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여전히 빛나는
사라진 시대의 이미지와 말을 찾아보기 위해서"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감독 김오안, 브리짓 부이요)는 한평생 물방울을 그리며 살아온 김창열 화백의 아들이자 사진작가인 김오안이 아버지의 예술 세계와 인생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김창열 화백은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회화를 배운 뒤 미술 교사를 거쳐 파리 비엔날레 등에 작품을 출품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파리를 거점으로 세계적으로 활약하던 그는 1971년 처음으로 물방울 그림을 그리게 되고 이는 유럽 데뷔까지 이어졌으며 일명 '물방울 작가'로 알려져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버지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첫 장면은 뭘까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아들의 시선으로 담아 비로소 볼 수 있는 스펙트럼의 숨겨진 단면을 보여준다. 작품 내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아들 김오안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김창열 화백의 인생뿐만 아니라 자신이 포착한 아버지의 얼굴을 관객들의 머릿속에 그려낸다.
아버지에 대해 산타클로스보다는 스핑크스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아버지의 침묵이었다는 이야기는 그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가족이라면, 혹은 가족 같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인 틈새의 이야기들을 꺼내기도 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휴전선을 건너던 15살의 나이로 들어가 젊은 시절의 아이처럼 우는 모습 또한 그가 아니라면 담지 못했을 장면이다.
그러기에 작품 중반부부터 관객들은 눈치챌 것이다. 이 영화는 비단 김창열 화백의 예술 세계만을 담아 위인전의 영화화가 아니다. 김창열 화백의 사상, 인격, 인연의 연결 고리들... 모든 면들을 마치 수십 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작업처럼 세심하게 관찰한다. 세월의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 남게 된 모든 김창열 화백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작품이 되어줄 것이다. 9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