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군함도’(軍艦島)를 찾아보았다. 원래 이름은 ‘단도’(端島, 하시마)이다. 일본열도 남서쪽 끝자락 나가사키(長崎)항에서 남쪽으로 18킬로 떨어져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면적이 0.063㎢에 불과하다.(남북 480m, 동서 160m, 둘레 1,200m) 원래 이 섬은 그보다 더 작았다. 10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펼쳐진 간척사업을 통해 이만큼 확대된 것이다. 1810년 이 섬에서 처음 석탄을 발견하였고, 1870년부터 본격적인 채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890년, 미쯔비시가 경영권을 획득하면서 대대적인 석탄산업으로 발전한다. 노정된 탄을 다 캐내자, 땅속 깊이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간다. 지하 1000미터까지. 섬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는 사방팔방 해저로 탄광을 넓혀간 것이다. 그곳에서 탄 석탄이 일본산업의 불씨가 되었고, 전쟁의 군수물자의 에너지가 된 것이다.
그 ‘군함도’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5년 일본정부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이 강제로 끌려가서 지하 1000미터 채탄작업에 동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비인간적 대우가 있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를 보면 조금 알 수 있을 듯.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이곳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을 이야기한다. 경성에서 악단 단장으로 일본인에게 ‘헤헤’거리며 돈도 좀 만지고 풍류도 즐기던 황정민도 어린 딸(김수안)과 함께 이곳으로 끌려온다. 경성의 주먹 소지섭도 같은 배에 실려온다.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 끝에 하시마까지 흘러온 이정현도 있다. 어디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나라 잃은 약소국가의 불쌍한 민족이란 것. 그들은 지하 1000미터로 내려가 탄을 캔다. 갱도가 무너지고, 가스가 새고, 폭발사고가 나서 사지가 끊기고, 목숨까지 잃는다. 그 와중에 특수임무를 받은 광복군소속 OSS요원 송중기가 잠입하는 것이다.
영화 <군함도>는 한수산 작가의 같은 제목의 소설 <군함도>가 보여준 수많은 조선민족의 절절한 사연과 사건을 보여주는 대신, 압축된 시대상황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배경이 한반도 땅이 아니어도 이 좁디좁은 절해고도에서도 충분히 식민지시대의 핍박받는 한민족을 보여주는데 충분한다. 극중 황정민의 대사 “누가 조선종자 아니랄까봐~”처럼 상상가능한 인간군상이 다 등장한다. 대드는 놈, 개기는 놈, 우쭐대는 놈, 잘난 놈, 뻐기는 놈, 큰소리치는 놈, 자포자기하는 놈. 물론, 일본의 앞잡이가 된 놈까지. 그 와중에 지도자로 추앙받는 ‘놈’도 있다. 여기에 송중기같이 독립투사로 잠입한 자도 있고 말이다. 이들은 지하 막장에서, 지상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어야한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일제강점기의 한일관계를 억압과 피억압으로 그리는 단선적 모습을 보여준다. 잔인함, 비굴함 등 비인간적 본성.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민족반역자의 비열한 모습까지. 그리고, 당연히 일본의 비열함과 잔혹함을 상상가능한 수준에서 스크린을 채운다.
류 감독은 이 영화가 ‘국뽕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영화 <군함도>는 <덩케르크> 버금갈 민족영화의 뿌리에서 어느 순간부터 ‘액션영화’로 넘어가 버린다. 좁은 섬 안에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 대립하더니 이어 넘치는 액션과 폭발 신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분노할만한 이야기를 구겨 넣으면서 엄청난 영화적 상상력을 꽃피운다.
일제강점기에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갔고, 남정네들은 징병과 징용에 끌려갔다. 그들이 트럭에 실려, 기차에 실려, 배에 실려 산 건너 물 건너 바다 건너 끌려간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군함도였다. 군함도에서 죽어간, 그리고 살아남았지만 일정기간 강제노역으로 자유와 영혼을 박탈당했을 우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반일’과 ‘극일’의 밸런스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친 배우는 단연 아역배우 김수안과 악역배우 김민재이다.
참,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다. 이 영화에는 미군 폭격기가 하시마에도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다. 과연 그랬을까 궁금했다. ‘하시마’ 섬 공식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1945년, 석탄을 적재 중이던 하쿠주마루가 어뢰를 맞고 침몰하고, 발전소가 폭격을 받아 갱도가 수몰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군함도를 홍보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관련이다. 일본은 오랜 준비 끝에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규슈와 야마구치 8개 지역 23개 요소에 대해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전부 메이지 시대의 제철, 제강, 조선, 석탄산업 유물이다.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최종 통과되었다. 그 때 한국의 백제역사유적지구도 우리나라로서는 12번째 유네스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해서는 복잡한 외교전쟁이 수반되어있다. ‘강제노동’과 관련된 문구 때문이다. 미국 노예시대 수준인지, 독일 아우슈비츠 강제노역 수준인지 복잡한 논쟁이 있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사항과 여전히 미적대는 일본 정부의 후속조치에 대한 기사뿐이다. 일본 NHK 방송국 홈페이지를 보면 유네스코에 등재된 하시마 관련 동영상 있다. 한번 보시길. (▶바로가기)
하나 더, 영화 <군함도>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은 한수산 작가의 소설 <군함도>를 꼭 읽어보시길. 어떻게 끌려가고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2017년 7월 26일/ 15세이상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