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히만은 사생활과 예술에 있어서 무자비했지."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감독 미아 한센-러브)는 영화감독인 커플인 크리스(빅키 크리엡스 분)와 토니(팀 로스 분)가 각자 새로운 작품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위해 포뢰섬으로 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 남녀 모두 같은 직업이지만 다른 과정을 거치며 작품을 집필한다. 크리스는 두고 온 딸에 대한 생각과 다음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시나리오에 쉽사리 집중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토니는 순조롭게 집필을 이어간다.
토니는 그런 크리스에게 간단한 위로를 던지지만 불안감이 한껏 올라온 크리스에게는 그러한 위로가 통하지 않고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토니의 제안에 "당신 내조?"라고 퉁명스럽게 되받아친다.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베르히만'은 실제로 잉마르 배르히만이라는 스웨덴 영화감독의 이름이다. 세계적인 예술 영화감독인 잉마르 베르히만의 대표작으로는 '제7의 봉인'이 꼽히며 1950년대부터 세계 영화제의 무수한 상을 휩쓸었던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잉마르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영화라는 구성을 통해 조금 더 상세히 설명된다.
베르히만 퀴즈대회와 베르히만 투어 등 베르히만에 관련된 이벤트가 매번 열리는 마을인 포뢰섬에서 서사가 진행되기에 실제 생전에 품었던 그의 가치관부터 그의 삶과, 영화에 등장했던 장소 같은 디테일까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함께 베르히만 투어에 참여하듯 들어볼 수 있다. 이는 그를 향한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베르히만과 토니-크리스 커플을 연결하는 은유들이 등장한다. "베르히만은 사생활과 예술에 있어서 무자비했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예술가인 두 남녀는 서로를 사랑하긴 하나 예술에 있어서는 벽을 세운다. 토니는 크리스에게 자신이 집필하는 시나리오의 내용과 배경조차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대해 크리스는 한껏 실망한다.
그들은 허구의 상황을 그리며 시나리오를 이야기하고, 이 또한 허구와 상상, 실제를 오가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잉마르 베르히만의 작품과도 들어맞는 대화들이 이어진다. 토니와 크리스의 관계 또한 그 서사에 투영된다.
"베르히만은 고생 모르고 살았어요. 징집됐을 때 어땠는지 알아요? 궤양에 걸렸어요. 그러고 끝이었죠. 누가 징집됐다고 궤양까지 걸려요? 스웨덴은 중립이었는데. 베르히만을 칭송하는 평론가도 셋 쯤은 있겠죠. 하지만 바깥세상도 보고 살아야지. 망할 베르히만"
물론 베르히만에 대해 칭송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베르히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이렇게 다방면으로 베르히만을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은 죽어서도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인물에게 보내는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최고의 헌사일지도 모른다. 8월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