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업을 줘서 고맙다.” “진심으로 고생해서 잘 만들었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우성과 이정재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정우성은 이정재가 감독한 영화 [헌트]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제가 다른 작품에서처럼 맡은 역할만 (연기)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지켜본 입장이잖은가. 편집과 후반작업을 거친 뒤 칸에서 봤을 때 욕은 먹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Q. 절친 이정재 감독 데뷔작에 출연한 소감이 특별할 것 같은데.
▷정우성: “영화가 개봉될 때의 마음은 비슷하다. 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지금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아무래도 저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영화를 해냈다는 안도감, 뿌듯함이 있다. 영화는 개봉 되고 나서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니 ‘헌트’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Q. 제작자와 연기자로 참여할 때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지.
▷정우성: “배우만 할 때는 현장에 가서 내 롤만 신경 쓰면 된다. 그런데 제작할 때는 책임자로서 끊임없이 현장을 관찰하고, 문제가 생기면 빨리 바로잡고,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아무래도 신경 쓸 일이 훨씬 많아 피로도가 그만큼 높다. 그렇다고 경중의 문제는 아니다.”
Q.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어떤가.
▷정우성: “어떤 작품이든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영화가 개봉하는 날은 배를 바다에 띄우는 것이다. 어떤 조류에, 어떤 바람을 맞을지, 어떤 날씨에 직면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개봉되면 또 다른 운명의 시작이다.”
(흥행 욕심은?) “욕심을 가졌을 때, 그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받는 상처도 고스란히 나의 것이다. 그래서 욕심 없이, 겸허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Q. 영화 ‘헌트’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
▷정우성: “이 영화가 절대적으로 좋다거나 완성도가 높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정재 배우의 감독으로서의 도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준 이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료 배우 두 사람이 23년 만에 다시 만나 연기 대결을 펼친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끼리 좋다고, 즐기려고, 멋있어 보이려고 두 캐릭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둘이 한 화면에서 제대로 만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Q. ‘태양은 없다’이후 23년에 한 작품에서 만나 연기를 한 소회는.
▷정우성: “이게 만약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 아니었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현장에서 서로 즐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할 상황이었다. 감독 도전이기도 하고, 공동제작이라는 부담도 있었기에, 우리 둘이 오랜만에 함께 한다는 것에 너무 도취해서도 안 된다. 그런 걸 잊어버리고 치열하게 작품에 임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진짜 이건 무조건 성공해야한다는 부담으로 현장에 있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우리 둘이 오랜만에 함께 연기를 했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할 수가 있을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몇 차례 거절했다는 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합류를 선택한 이유는.
▷정우성: “(이정재를) ‘오징어 게임’에 출연시키기 위해 거절했다.(하하) 이 작품은 둘과 전혀 상관없는 제작사에서 오는 시나리오가 아니잖은가. 친구이자, 동료가 바로 옆에서 제작 프로듀싱을 하겠다고 하면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개발하면 둘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방향성이 맞는 감독을 먼저 찾아야하고, 적합한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수정해야하는 단계가 있다. 계속해서 여러 감독들을 접촉하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멈추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랬다. 그게 회사를 만든 지 얼만 안 된 시점이었다. 둘이 함께 출연한다면 감독 하나 데려다가 만드나보다 하는 그런 외부 시선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감독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시나리오를 오래 쓴 당사자가 직접 연출해 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때는 내가 영화 [보호자]의 출연과 연출을 할 때였다. 녹초가 되어 있는 나를 보고는 ‘죽은 거 아냐, 왜 이리 살이 빠져?’ 그렇게 농담하던 사람이 이제 그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와 같이 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제안을 한 것이다. 본인 스스로 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고, 그 선택에 대해 응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바구니에 계란 두 개를 함께 넣은 상황이다. 달리다 깨져도 어쩔 수 없다. 깨어지더라도 만들어야한다.’ ‘흥행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정작 본인은 취해서 못 들었다. ‘헌트’의 시나리오 문제로 거절했던 것이 아니다.”
Q. 이정재 감독은 ‘헌트’를 통해 이정재의 얼굴을 제일 잘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정우성: “신인감독의 오만이죠.(하하) 저의 역할은 혼자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두 캐릭터가 부딪칠 때 그 기류가 둘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주는 것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김정도라는 인물에 대해 좋게 평가해 주시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Q. 연출을 먼저 경험해본 적 입장에서 이정재 감독의 연출이 어떤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
▷정우성: “제가 연출을 전문적으로, 오래한 것도 아니니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감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체력도, 감정도 바닥에 떨어지고, 현장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앞으로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야한다. 그런 순간을 내가 먼저 느껴보았기에 ‘아, 저 양반 지금 저 시점인데...’ 그런데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짠해졌다.”
“연출을 잘한다 못한다는 아니다. 사람의 성격이 다르듯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게 표현과 속도의 차이가 될 수도 있고, 현장에서 스태프와 소통할 때 단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런 게 현장에서의 감독 이정재의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Q. ‘동림’이라는 안기부 내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게임은.
▷정우성: “김정도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방해 요소가 등장하는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 정도의 딜레마다. 특정인을 지목할 수 없는 혼돈이다.”(이건, 영화의 극적 재미를 반감시킬 스포일러성이라 답변을 일부 생략한다)
Q. 어느 시점에서는 정도와 평호(이정재)가 뜻을 같이 할 수도 있잖은가. 둘의 신념에 대해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지.
▷정우성: “그건 감독님에게 물어봐야할 질문 같다. 이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게 아니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 방식이 난 좋다고 생각한다. 연출자의 의도가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배우가 있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 관객에게 줄 거야’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두 캐릭터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딜레마가 그들의 존재감을 극대화 시킨다.”
Q. 영화는 1980년대가 배경이다. 그 시절 정우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우성: “철거촌에 살면서 산꼭대기에서 계속 밑으로 내려오는 갑갑한 생활을 이어갔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 다닐 때, 중앙대 앞을 지나가다 최루탄의 퀴퀴함을 맛보았다. 세상에서 나는 무엇이 될까 막연하게 생각하며, 세상으로 뛰어나오려고 할 때였다.”
(정우성은 아주 어려운,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작구 사당동 판자촌에서 암울한 현실을 이겨내며 미래를 그리는 소년-청년의 정우성이 떠오른다)
Q. 이정재 감독의 ‘헌트’ 개봉시점에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가 토론토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또 나온다.
▷정우성: “‘헌트’가 개봉될 때 제가 감독한 ‘보호자’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다. 두 사람 다 영화인으로서 열심히 지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재 씨나 나나 어떤 시기가 전성기라 생각하고, 그 시기에 머물지 않았다. 지금도 그저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진심으로 할 뿐이고, 다음 일이 일이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역시 무엇이든 즐기듯, 진심으로 할 것이다.”
Q. 아티스트 스튜디오의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정우성: “어떻게 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정재씨도 하고 싶은 게 많고, 나도 하고 싶은 게 많다. 예전에는 작품을 만들 때 ‘이건 내 것이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보다는 이 작품에 숨을 불어넣어줄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파트너가 누구든지, 좋은 콘텐츠를 내놓아야한다는 생각이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오면서 기회가 엄청 커졌다는 것은 ‘오징어게임’ 등 많은 작품이 증명한다. 예전에는 합작이란 것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제 해외에서도 한국과 같이 작업하려고 한다. 이런저런 도전과 시도가 나쁘지 않은 시기인 것 같다.”
Q. 배우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정우성: “예전부터 생각한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말자. 20대에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수식어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깐 주어진 것이지 왔다가는 가는 것이라고. 평생 청춘의 아이콘으로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이도 먹고 가야할 길이 더 많으니.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자꾸 하려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고, 완성시키려는 것 같다. 꾸준히 오래하고 싶다. 도전과 시도를 하는 이유이다.”
Q. 정우성 배우에게 ‘성공과 실패’는?
▷정우성: “모든 게 나의 선택의 결과이다. 나에겐 천만 넘는 영화가 없다. 내가 선택해서 외면 받은 작품도 많다. ‘똥개’를 할 때는 ‘비트’의 네가 왜 그걸 하냐며 싫어하는 팬도 많았다. ‘마당 뺑떡’ 같은 걸 왜 하냐고,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작품을 볼 때 뭔가를 느꼈다.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깨려고 도전한 것도 있었다. ‘호우시절’도 사실 허진호 감독 작품이지만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런 여러 도전 속에서 극복하고 더 겸손해지는 걸 배웠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이상 오롯이 내 것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성공은 한 순간이 아니라, 지금 잘 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선배 감독님 모시고 ‘헌트’ 시사회를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9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기에 데뷔한 두 배우가 ‘태양이 없다’에서 만나 스타라는 수식어에 머물지 않고 영화에 진심인 것이 선배에게 전달되었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성공이란 것은 순간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 유지하려는 노력의 과정이 모여 이뤄지는 것 같다. 그 결과 선배에게 ‘괜찮았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시간에 대해 인정받는 것이면 만족한다.”
Q. ‘태양은 없다’에 대해.
▷정우성: “20년도 더 전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절의 사진을 보면 ‘풋풋하다’ ‘고왔네’ ‘피부가 왜 이렇게 좋지’ 그런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잖은가. 어찌 보면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큰 행운인 것 같다. 작품으로 남아,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해야할 직업 같다.”
(배우의 ‘주름’을 이야기하자) “주름? 그건 당연한 거죠. 배우에게 주름은 중요하다.”
Q. 요즘 ‘우영우’가 화제이다. 작가가 ‘증인’(2018)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다.
▷정우성: “놀랐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성장을 시킨 것이다. 지우가 ‘저도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했었는데 그 꿈을 갖고, 세상과 소통하는 작품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대단하신 분이다. ‘우영우’를 제대로 못 봤다. 한번 몰아보기 봐야할 것 같다.”
이정재-정우성의 우정만큼 반짝이는 영화 ‘헌트’는 8월 10일 개봉한다.
2022년 7월 5일 '헌트' 제작보고회 현장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