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9명의 번역가 스틸 ⓒ ㈜이놀미디어 제공
"번역가는 대리인의 인생을 사니까. 아무도 기억 못 할 이름으로.
늘 관심 밖이고, 표지에 오르지도 않고."
번역가의 역할은 그 단어에 담긴 정의 이상을 담고 있다. 훌륭한 문장들을 자신이 속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는 언어들로 풀어내는 것이 번역가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왜 그들의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는 것일까.
영화 9명의 번역가 스틸 ⓒ ㈜이놀미디어 제공
영화 '9명의 번역가'(감독 레지스 로인사드)은 세계적인 스릴러 장르의 베스트셀러 '디덜러스' 최종편 출판을 위해 9개국에서 온 번역가들이 고용되어 모인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오싹한 스릴러 장르가 담긴 베스트셀러를 번역하는 번역가들의 모습을 그리는 미스터리 영화라는 설정부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기도 하다.
9명의 번역가들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러시아 부호의 저택 지하에 숨겨진 밀실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베일에 가려져 그저 무성한 소문만 있을 뿐인 오스카 브라흐 작가의 소설이기에 번역가들은 그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평온함도 잠시, 그들이 번역하던 '디덜러스'의 첫 10페이지가 인터넷에 공개된다. 그리고 편집장 에릭에게 '돈을 보내지 않으면 다음 100페이지를 공개하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수습하지 못하면 회사가 파산하는 상황에 이른 에릭은 폭력적인 방법을 포함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범인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동안 번역가들은 이 협박범의 실체에 관하여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핸드폰도 빼앗기고 기록 가능한 모든 수단이 압수되고 러시아 보디가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제된 시간과 스케줄 속에서 번역을 하던 그들. 숨이 막히도록 제한된 상황 속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그들은 혼란에 빠진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 순간부터 더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영화 9명의 번역가 스틸 ⓒ ㈜이놀미디어 제공
영화 '9명의 번역가'는 초반부부터 진범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건 발생 2개월 후 프랑스 교도소에서 에릭이 진범으로 추정되는 누군가를 만나는 장면이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과 교차되며 나열된다. 그 과정에서 내레이션처럼 울리는 에릭이 범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는 마치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소설을 읽어나가는 낭독회에 관객들을 초대한 느낌처럼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 또한 등장인물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서 기존 스릴러 작품과는 차별화된 점이 드러나는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9명의 번역가' 이외에도 다른 등장인물 또한 의심하게 만드는 연출 구성이다. 초반부에는 서로를 향한 의심의 과정, 혹은 '디덜러스'에 유난히 집착하는 번역가의 등장으로 번역가들에게 범인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편집장 에릭의 유난스러운 의심과 번역가들을 분열시키는 비열한 행동으로 점차 그와 그의 주변 인물까지 의심의 범위는 확대된다. 그리고 중반부에서 터지는 하나의 반전과 숨겨진 이야기들은 작품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영화 9명의 번역가 스틸 ⓒ ㈜이놀미디어 제공
더불어 영화 '9명의 번역가'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겉으로 둘러싸고 있지만 그 속에는 번역가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는 영화다.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디덜러스'의 다음 내용을 추측하는 장면 또한 흥미롭다. 각자 다양한 사상이자 번역 스타일을 가진 이들이 토론하는 신들은 그들의 생각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동의하며 작품을 탐구한다. 특히 작가보다도 더 작품에 이입하고 캐릭터 안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프로페셔널함을 넘어 작품에 대한 글에 대한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이 새겨진 영화 '9명의 번역가'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보는 책들의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전하는 누군가의 힘이 있었음을, 그들의 문장이 있었음을 알린다. 9월 14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