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고 싶은데?"
"나도 몰라. 왜 자꾸 묻는데?"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이 어딘지조차 잃어버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방향 감각을 잃은 동물처럼 한 방향으로만 빙빙 돌며 마치 철창에 갇힌 듯한 느낌으로 헤매는지만 결국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감독 요아킴 트리에)는 인생의 방향 감각을 잃은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고의 성적을 인정받는다는 느낌에 의대에 합격했지만 자신의 학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리학 전공을 바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만족스럽지 않던 그는 학업뿐만 아니라 연애도 일도 모든 것에 혼란함을 느낀다.
수업에서 만난 처음 만난 교수와 잠자리를 가지고, 이후에는 심리학 공부를 관두고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모델과도 어울리기 시작하는가 하면 파티에서 성공한 만화가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분)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는다고 주장하지만 쉴 새 없이 바뀌는 변화를 맞이하는 그의 인생은 혼란과 불안만이 가득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율리에에게 시간은 다른 인간과 똑같은 법칙과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변화를 맞이하면서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던 그는 타인들이 지표로 규정하는 나이의 어느 구간에 들어선 순간 허탈함을 느낀다. "내일 모레 서른인데 애 낳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라고 말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애인의 말에 이를 원하지도 않고, 좋아하지조차 않은 율리에는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가족을 소개해 주고 그들의 아이를 보여주지만 그것 또한 족쇄와도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안정된 삶에 안착하는가 싶었던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 분)와는 바람에 가까운 행동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고 알 수 없는 묘한 설렘마저 느끼게 된다. 그는 정신적인 사랑,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며 끝없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한 여성이 품는 사랑의 방황을 그리는 작품 같지만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겪는 성장의 지점을 짚어나간다. 열두 개의 챕터, 그리고 그를 시작하고 끝내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작품은 율리에의 인생을 담아낸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간다.
물론 율리에가 내리는 결정들은 모두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악셀의 친구들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확실한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어떨 때는 타이밍이 변명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상대방을 변명으로, 어떤 때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변명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이 핑계인지 합리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결국 인생사는 모든 변수의 집합체니 말이다.
율리에는 보편적으로 최악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거듭한다. 하지만 최악, 또는 차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하는 모습은 방식이 다를 뿐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율리에의 롤러코스터 같은 연애 감정선을 담은 로맨스, 인생에서 겪는 혼란 속의 성장기를 다룬 휴먼 드라마, 이 두 장르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지만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율리에처럼 우리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통해 최선을 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8월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