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많은 국제영화제 중 아랍영화제란 것이 있다. 아랍문화권과의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해 열리는 영화제로 아랍 국가의 신작 영화들이 소개되는 아주 소중한 영화제이다. 게다가 전편이 다 무료로 상영된다. 어제, 개막식을 시작으로 7일간 모두 12편의 아랍권 영화가 상영된다. 혹시 아랍권 영화 보신 적 있으신지. 물론 ‘아라비아 로렌스’는 영국(데이비드 린 감독) 영화이다
이른바 ‘아랍의 봄’ 이후 아랍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집중 소개되는 ‘아라비안 웨이브’ 상영작 중 <지붕 없는 집>(House without roof)이 눈길을 끈다. 여성 감독 솔린 유수프(Soleen Yusef)의 작품이다. 이 사람의 고향은 이라크령 쿠르드 지역의 두호크이다.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영화를 배우고, 고향에 돌아와서 <지붕 없는 집>을 만든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라크와 독일 합작영화인 셈이다. 영화는 결국 감독의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전기가 부족해서 발전기를 돌리며 가족사진을 찍는 쿠르드의 한 가족을 보여준다. 평화롭다. 전기가 나가도 마냥 즐거워서 웃고 떠든다. 그리고 어느 날 하늘에서 엄청난 미사일이 쏟아진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성인이 된 이들 가족을 보여준다. 이들은 TV에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이들은 후세인의 핍박을 피해 유럽으로 피난 온 쿠르드 가족이었다. 늙은 어머니는 이제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자식들(알란, 얀, 리야)은 결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서가 전해진다. 고향땅에 꼭 묻어달라고. 전쟁 중에 먼저 죽은 아버지 옆에 꼭 묻어달라는 것이 엄마의 피맺힌 유언이었다. 그래서 알란, 얀, 리야는 어머니의 관을 차에 실고 쿠르트 마을로 떠난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깊숙이 패인, 그리고 군인들이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하는 그 땅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이 수월치 않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알란, 얀, 리야는 고향을 떠난 아픔만큼, 가족의 정을 느끼기 전에 너무나 큰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사람이라 서로에게 신경질적이며, 상처주고, 힘들어한다. 남매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어머니의 관을 아버지 옆에 나란히 묻을 수 있을까. 쿠르드의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영화를 보는데 ‘알 안팔 작전’(Anfal Campaign/ The al-Anfal Campaign)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죽고 가족이 고향을 떠나온 비극의 순간이다. 1988년, 이라크의 후세인은 북부지역에 집중 분포하는 쿠르드 족을 거의 몰살시키기 위한 인종학살전을 펼친다. 약 8개월 동안 5만에서 18만 여 명의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의 목적은 전투연령층 남자(기록에는 15세에서 50세, 어떤 경우는 70세까지)들의 제거였다. 독가스까지 이용되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이다. 쿠르드 족은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시리아로, 이란으로, 유럽으로 도피해야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민족중의 하나가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1920년대 이른바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게 될 줄 알았지만 2000만에서 2500만에 이르는 쿠드르 민족이 살던 땅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소련으로 갈가리 찢어진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50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라크 전체의 20%에 이르는 규모이다. 후세인 치하 때 학살당하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솔린 유수프 감독은 자신의 민족의 슬픈 역사를 영화에 담은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행복해야할 삼남매가 보는 TV뉴스에서는 자신의 고향 땅에서 또다시 펼쳐지는 대량학살과 죽음의 행렬을 지켜봐야했던 것이다. 이번엔 IS가 학살을 펼치는 것이다. ‘지붕 없는 집’은 오늘의 아랍권 영화가 어떤지 편한 마음에 앉았다가, 상상도 못한 쿠르드 민족의 슬픈 역사를 만나는 순간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