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감독은 대학(연세대 경영학과)을 나온 뒤 종합상사에 들어가서 대한민국 무역일꾼으로 일한다. 배(선박)를 팔았다고도 한다. 그런데 배창호 감독은 배 1척 수출보다 잘 만든 넷플릭스 한 편 제작이 더 낫다는 것을 40년 전에 간파한 모양이다.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한국에 돌아와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이 된다. ‘바람불어 좋은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영화현장을 배운 뒤, 1982년 마침내 [꼬방동네 사람들]로 감독데뷔를 한다. 1982년에! 신상옥 등 전 세대 감독들이 물러난 충무로엔 찬바람이 불었고, 그 유명한 전두환 시절의 ‘3S’열풍이 충무로를 지배할 때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후 배창호가 내놓은 작품들은 모두 한국영화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올해 배창호 감독데뷔 40주년을 맞아 한국영화계가 특별한 기획전을 마련했다. ‘배창호감독 특별전’이다.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정’까지 모두 7편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경배하라! 배창호!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철용(이동철)의 르포소설이 원작이다. 이동철을 필명으로 사용한 작가는 아주 어려운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한국사회의 밑바닥에서 세상 험한 꼴을 다 보고 자랐다. 이동철의 첫 번째 작품은 1980년 현암사에서 나온 ‘어둠의 자식들’이다. 출판당시 ‘이동철 구술-황석영 작(作)’으로 출간되었었다. 1996년 서울문화사에서 재출간된 ‘꼬방동네사람들’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이동철이라는 필명으로 펴낸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을 군사독재와 수배기간이 끝남을 계기로 본명 이철용으로 새롭게 출간했습니다”고. 두 작품 모두 한 때의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렸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철용 자신이 구술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파카레스크 형식으로 기록한 현장소설이다. 서울 동대문 밖 청계천 뚝방(둑)을 낀 옛 기동차길 주변의 판자촌 동네의 특이한 생활풍토와 그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그린다. 어떤 주민들? 행상, 품팔이꾼, 윤락녀, 기둥서방, 포주, 밀주장수, 앵벌이, 무당, 소매치기, 돌팔이의사, 불구자, 사기꾼, 건달 등 소위 ‘막찬 탄 인생’들이다. 달동네, 빈민가, 사회의 어두운 곳에 사는, 그곳까지 흘러온 수많은 ‘따라지’ 인생들을 짧게 소개한다. 그들 가운데 ‘검은 장갑’이 있다. 한쪽 손에 항상 검정 장갑을 낀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소개한다. 그 여자는 고등학교 때 어느 멀쑥한 남자에게 속아 살림을 차린다. 회사원이라던 그 남자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감옥에 한 번 갔다 와서는 제대로 착하게 살려고 하지만, 운 나쁘게 ‘소매치기’로 엮여 또 감옥에 간다. 둘은 헤어지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는데 이 남자도 만만찮다. 그런 지지리 남편 복 없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배창호 감독은 이철용의 소설 속 한 단편(章) ‘검은 장갑’의 여자주인공 이야기에 살을 덧붙인다. 영화는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낙후된 동네이다. 아침이면 ‘공동변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우물터에는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며 별 일 아인 것(빤스!)으로 악다구니를 쓴다. 아이들은 흙먼지 이는 골목에서 철길 위에서 ‘취권’ 흉내를 하며 놀고 있다. 이곳에 악착스레 살고 있는 여인네가 ‘검은 장갑’ 명숙(김보연)이다. 남편 태섭(김희라)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달력에 날짜를 세며 “명숙아, 한 달만 기다려. 곧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고 큰소리친다. 명숙의 어린 아들 준일(천동석)은 전 남편 소생이다. 그 남자가 어느 날 찾아온다. 소매치기로 감옥을 들락거린 주석(안성기)은 아들을 데려가고 싶어 한다. 명숙과의 사이를 오해한 태섭은 주먹질을 한다. 동네는 여전히 시끄럽고, 더럽고, 남의 일에 관심 많고, 바람 잘 날 없다. 그래도 짹짹이 아줌마(공옥진)는 흥겹게 춤을 추고, 고물장수 공 목사(송재호)는 마을 사람들에게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희망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화에서 명숙의 고향은 부산 영도이다. 그리고,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자촌 동네는 놀랍게도 경기도 광명에서 찍었단다. 당시 그 곳은 빈민가였고, 판자촌이 즐비하게 있었단다. 40년 전 모습! 지금의 광명역이나 코스트코 같은 광명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창호 감독은 이철용의 소설을 직접 시나리오로 옮겼다. 배창호는 이 영화를 비토리오 데 시카의 네오 리얼리즘에 버금가는 코리안 리얼리즘으로 완성시킨다. 너무나 현실적인 빈민가의 삶이었기에 개봉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2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막강한 검열제도가 있었다. 심의위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가위질을 하고, 퇴짜를 놓았다. 배창호감독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창호 감독은 “당시 어려웠다. 검열하는 사람들이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 없으면, 화면에 요강이 등장하면 안 되고, 여자들이 드잡이할 때 머리잡아당기는 모습은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심의위원에 참여했던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다른 위원들을 설득하여 겨우 통과한다. 다른 조건이 걸렸단다. “해외영화제에 출품하면 안 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중국영화계가 그랬다. 그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영화의 해외영화제 출품을 불허한 것이다. 로우예나 지아장커, 그리고 많은 6세대 감독들이 그 가이드라인에 걸렸었다!
여하튼 4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꼬방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훌륭해진 것 같다. 빈민의 삶이 포르노그래픽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고난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비록 시대적 상황으로 ‘더 밝고, 더 나은, 광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결말이 예상가능하지만 그런 선택조차 영화적으로 완벽하다. 검은 장갑 김보연과 소매치기 안성기, 그리고 시효 만료만을 기다리는 김희라를 비롯하여 공옥진, 송재호, 김형자(알코올중독 여자), 아역까지 영화에 ‘꼬방동네’의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꼬방’동네가 뭔지 생각해보니 ‘하꼬방’에서 나온 말 같다. 일본말(木板房/箱房) ‘판잣집’을 말하는 것이다. 40년 동안 대한민국은 초특급 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영화계는 이미 오래 전에 그런 우리 사회를 충실히 작품에 녹여내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리뷰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