여 중국 표준어(만다리) 사용을 장려/보급하기 위해 신문을 적극 활용했다) 왕정방은 대만 최고의 명문대인 대만대 전기과를 나와 미국 유학을 떠났고, IBM엔지니어를 거쳐 미국 대학교수가 된다. 1970년 이른바 조어대(센카쿠)문제가 터진다. 조어대(釣魚台,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 중국, 대만이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대만 출신의 방 교수는 분기탱천하여 보조운동(保釣運動:조어대주권보호운동)에 나선다. 그 일환으로 1971년 북경을 방문 당시 주은래 총리를 만나기도 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임수경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난 것’처럼 대만 당국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한동안 그는 대만의 블랙리스트 인사가 되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교수를 그만 두고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연기와 시나리오, 감독을 했다. <반변인>으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반변인>에서는 그는 다리를 전다. “대만에서 군대 생활할 때 주사 잘못 맞아 이렇게 되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대만 당국에 대해 삐딱(!)한 생각을 가진 것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아잉을 연기한 허소영은 그 후에도 가끔 영화에 출연했다. 허소영 배우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 영화센터에서 열정적인 강사를 만나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당시 영화와 연기를 가르친 사람은 감독을 준비하던 '과무(戈武)였다. ‘부자정’(父子情)으로 홍콩 뉴웨이브에 큰 획을 그었던 방육평 감독은 차기작을 준비하다가 허소영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고 한다. 과무와는 오랜 친구였고, 허소영의 살아온 이야기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방육평은 방정평과 시나리오를 써내려갔고, 허소영에게 주연을 맡긴 것이다. 허소영은 “강사랑 어떻게 되냐고요? 그건 당연히 100퍼센트 지어낸 것입니다. 사생련(선생과 학생의 로맨스)은 극적 요소였죠.”란다.
참, 이 영화에는 귀에 익은 팝송이 나온다. 아잉이 짐 크로치의 ‘Time In A Bottle’을 부르고, 방정평과 함께 사이먼과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를 멋지게, 어쩌면 너무나 구슬프게 부른다.
영화 <반변인>은 1983년 즈음,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주성치가 살았을 그 복잡하고, 혼잡스러운 홍콩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상암동 영상자료원 '홍콩 영화의 새로운 물결'에서는 <반변인>을 10월 1일(토) 한 차례 더 상영한다. 홍콩영화 전문가 주성철 영화평론가의 토크(GV)도 마련되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찾아가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