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도 가능하구나'라는 벅찬 생각"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이 오는 8월 3일 극장가에 상륙한다. 미스터리한 가해자에 의해 사상 초유의 항공 재난을 수사하게 된 형사 인호 역을 맡은 그는 연기 장인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호연을 펼쳤다. 그는 지상에서 비행기에 탄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애절한 아빠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며 '우아한 세계', '관상'에 이어 다시 한번 인생 아버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Q.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으면 작년 여름에 개봉할 영화였는데 아쉽게도 그때 못하고 지금 하게 됐다. 그런데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기분 좋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상태에서 소개가 되어야 하는데 그때 안 좋을 때보다는 지금은 그래도 다른 영화들도 많고 같이 붐업이 되는 상황이라서 좋다.
Q. '비상선언' 이전 '우아한 세계'에서 한재림 감독과 협업한 바 있다. 이번 작품 작업은 어땠는가?
뚝배기 같은 사람이다. 지금은 살이 좀 많이 빠졌는데(웃음) 그전에는 원통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날씬하다. 나무 같은 뚝심이 있다. 집요하게 얻고자 하는 바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배우는 지점도 많다.
Q. 둘 사이에 더 발전된 포인트나 케미스트리가 있는가?
감독으로서도 그렇지만 자연인으로서도 세월을 살다 보니 생기는 인생의 철학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쌓여온 내면의 어떤 것들이 있더라. 그런 것들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미스트리에 관해서는 한 장면을 꼽자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어떤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서 인호의 마지막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한재림 감독이 지독하게 파고든다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지독함이다. 배우로서 힘든 것보다도 좋은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서 연출가로서 끈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훌륭한 연출가를 만난 것 같았다.
Q. 시나리오를 받고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장르물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삶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가치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와닿았다. 역시 한재림 감독은 깊이가 틀리다는 생각이었다. '우아한 세계'도 어떻게 보면 조폭 영화 같은 느낌이 들지만 조폭 영화가 아니다. 직업은 조폭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했듯, '비상선언'도 재난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속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 공동체의 이야기다.
Q. 사실 '비상선언'은 거의 인호의 모노드라마에 가까울 정도로 혼자 고군분투하지 않나.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 인호 역을 연기한 본인은 '비상선언' 결과물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아무래도 인호라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호로 대변되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인호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호로 대변되는 우리의 마음이 인호를 통해 녹아든 것 같다. 인호라는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모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것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인물이고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특별히 인호라는 캐릭터 자체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하고 소중한 마음인 것 같다.
Q. '우아한 세계'를 비롯한 전작들 중 어떤 작품에서는 절절하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무심한 척하지만 깊은 부성애를 선보이는 다채로운 연기를 해왔다. 이번 '비상선언'에서는 어떤 아버지를 연기하려고 노력하셨는지 궁금하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종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남편이고 가장은 가장이다. 하지만 상황은 틀리다고 본다. '우아한 세계'의 상황, '관상'에서의 상황, '비상선언'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아버지지만 그 상황이 빚어내는 심리적인 섬세함과 내면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지점에서 '비상선언'만이 가지고 있는 인호만의 딜레마, 너무 절박하지만 구할 수 없는 처절함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