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은 [극락도 살인사건](2007)과 [핸드폰](2009)을 만든 뒤 방향을 완전히 튼다. [최종병기 활](2011)과 [명량](2014)으로 외세에 대항하는 역사이야기로 충무로 흥행감독이 된다. 최종관객 1761만 명이 지켜본 [명량]은 우리나라 역대 흥행 1위를 기록 중이다. 역대 2위는 극한직업(1626만), 3위는 신과함께 죄와벌(1441만)의 순이다. 오늘(27일) 개봉되는 [한산:용의 출현]은 김한민 감독이 필생의 작업으로 만들고 있는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 [노량:죽음의 바다]도 이미 촬영이 끝났고, 내년 개봉을 위해 후반작업 중이다. [한산]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순신 전문감독 ‘김한민’은 막힘이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좋은 질문입니다”라며 때로는 강의식으로, 때로는 ‘역사 덕후’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Q. [명량]을 작업하고 [한산], [노량]을 찍었다.
▷김한민 감독: “[명량]이 개봉된 뒤 8년 만에 [한산]을 공개한다. 그만큼 준비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명량]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사전 시각화작업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기존의 ‘콘티’ 작업을 넘어서 거의 애니메이션 수준의 사전 시각화 작업을 준비했다. 해전장면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70%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앞으로 보완해야할 게 30%정도 남은 셈이다.”
Q. [명량]은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와 함께 ‘국뽕’에 기댄 영화라는 평가도 있다. [한산]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나.
▷김한민 감독: “[명량]과 [한산]은 해전의 성격에 차이가 있다. ‘명량’은 어려운 상황에서 벌이는 뜨거운 역전승의 느낌이 있었다면 ‘한산’은 뭔가 수세적 국면에서 상황을 개선하고 승리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은 고독하다. 그만큼 불굴의 의지에 집중했다. [한산]에서는 주위에서 그를 도왔던 장수들의 비중이 크다. [한산]에서는 물처럼 포용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이 발휘된다. 배역을 달리 캐스팅한 것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기에 배우가 바뀌더라도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날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업적에 대해, 임진왜란의 전사(戰史)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주로 이런 내용의 역사 강의였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뭔가 시사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물론 강감찬, 을지문덕도 있겠지만 그들과 조금 다른 포지션이라고 본다. 좀 더 백성에 닿아있다. 임금과 백성 사이에 있는 이순신 장군,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일 것이다.“
“가장 오염되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다. 구국의 성웅이다. 조선과 일본의 7년 전쟁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투항한 왜장 준사(김성규)의 역할이 이를 대변한다.”
“격변의 현대사에서 우리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DNA에 이순신의 마음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익진을 펼쳤을 때 효율적인 해전을 보여주기 위해 근거리 전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왜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백병전에 능했다. 드라마틱한 시각적 해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산대첩은 세계 해전사에서 있어서 전무후무한 승전보이다. 체계적인 진법과 정교한 유인술, 첨단무기 거북선의 등장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갖게 한다.“ 등등.
Q. [명량] 개봉 이후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K콘텐츠를 만들 때 책임감이 드는지.
▷김한민 감독: “지금 K-콘텐츠가 각광 받는다는 것은 감독으로서도 멋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중상업영화를 만들 때 장르적 결합과 하께 관객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때 큰 성과를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K콘텐츠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재미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닿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명량]도 그런 면에서 사랑받았다. 감독으로서 그런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있다.”
Q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 [노량:죽음의 바다]의 제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김한민 감독: "촬영은 이미 마쳤다. 편당 제작비로 따지자면 300억 원 수준이다. [명량] 때와 비교하면 모든 게 상승했다. 어쨌든 부담이 되는 제작비 수준이다. [한산]과 [노량]은 거의 비슷하다. 그나마 두 편을 같이, 연이어 찍은 게 도움이 되었다. 두 달 정도 휴식과 정비 시간을 갖고 [노량]을 찍은 것이다. [노량]은 내년 초 정도 개봉을 생각 중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다.“
Q. 이순신 장군 역을 최민식(명량), 박해일(한산), 김윤석(노량) 배우로 각기 달리 캐스팅한 이유가 있는가.
▷김한민 감독: “다른 배우가 맡아서 연기한 세 작품을 보게 되면 각기 다른 면들이 모여 ‘이순신에게는 저런 매력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각기 용장(勇將), 지장(智將), 현장(賢將)으로서의 이순신을 생각하시면 된다. 이순신 장군은 과묵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융통성있게 대처를 한다. 그게 리더로서의 매력적인 면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린다. 이런 리더십이면 부하들이 신뢰했을 것이다. ‘학익진’을 펼칠 때까지 이순신이 보여주는 절묘한 균형 감각은 대단하다. 그런 섬세한 이순신을 박해일이 잘 연기했다.”
Q.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대결에 있어서 고민한 지점은.
▷김한민 감독: “상대방에 빙의되어 그 입장이 되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단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도 치열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대충 세를 과시하는 적의 장수가 아니다. 자신도 왜장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입장이었다. 역사기록을 봐도 그렇다. 이순신도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정말 그랬을 것 같다‘고 개연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한산대전의 본질적인 측면, 상대에 대한 첩보전, 탐색전, 디테일한 전술적 싸움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이순신과 적장이 부딪쳐야 관객들이 이 작품을 기꺼이 볼 수 있을 것이다.”
Q. 일본군을 어떻게 그리려고 했는지.
▷김한민 감독: “나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흥미롭게 본다. 재미도 있고 전쟁사적으로 관심이 간다. 그 시대의 다이묘, 사무라이들은 갈등은 겪으며 각축을 펼치다가도 협력하고, 어떤 지점에서는 천운으로 엮어지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통해 질서를 잡았고, 조선을 침공해 온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이 전국시대에 겪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기질과 생각, 전술을 가진 이순신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도전을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최전선의 와키자카가 했었다고 생각해 보았다.”
Q. 와키자카가 극중 김향기를 살려주는 이유가 있나.
▷김한민 감독: “하하. 표면적인 이유는 영화에 나온다. ‘정보를 다 내뱉기 전까지 안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멜로적인 느낌이 있었나요? 죽이긴 좀 아깝고, 명분은 있으니. 그런데 김향기가 연기한 정보름이 [명량]에선 이정현이 연기한 ‘정씨 여인’이다.”
(취재진 사이에서 “예? 아, 그래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한민 감독: “아, 그걸 이제 아셨어요? 정보름이 정씨 여인이 되고, 옥태연이 연기한 임준영인 진구가 되는데. 그걸 모르셨군요. 알아야 재밌는데...”
(김명곤도 잠깐 얼굴을 내비친다. 일본군 ‘도도’ 역으로 [명량]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놓칠 수 있는 인물은 ‘권율’장군. 김한민 감독이 직접 권율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유심히 보시길!)
Q. 김향기와 옥택연을 캐스팅한 이유는
▷김한민 감독: “이정현과 진구 배우는 [한산]이든 [노량]이든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고마운 배우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바뀌었다. 젊은 이순신으로. 그래서 정씨 부인의 전사(前史)로, 젊은 김향기가 등장하고 옥택연도 바뀐 것이다. 김향기의 역할이 기생이며 첩보원이다. 처음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난색을 표했었다. 그래도 배우에게 한 번 (시나리오) 봐달라고 했다.1주일 뒤에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김향기 배우는 작품을 보는 눈이 대단하다. 옥택연은 남자답고 굉장히 매력적이다. 예전부터 작업하고 싶었는데 비중이 작아 받아들일까 싶었다. 그런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해서 정말정말 기뻤던 기억이 난다.
Q. 한산해전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전쟁이다. 그 시국에 거북선의 건조나 조선 수군의 훈련장면 등이 거의 생략되고, 완성형 거북선이 등장하고 완벽한 학익진이 구현된다. 감독님의 이야기 방식과도 관련된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해전에 집중한 이유가 있는지. 고증 문제는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김한민 감독: “좋은 질문이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내러티브 포맷의 이야기이다. 플롯 작업에서 취사선택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영화감독의 과제이다. 다양한 인물들과 주요 사건을 그 지점에 집중해야하고, 관객이 따라가는 플롯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는 다시 드라마로 만들기도 한다. 거북선에 대한 착안과 나대용과의 만남, 거북선 제조과정은 영화 마지막에 엔딩타이틀 전에 잠깐 보여주긴 했는데 따로 외전 등의 형태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은 저도 있다.”
“고증은 다양한 방식의 고증 과정이 있었다. 거북선의 형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그것이 이층 구조인지, 3층 구조인지, 복층형태인지 등 많은 연구들이 있다. 나는 당시 실제 해전에서 어땠을까 고민했다. 가장 개연성 있게, 거북선이 활약하려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알맞을까 생각했다. 저의 추론과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개연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Q. 이순신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 생각인가.
▷김한민 감독: “개발을 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만들고 싶다.”
Q. 배를 바다에 직접 띄우지 않고 해전 장면을 다 찍었다는데.
▷김한민 감독: “사전 시각화작업을 한 이유는 지금 한국의 영화현장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가 엄격하게 적용되고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 스케줄링이 중요해졌다. 제작비가 상승했으니 효율적인 스케줄, 회차 관리가 필수적이다. [명량] 때처럼 바다에 배를 띄우고, 날씨와 파고를 천운에 맡기고 찍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릉스케이트장에 세트를 마련했다. 3천평 정도 된다. 스케이트장에 VFX스튜디오를 세팅했다. 아주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노량]까지 촬영을 했다. [노량]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밤 전투가 중요하다. 밤을 새우고 그 다음 날 오전까지 싸운 해전이다. 야간에 벌어진 전투가 규모가 크다. 그래서 조명이 밤과 낮으로 수시로,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했다. 그것까지 생각해서 바다에서 찍지 않는 게 정답이다.”
Q.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10년은 어땠나. ‘내가 왜 이걸 했을까’ 싶은 생각이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는지.
▷김한민 감독: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마다 난 [난중일기]를 즐겨 읽는다. 그 책을 보면 위안이 된다. ‘이 양반도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답답할 때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연구하고, 구현하느라 바빠서 스트레스 받거나 자책할 틈도 없었다. 정말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듯이 수시로 [난중일기]를 펼쳐봤다. 불면증에도 괜찮다. ‘힘들게 사셨구나..’ 위로를 얻으며 잠들기도 했다. 명량-한산-노량, 이 세 편이 지금의 우리 관객에게 진짜 위로를 주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순신 삼부작이 그런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이순신 전문가’ 김한민 감독의 모습은 ‘웅치전투가 실제로는 패한 전투가 아니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서이다. 김한민 감독은 아무 자료도 없이 임진왜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한민 감독: “웅치 전투가 패배는 아니었다. 왜장(고바야카와)가 웅치 골짜기를 넘기는 했지만 곧바로 고경명의 의병이 막는다. 전라도 관문인 웅치와 이치 고개의 전투는 한산해전과 같은 날 벌어졌다. 동복현감이었던 황진과 권율이 이들을 막은 것이다. 전라도 방어 승리의 계기가 된 싸움이다.” (웅치전투, 이치전투, 한산대첩은 1592년 8월 13일(음력 7월 7일)과 14일 사이에 벌어졌다)
Q. 외세와의 항쟁 측면에서 보자면 이순신 말고 또 관심이 가는 역사인물이 있는가.
▷김한민 감독: “행주대첩이 흥미로운 전투이다. 괴물 같은 조선의 장군 권율을 제대로 보여주는 싸움이었다. 일본 주력군의 잇단 공격을 차례로 격파한다. 당시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서 왜군과 싸우다 패하고 한양을 버리고 개성까지 후퇴하자, 권율이 졸지에 행주에 고립되었다. 왜군들은 보복공격에 나섰는데 이를 패퇴시킨 것이다.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순신의 좌장 배홍립이 그 때 행주에 있었다. 이순신과 육군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지점이라고 본다. 한산의 수군, 웅치와 이치의 의병과 관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행주대첩은 1593년 3월 14일(음력 2월 12일) 벌어져다)
Q. 해전 장면에서 자막이 사용되었다.
▷김한민 감독: “감독으로서 고뇌의 결단이었다. 전쟁의 밀도감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전쟁을 보여줄 때 그 에너지가 세다. 그런데 대사 때문에 (대사를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서는) 전쟁의 사운드를 눌러야한다. 그러면 대사가 안 들리게 된다. 그래서 자막을 활용했다. 낯선 시도인데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다. 전장의 생생한 밀도를 전달하기 위해, 순식간에 대사가 들어가고, 어는 순간 쑥 빠진다. 이번 결과 보고 [노량]에서도 사용할지 판단할 것이다.”
Q.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3부작으로 만들고 있다. [명량]과 [한산]을 끝낸 지금 소감은.
▷김한민 감독: “일단의 ‘진인사’(盡人事, 사람으로 할수 있는 것을 다한다)가 중요하고 그 다름이 대천명(待天命,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명량]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며 만든 것이다. 한 시간짜리 해전을 구현해 내는 게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당시엔 물에 대한 R&D나 시뮬레이션이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2002’의 물 효과를 담당한 사람이 왔었는데 당시 그 예산 가지고 작업하면 욕먹기 딱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하지만 그때 용기를 낸 것이 ‘올돌목’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쏘스라도 잘 받아서 쓰면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도했다. 역시 힘들었다. [명량] 때는 그런 공정을 하나하나, 우격다짐 식으로, 맨 땅에 헤딩하듯이 처리했었지만 [한산]과 [노량]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사전시각화 작업에 충실했다. 물에 대한 CG, 결과물에 대한 검증과정을 많이 거쳤다. 그래서 8년이 걸린 것이다. 예산의 도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태프와의 원활한 소통구조, 이런 게 더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노량]때는 훨씬 더 긴밀한 소통을 한다. 이순신 장군도 7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의사소통에서 비슷한 체계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영화를 이런 식으로 두 세편씩 몰아 찍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불굴의 영웅,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맹활약이 펼쳐지는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은 오늘(27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