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그라운드’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생태계를 영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을 품은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센터’이다. 인디그라운드와 KBS 독립영화관이 뜻을 모아 ‘독립영화관 X 인디그라운드 단편선’을 마련했다. 15일(금) 밤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백야>, <집나방>,<일시정지,시네마> 등 세 편의 독립영화가 시청자를 찾는다. 그중 <백야>는 염문경 감독의 25분 단편이다. 염문경은 EBS <펭수>의 작가로 유명한 다재다능한 창작인이다.
지혜는 젊은 희곡작가이다. 지금 막 희곡을 한 편 완성시켰지만 지도교수로부터 “네 글은 배타적이야. 날카로운 것은 좋지만 배타성이 강한 글은 결국 누군가를 찔러. 관객은 찔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때 전화가 온다. ‘벨마’. 한국에 연기를 배우러 온 터키(튀르키예) 학생이다. 지혜와 벨마는 연극계 원로 연출가를 성희롱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상태이다. 지혜는 성희롱이 성립이 안 되었지만 벨마는 재판을 진행 중이다. 너무나 좁은 바닥, 빤한 인맥의 연극판에서 “쉬쉬~”하며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연출가가 자살해 버린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을 겪는 지혜의 주위에 한 여고생이 맴돈다. 자살한 연출가,성희롱 했던 교수의 딸이다.
작품 [백야]는 한 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화계 미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제 정치판에서 연극판, 그리고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그 어떤 집단에서든 횡행했고, 덮여졌던 수많은 ‘현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백야]는 학교와 대학로 연극판에서 스승과 제자, 연출과 작가, 배우와 스태프 등이 ‘소통’을 빌미로 이뤄지던 ‘위계의 성추행’ 현장을 조용히 전해준다. 염문경 감독은 자신이 보고 들은, 그리고 조금은 경험했던 순간들을 [백야]에 녹여낸다. 작품은 ‘사건’보다는 사건 이후’ 펼쳐지는 ‘피해자’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지혜가 기억하는 순간은 확실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혜와 벨마를 앉혀놓고 연출가라는 작자는 예술을 들먹이며, 소통을 강조하며,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본인이 색기가 있어야 희곡이 섹시하게 나와.”라는 식으로. 그런데 그 작자가 자살해 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남은 피해자는 자기 나라(튀르키예)로 돌아가거나, 알 수 없는 죄책감, 미안함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말이다.
염문경 감독의 [백야]는 괜찮은 끝맺음의 방식을 보여준다. 비록 ‘가해자’를 ‘심판’하지는 못했지만, 정확히는 심판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남아서 문제를 해결해야할 사람이 있다. 가해교수의 유족인 딸과의 대면이다. 고등학생인 그 딸은 ‘아버지의 죽음’과 ‘여성의 피해’ 사이에서 어떤 인간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괜찮아요?” “사과하지 마세요.” 그 간단하지만 단순한 대화에서 영화는 의미심장한 모범적 사죄의 해결방식을 보여준다. 두 여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염문경은 감독과 각본과 함께 주인공 지혜를 연기한다. 여고생 정아는 정수미가, 벨마는 베튤(Zunbul Betul)이 연기한다. 쇼팽의 야상곡(녹턴2번)이 은은하게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독립영화관 #영화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