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휘 감독의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는 미국 소설가 빌 S. 밸린저의 서스펜스 <이와 손톱>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목으로 쓰인 ‘tooth and nail’은 영어관용구로 ‘결사적으로, 필사적으로, 죽을 둥 살 둥’이라는 뜻이란다. 누군가가 절박하게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을 형용했으리라. 살인으로 포장된 오랜 이야기를 들춰내기 위한 법정공방이 시작된다.
1947년 경성, 비 내리는 어느 날. 거대한 ‘석조’ 저택에서 총성이 울린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달려가서는 한 남자를 체포한다. 그곳에서는 불타버린 시신의 흔적과 잘린 손가락 하나만이 발견된다. 체포된 남자는 손가락만 남기고 불타죽은 어떤 사람의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영화는 이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전 이야기와 재판장면이 교차편집으로 진행된다.
고수는 가난한 마술사. 어느 날 임화영을 도우면서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여자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동판을 갖고 있었다. 의문에 싸인 여자에 이어 더 의문스런 남자가 등장하고, 여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제 고수는 복수에 나선다. 그런데 “누가?”, “왜?” 의문은 계속된다. 문성근은 돈이라면 뭐든지 변론한다. 이에 맞서 박성웅이 정의의 법전을 펼친다.
1947~48년의 경성의 법정이 아니라 변호사 천국인 지금의 미국이라면 이런 재판은 볼만했을 것이다. ‘시체없는 살인사건’과 ‘위조지폐동판’이 등장하면 아마도 O.J.심슨 쇼만큼이나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의) 미국 살인사건을 경성살인사건으로 바꾸면서 치장할 것이 더 많아졌다.
살인현장에 남은 것이라곤 핏자국과 한 사람의 손가락뿐. 그 손가락 주인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으로 경성 최대의 부자이자, 과거가 의심스러운 남자가 지목된다. 미국이었다면, 돈 많은 변호사의 화려한 언변이 펼쳐진다면, 배심원들은 이 말도 안 되는 법정쇼에 무죄를 선고할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살인의 법정쇼’가 아니라 ‘정의의 발현’을 이끄는 복수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영화는 해방직후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시대의 분위기는 그다지 느낄 수 없다. 일본어가 등장하고, ‘결정적으로’ 박성웅이 문성근에게 “반민특위에 간다.”는 말을 한다. 그 대사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그리고, 가장 아쉬운 것은 ‘석조저택 살인사건’ 제목이 전해줄 거대한 저택의 위압감이나, 살인사건의 서스펜스는 그다지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수의 조각 같은 얼굴에 감히 분칠을 하고, 김주혁이 냉혹한 연기를 펼치며, 오랜만에 돌아온 문성근이 비열한 연기를 한다지만 전체적으로는 반죽이 덜된 작품이다. 결정적으로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김빠진 이야기가 될 것이고, 원작이 있었다는 것을 몰라도 영화가 보여주는 대반전이란 것이 그다지 대반전이 아니란 느낌을 주니 말이다. 2017년 5월 9일 개봉 15세관람가 (TV특종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