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데뷔작 [엑스 마키나]는 윤기가 흐르는 세련된 SF였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과 [데브스]에 이어 내놓은 신작 ‘멘’(원제:MEN)은 ‘컨츄리 하우스 호러’이다. 그런 장르가 있다면 말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골마을로 내려온 여자주인공은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것은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무례하게 굴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런던의 명물 런던아이(London Eye)가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에서 하퍼 말로위(제시 버클리)는 남편 제임스에게서 폭력적인 위해를 당하자 나가라고 소리 지른다. 그런데 남편이 그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모르지만 하퍼는 떨어지는 남편의 눈을 보았기에 자책감에 시달린다. 친구의 조언으로 작은 시골마을 콧슨(Cotson)에 위치한 고즈넉한 저택을 세 내어 잠시 머물기로 한다. 하퍼는 집 근처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오래된 철로 터널을 발견하는데 그곳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날, 나체의 남자가 집 밖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저택관리인(로리 키니어)도, 경찰도, 무례한 젊은 사람도, 술집의 마을사람들도, 교회 목사도 모두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외부인을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로 집단린치를 당하는 ‘외지인의 공포’와 저택에 갇힌 한 여자가 겪게 되는 ‘침입의 공포’가 뒤섞여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보게 되는 ‘그린맨’(Green Man)과 ‘시라 나 기그’(Sheela na gig)가 상징하는 민속학적, 혹은 종교적 공포가 의미심장한 OST와 함께 공포감을 극대화 한다.
그런데 가랜드 감독의 [멘]은 차곡차곡 쌓아올리던 공포가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비주얼 충격으로 하퍼가 겪은 ‘악몽의 실체’와 ‘원죄의 대물림’을 보여준다. 관객은 마치 러시아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무한번식되는 기이한 모습을 보게 된다. 모두가 남자이다. ‘MEN!’ 그것은 제임스에서 시작된 폭력일 수도 있고, 사과나무에서 시작된 원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영화는 마지막에 제임스와 하퍼의 대화로 끝이 난다. 악몽에 시달리는 하퍼가 제임스에게 묻는다. 원하는 게 뭐냐고. 그런데 어이없게도 남자는 ‘사랑’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레슬리 던컨의 ‘LOVE SONG'이다. 이 기괴한 타이밍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게 되면, 하퍼가 겪었을 공포의 원류를 짐작하게 된다. 제임스의 폭력은 일상적 난폭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재적 난폭성이든 우발적 폭력이든 정서적 학대를 일삼았을 남자의 찌질함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런던의 남자는 ’사랑‘에 칭얼대고, 콧슨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숫기 없는 존재들이다. 이 영화에서 ’그린맨‘이나 ’시라 나 기그‘보다 더 눈 여겨 봐야할 것은 아마도 극중에서 두어 번 흩날리는 민들레꽃씨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민들레 홀씨되어~~‘처럼 사방에 흩날린다. 아무리 보아도 무성생식하는 시골 남정네들의 처절함이 난폭하게 피어난 영화인 듯하다.
▶멘(MEN) 감독: 알렉스 가랜드 출연: 제시 버클리, 로리 키니어 ▶2022년 7월 13일 개봉, 100분, 청소년관람불가 # #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