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올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49개국에서 출품된 268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중 비주얼 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편 [버드 우먼](원제:Bird Woman)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빨간 패션의 인물이 괴이한 마스크를 쓴 스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일본 지하철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오오하라 토키오(大原とき緒) 감독의 21분짜리 히어로, 아니 ‘히로인’ 무비이다.
출퇴근 시간, 한국 버금가는 지옥철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의 지하철 안. 직장여성 토키는 오늘도 변태들의 틈바구니에서 일터로 향한다. 저 변태들의 눈길과 손길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토키는 마스크샵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특이한 형태의 마스크를 부탁한다. 커다란 부리가 달린 ‘따오기’ 마스크이다. 남들은 코로나 때문에 다들 하얀 마스크 차림으로 지하철을 탈 때 토키는 따오기 마스크 차림이다. 모든 가면 히어로들이 마스크를 쓰고, 쫄쫄이를 입으면 슈퍼 파워를 가지듯이 토키도 이제 내면에 숨겨두었던 정의의 힘이 분출된다. 지하철의 변태남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의 여성들은 맨 얼굴로는 항의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따오기 버드우먼의 활약상이 SNS를 타고 일본 전역에 알려진다. 이제 따오기의 숭고한 뜻에 동참하는 수많은 ‘버드우먼’이 지하철에 등장하게 되고 ‘변태 치한’에게 응징을 가한다. 남성(?)들의 항의에 직면한 도쿄도지사는 공권력을 동원, ‘버드 마스크’들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자발적 치한 퇴치 프로젝트는 여기서 멈출 것인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마스크’라면 사회적 격리, 차단의 수단을 최우선적으로 떠올릴 것 같은데 오오하라 토키오 감독은 ‘마스크’에서 슈퍼 히어로의 ‘정체 숨기기’에 초점을 맞춘다. 여느 이름 없는 영웅(하지만 모두가 아는 시민들의 네임드 영웅!)들처럼 버드우먼은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다. 몰래 화장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 지하철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복수전을 펼친다. 물론, 영화는 우화일 것이다. 일상화(?)된 변태들의 범죄행각에 어쩔 줄 모르고 속수무책 당하던 피해자들이 ‘조류 마스크’로 잠깐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유쾌하고도 통쾌한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주인공 토키로 나오는 인물이 바로 감독 오오하라 토키오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네덜란드에서도 버드우먼이 활약한다”는 SNS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거트잔 즈일호프(Gertjan Zuilhof)는 네덜란드 영화제작자이자, 페미스트 아티스트란다. 찾아보니 남자였다.
[버드우먼]은 몇 편의 단편과 함께 [부천 초이스단편1]로 8일과 13일 두 차례 상영된다. OTT웨이브에 마련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여하튼 유쾌한 작품이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