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올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모두 28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중 단편은 109편이다. 이들 단편영화들은 몇 편 씩 묶여 ‘판타스틱단편걸작선’으로 상영된다. ‘판타스틱 단편걸작선3’에 포함된 작품 중에는 최청일 감독의 단편 <미망인>이 있다. 23분짜리 짧은 영화이지만 영화의 참맛, 단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한 여자가 입구에 쪼그려 담배를 피운다. 딸이 와서 그런다. “엄마 오늘 몇 끼 먹었어?” 여자가 대답한다 “세 끼.” 딸이 한 소리한다. “사람들이 그래. 밥이 넘어가냐고.” 어린 딸과 함께 과부, 미망인이 된 젊은 여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지금 막, 남편의 장례를 치른 젊은 아내는 딸과 함께 화장한 남편의 유골함을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남편이 살아생전 남긴 유서에 “서해 바다에 유골을 꼭 뿌려 달라”고 했기 때문.
그런데, 도착한 서해안 바닷가는 하필 간조기다. 가도 가도 끝없는 갯벌뿐. 바다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신발은 엉망이 되고 결국 뻘밭에 엎어진다. 그렇게 푸른 하늘을 보다가 문득 정신이 잃는다. 어디선가 남편이 나타난다. 둘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굉장히 슬픈 이별을 다루지만 영화는 경쾌하고 코믹하다. 아내는 남편이 죽은 이유도, 바다에 뿌려달라는 이유도 그제야 알게 된다.
아내 역을 맡은 배우는 유다인이다. 남편을 막 여읜 극한의 슬픔 속에서도,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코믹함에 영화를 몰입하게 만든다. 바닷가에 유골 가루를 뿌리다가 바람이 불자 아내의 얼굴에 후루룩 몰아친다. “잘 살아.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고..”라는 남편의 말에 여자는 감정을 추스르며 소리친다. “1년에 한번 씩 제삿밥 먹으러 와. 가끔 생각나면 딸애도 지켜봐주고.”라고. 그 순간 문득 흰 눈이 덮인 산에서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기데스”라고 외치던 나카야마 미호를 떠올렸다.
최청일 감독의 <미망인>은 슬픔과 결별하는 현실적인 방식을 이야기한다. 아내는 결국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고, 죽은 사람은 어떻게든 잊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딸 역으로 잠깐 출연하는 아역배우는 안서현이다. <옥자>의 그 미자이다. 바닷물은 안보이고 개펄이 끝없이 펼쳐진 서해바다는 제부도이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든 단편소설이 하나 떠올랐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 <파리>이다. 전사한 아들 생각에 깊은 슬픔에 빠진 노인네가 잉크병에 빠져 허우적대는 파리 한 마리에 몰입하다가 자신이 조금 전 헤어 나오지 못하던 슬픔을 순간 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삶의 영화가 최청일 감독의 빛나는 단편 <미망인>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