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이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에 의해 유려하게 영화로 옮겨졌다. 지난 달 스트리밍서비스(OTT)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안나]는 작은 거짓말들로 쌓아올린 화려한 궁에서 무너져 내리는 ‘거짓말쟁이’ 이유미의 위태로운 삶을 그리고 있다. [안나]에서 이유미(수지)에게 숨막힐 것 같은 불안감을 안겨주었던 현주를 연기한 정은채 배우를 만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정은채는 올 초 애플TV+에서 공개된 <파친코>에서 선자의 동서 경희를 연기했다. 인터뷰는 전체 6부작 [안나]가 4회까지 공개된 뒤 이뤄졌었다.
Q. [안나]가 공개되고 호평을 받고 있다. 본인은 어떻게 보았는지.
▷정은채: "일주일에 두 회씩 나가는 것이고 빠른 전개를 보이는 작품이라 이후 이야기를 많이들 궁금해 하더라. 작품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으로 올라온다. 출연한 배우나 만든 사람으로선 첫 회 반응이 중요한 포인트다. 그래서 방송시간이 기다려졌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인물묘사, 감정에 이입해서인지 전개가 느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함축적 표현이 많아서 보시는 분들이 장르적으로, 스릴러로 쫄깃하게 보시더라. 찍을 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재밌었던 경험이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지.
▷정은채: “시나리오를 받고는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몰입하며 봤었다. 현주 캐릭터가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의아했었다. 감독님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이 역을 맡아 잘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Q, 이주영 감독이 정은채 배우를 현주 역으로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정은채: “감독님은 전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기존에 보아왔던, 알고 있던 배우가 같은 연기를 답습하기 보다는 새로운 모습을 뽑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시청자들도 그런 새로운 모습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Q. 원작(친밀한 이방인)은 읽어보았는지.
▷정은채: “촬영하면서 궁금해서 찾아봤다. 감독님은 원작에서 어떤 포인트가 사람을 자극하고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며 극본을 쓰신 것 같다. 담백하기도 하고 건조한 글들이 현실감 있게 재구성되었다.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Q. 가장 흥미로운 각색 지점은?
▷정은채: “소설보다 조금 더 현실감 있게 각색이 된 것 같다.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안나는 우울한 분위기가 베이스에 깔려있다. 현주로 인해 그런 분위기가 바뀌고,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이 더해진다. 우스꽝스런 인물이 드러내는 다채로움이 매력적이었다.”
Q. 극중 현주를 어떻게 연기했나.
▷정은채: “사람들의 목소리 톤이나 말하는 방식이 그 사람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현주는 초반에 들떠있다. 어디론가 튈 것 같은 분위기이다. 초반에는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에 집중하고 후반부에서는 그게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긋난 세월을 담아야하니. 여하튼 상황이 달라졌으니 톤을 많이 다운시켰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Q. 극중 현주와의 싱크로율은?
▷정은채: “내가 현주와 싱크로가 맞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하하) 오해는 마시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는 지인들과 있을 때 느슨한 편이다. 농담도 하고 크게 웃고 밝은 모습을 현주에게 많이 넣은 것 같다. 얄밉고 표독스럽지만은 않게, ‘여자사람’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셨다.”
Q. 현주의 표독스러운 모습이란.
▷정은채: “현주는 악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유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이후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만 현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뒤에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 같다.”
Q.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유미를 마주쳤을 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정은채: “제가 생각한 현주는 순간순간 변화무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제스처라든지 표정변화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다음을 예측할 수 없기에 유미가 당황스러운 리액션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 테이크를 조금씩 변주하며 연기했다.”
Q. 현장에서 애드립은 어느 정도 허용되었나.
▷정은채: “많은 게 수용이 되었다. 감독님은 배우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자유롭게, 일단 해보고 좋았던 것은 킵 하고. 다른 것 해 보고 싶은 것 있으면 맘껏 해보라고 시간을 주셨다.”
Q. 혹시 촬영을 한 것 중에 편집에서 잘려나간 부분이 있는지.
▷정은채: “처음 시나리오는 8부작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공개될 때 스피디하게, 함축적으로 편집되어 6부작이 되었다. 2회 분량이 없어진 것이다. 아마 모든 배우들에게 잘려나간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왔던 장면에서 신 전체가 삭제된 것은 없다. 함축적으로 삭제된 게 초반부에 많다. 훨씬 예측불가한 연기를 많이 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현주에 대해 두 배 더 좋아해 주실 수 있었는데...”(하하하)
Q. 제작발표회 때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여성서사적 표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정은채: “제가 여자이기에 여자의 심리를 조금 이해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조금 빠르게 접근이 되는 부분이 있고. 감독님도 여자이고, 여자배우가 많이 출연하는 작품이라서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연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현장 자체가 일단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Q. 극중 현주는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는 파티걸로 유명했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정해준 상대와 결혼하는 캐릭터이다. 어찌 보면 불쌍하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정은채: “원래 너무 편하고, 우월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환경에서 자랐기에 선택지가 좁다. 결혼문제도 그랬을 것이다. 평범한 또래여자와는 또 다른 면이 있었을 것이다.”
Q. 김준한과 부딪치는 부분이 있나.
▷정은채: “아뇨. 촬영장에서 만나지 않았다. 주로 수지와 엄마(백지원)와 촬영을 했다.”
Q. 수지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정은채: “각자 다른 컨셉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좋았다. 서로가 서로의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대비되는 역할이었다. 감독님이 그 에너지를 생생하게 포착을 해주셨다.”
Q. 이주영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땠나.
▷정은채: “여자로서 좀 더 여자를 꿰뚫어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감독님은 사람들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평면적인 인간상보다는 한 사람을 다각도로 돌려보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캐릭터를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다고 생각하고 솔직한 모습과 부끄러운 모습 등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 작품은 그런 감독님의 개성과 고집이 잘 드러난 것 같다.”
Q. 극중에 등장하는 현주의 반려견에 대해.
▷정은채: “감독님은 저의 집에도 자주 오셨다. 강아지를 꼭 데려오라고 하시더라. 우정출연을 한 셈이다. 내가 집밖을 나갈 때 매일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현장에서 원 테이크로 오케이 받고 박수갈채를 받은 장면이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
Q. 수지와 연기열정을 펼친다. 현장에서 책임감은.
▷정은채: “사실 저는 리더십이 전혀 없다. 어떤 현장에서든 조용히 있는 사람이다. 이번 현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현주가 등장하는 장면은 분위기를 바꾸는, 공기를 순환하는 느낌을 주어야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그런 느낌이 들도록 노력했다. 늘 기분 좋은 에너지로 사람들과 편하게 있으려고 했다. 현장에 갈 때 항상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Q. 본인 성격은 어떤 편인가.
▷정은채: “저는 ‘I’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저의 시간이 꼭 필요한 그런 성격이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충전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따분하고 외로울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있어야한다.”
Q. 애플TV+의 [파친코]에 이어 쿠팡플레이의 작품에 출연했다. OTT에 출연하며 차이를 느꼈는지.
▷정은채: “작품을 선택할 때 그게 어떤 매체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파친코]는 처음부터 월드와이드하게 공개되었기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분명한 것은 좋은 작품이면 매체를 떠나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더라. 결국은 좋은 작품을 알아주시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평가받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오래간다고 생각한다. [안나]도 그런 작품이기를 바란다.”
Q. [파친코]에서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해외에 소개되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정은채: “내가 연기한 두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갭을 볼 수 있다면 재미있는 일이다. 연기자로서 다른 연기를 하며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 차이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작품 속 연기가 좋으면 결국 찾아보시더라. 제가 좋은 배우가 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Q. 다음 작품은 무엇으로 만나게 되는가.
▷정은채: “이동휘 배우와 찍은 작품이 하나 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오래된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생활연기를 선보인다. 애플의 [파친코2]는 아마 내년에 작업 들어갈 것 같다.” (정은채가 이동휘와 호흡을 맞추는 작품은 ‘왼쪽을 보는 남자, 오른쪽을 보는 여자’이다)
Q. 대중이 정은채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가 있다면
▷정은채: “대하기 쉽지 않은, 도시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들어오는 역할들도 전문적이거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 이번 [안나]의 현주를 통해 다른 연기를 한 셈이다. 저렇게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저의 방식인 것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되었으며 좋겠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도 제가 이런 캐릭터 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제가 몰랐던 부분을 이끌어낸 감독님께 고맙다. 감독님은 사람의 다른 면을 보시는 것 같다. 저의 다른 면을 끌어내기 위해 저를 불러 주시면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어떤 한 이미지로 국한되는 배우이기 보다는, 이 배우는 다음에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어떤 작품을 선택할까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쿠팡플레이 [안나]는 지난 6월 24일 1,2회 공개에 이어, 7월 1일 3,4회가 7월 8일 5,6회가 공개되었다. 전체 6부작이다. 쿠팡플레이는 8월에 [안나] 확장판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쿠팡플레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