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어제(25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개막식을 갖고 9월 1일까지 8일간의 영화축제를 시작했다. 올 영화제에서는 개막작 <더 제인스>를 필두로 33개 나라에서 출품된 122편의 ‘여성’영화가 상영된다. KBS독립영화관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에 맞춰 특별히 여성의 문제를 다룬 세 편의 단편영화를 편성했다. 역시, 대단한 KBS독립영화관의 혜안! 오늘 밤 KBS독립영화관에서는 '특별장학금'(양윤정 감독), '자매들의 밤'(김보람 감독), '캠핑을 좋아하세요'(김꽃비 감독) 등 세 편이 시청자를 찾는다. 이들 세 작품은 작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자매들의 밤>은 <피의 연대기>로 주목받은 김보람 감독의 22분짜리 단편이다. <피의 연대기>는 여성의 생리, 그리고 생리대에 대한 심오한, 그러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다큐였다.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이닝 다큐”라고 말했었다. 그가 내놓은 단편 <자매들의 밤>도 확실히 ‘여성’영화이다. 오직 다섯 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모두 여성이다. 무슨 이유로 이들이 한곳에 모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영화는 혜정이 낮잠을 자다 귀가 간지러운지 귀를 만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어 그녀의 집에 자매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기일인 모양이다. 아마도 다들 살기 바쁘기에 엄마 제삿날에라도 맞춰 큰언니 집에 이렇게 모여 추모 기도를 할 모양이다. 맏이 혜정은 오랜만에 보는 동생들을 살갑게 맞이하며 큰 오빠 이야기를 한다. 아마 ‘1남 5녀’였던 모양이다. 혜정은 칠순을 맞은 오빠를 위해 하와이 여행이라도 보내주자고 하자 동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여름인데도 긴 소매 옷에, 굳이 스타킹을 신고 있는 막내 정희. 큰언니의 눈치를 보던 정희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힘들게 살았던 옛날이야기, 다들 서울로 올라가고 정희만이 가난한 깡촌에 남아 힘들게 살았던 그 과거를 이야기한다. 큰 언니와 자매들은 침묵으로 봉인했던 과거의 두려움과 오래된 섭섭함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한다.
영화 <자매들의 밤>은 2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적어도 30년의 눈물과 슬픔이 묵직하게 녹아있다.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매의 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큰언니의 귀지를 팔 때의 광경은 이 영화가 황홀하게 아름답고도 훌륭한 영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월 속에 묻어둔 야속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끝나면 곧 추석이다. 코로나로 왕래가 뜸했던 고향에서 가족들, 친지들을 만나게 된다면, 수십 년 가슴 속에 묻어둔, 귀속에 가둬둔 섭섭함을 털어내시길.
<자매들의 밤>은 한국양성평등진흥원과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함께 진행한 2020[필름X젠더]제작지원작이다. 훌륭한 단편이다. 오늘밤 12시 10분, KBS 1TV 방송.
연출/각본:김보람 출연: 강애심(혜정), 오지영(정희), 이선주(영이), 남미정(지숙), 이경성(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