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는 한류톱스타 김수현의 새 영화 <리얼>(감독 이사랑)이 개봉되자마자 맹폭을 당하고 있다. 영화의 내레이션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꼭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신인감독의 치기어린 실험정신이 덜컹대는 편집으로 조금 불편하다고나 할까.
영화 <리얼>을 제대로, 혹은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먼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아이덴티티>(Split)을 먼저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영화는 해리성 정체감장애를 앓던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를 모티브를 한 작품이다. 이 사람은 모두 23개의 자아(정체성)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들 자아가 서로 다른 다양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흉악한 범죄자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텔리전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다중인격체, 해리성 장애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영화 <리얼>은 그런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김수현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자아를 연기한다. 영화가 다 끝난 뒤 올라가는 자막에서는 서로 다른 자아를 ‘수트 장태영’과 ‘뿔테 장태영’으로 구분했다. 멋진 고급양복을 입은 ‘수트수현’은 조폭 보스이다. 어릴 때 동네 양아치와 시비가 붙은 것을 시작으로 험하게 자라 살인도 하고 결국 조직의 짱이 된 놈이다. ‘뿔테수현’은 소심한 샌님이다. 그런데 마약사건을 다루는 프린랜서 저널리스트, 르뽀르타쥬 기자이다. 이 두 수현이 번갈아 이성민 박사의 심리치료를 받는다. 이성민이 전해주는 치료방식은 간단하다. “둘 사이의 전쟁을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영화는 점차 복잡해진다. 수트수현과 뿔테수현 앞에 교통사고로 거의 다 죽어가는 중환자가 등장한다. 이 사람은 금테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마스크맨은 점점 또 다른 장태영이 되어간다. 김수현은 다중인격자 연기를 해내야한다. 겁쟁이부터 생양아치까지.
이 영화의 모든 미몽은 마약에서 기인한다. 김수현의 정신분열, 혹은 자아분열의 시작은 마약이다. 그의 곁에 있는 설리도 마약으로 혼란스럽다. 김수현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나머지 캐릭터들은 홀로그램 수준이다. 성동일도, 조우진도, 김홍파도, 정인겸도. 이들 인물과 사건은 사실 마약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며,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고 생각하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비주얼적으로 멋있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편, 남성적(마초적) 강인함을 수트수현에 과도하게 투영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What a man can be, he must be' (될 수 있으면 돼야 한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동기부여’에 대한 탁월한 논리를 펼쳤던 심리학자 애브라함 매슬로의 말이다.
그리고, 극중에서는 더 중요한 이름이 하나 더 등장한다. 이성민이 르포작가(뿔테수현)과 심리상담할 때 필립 말로우를 언급하자, 장태영은 “거칠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신사답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살았나요.?”라고 되묻자, “아니요.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필립 말로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이름이다. 험프리 보가트가 나온 영화 <빅슬립>의 주인공도 필립 말로우다. 장태영이 읊조린 “거칠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신사답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챈들러의 <원점회귀>(1958)에 나오는 말이다.
배우 김수현이 열연을 펼치기는 하지만 외모 탓으로 악역에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예를 들어 <레옹>에서의 게리 올드만이 연기하는 잔인함보다는 ‘뿔테 샌님’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한껏 강인한 남자가 되어보려는 사춘기 소년의 갈망이 읽혀진다. 이 차이는 이사랑 감독이 아무리 설리를 벗기고, 섹스씬을 만들어내도 연약한 마약중독자의 절망적 몸짓에서 주저앉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극적 긴장감이 급속하게 추락한다. 영화 <리얼>에서 오리지널 김수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마약 탐사취재를 하다 마약에 빠져들고, 자신만의 남성상을 상상으로 만들고, 그에 맞는 여성을 탐닉하다가 그것을 빼앗기기 싫어 자신만의 라이벌을 만들어내고, 자신만의 정체성 싸움을 펼치다가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이 영화의 불만은 성동일이다. 영화에서 뜬금없이 중국 항저우의 거지닭(叫花鷄)을 꺼낸다. 이 영화가 중국 알리바바영화사의 자본으로 만들어졌기에 급히 넣은 에피소드 같은데, 성동일은 남쪽 항저우가 아니라 저 북쪽 연변 조선족 말씨를 계속 구사한다. 이건 장백지가 <파이란>에서 연변 조선족 여인으로 나와 홍콩말 쓴 이래 최고의 부조화다. 2017년 6월 28일 개봉/청소년관람불가 제작:코브픽쳐스 배급:CJ엔터테인먼트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