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영화 [브로커]는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손길로 완성된 한국영화이다. [브로커]는 이지은이 자신의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유기하고, 그 아기를 송강호와 강동원이 빼돌려 누군가 애타게 아이가 필요한 사람에게 팔려는 인신매매 일당의 로드무비이다. 배두나는 이주영과 함께 이들을 쫓는 형사로 출연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는 [공기인형](2009)을, 송강호와는 [복수는 나의 것](2002) 등 네 편을, 강동원과는 오래 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2003)를, 아이유(이지은)와는 [페르소나](2019)를 찍은 연기경험 풍부한 배두나를 만나 영화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쉽게 배두나는 현재 미국에서 신작을 찍고 있다. 그 때문에 배두나는 칸에도 가지 못했다.
Q. [공기인형]에 이어 다시 한 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에 출연했다.
▷배두나: “감회가 새로웠다. ‘공기인형’을 2009년에 찍었는데, 그동안 감독님이 전혀 바뀌지 않으셨다. 귀여우신 면도 있고, 여전히 날카로우셨다. 같이 작업하며 ‘아, 맞다. 감독님이랑 작업하면 이런 느낌이었지’ 생각이 들었다.”
Q. 감독님 연출스타일은 어떤가.
▷배두나: “테이크를 많이 안 가는 것은 여전했다. 감독님의 촬영 스타일을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아마도 너무나 릴렉스하여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하는 영화를 많이 찍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제 테이크를 많이 안 가져간다. [공기인형] 할 때 놀랐었다. 그전에 테이크를 많이 하는 사람과 작업을 했기에 적응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이게 맞는 거예요?’하고 물어보고 그랬다.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에서 아기가 피곤해서 울었다. 이걸 어찌할 것인가. 인형을 들고 찍을 것인가 회의를 했다. 감독님은 아이를 안고 있으라고 했다. 감독님은 ‘등도 연기를 한다’고 말씀 하시더라. 아기를 안고 있는 것과 인형을 안고 있는 등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진짜 오랜만에 너무나 즐거운 작업을 한 것 같다. 그런 가치를 알아봐주는 분과 10여년 만에 다시 영화를 찍게 되었다.”
Q. 칸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겠다.
▷배두나: “이 영화를 찍으면 다함께 부산에서 강릉까지 해안선을 돌면서 내추럴한 모습으로 동고동락했었다. 꾀죄죄한 모습이었던 동료들이 칸에서는 턱시도와 드레스로 빛이 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 좋았다. 감독님이 레드카펫 행사 끝나고 ‘우리는 함께 걸었다’며 턱시도 안에 제 스티커를 붙여놓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셨는데 너무 고마웠다. 여기(LA) 스태프는 내가 연기에 몰입해서 우는 줄 알았을 것이다.”
Q. 참, 지금 어디서 무슨 작품 찍고 있는가.
▷배두나: “여긴 LA이다. 3월에 여기 넘어와서, 훈련하고 적응하고, 4월부터 촬영하고 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레벨문]이라는 굉장히 긴 영화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에 칸으로 갈 줄 알았는데 스케줄을 조정할 수가 없었다. [고요의 바다] 홍보할 때는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화상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다음에는 꼭 (기자와) 대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어서 죄송하다.”
배두나가 현재 LA에서 촬영 중인 영화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넷플릭스 SF작품 [레벨 문](원제: Rebel Moon)이다. 소피아 부텔라, 찰리 허넴, 레이 피셔, 제나 멀론 등이 출연한다. 최근 안소니 홉킨스의 합류소식도 전해졌다.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영감을 얻은 '폭군을 물리치기 위해 전사들을 소집하는 은하계 식민지 이야기‘란다.
Q. 고레에다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한국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그 과정에서의 디테일한 차이, 뉘앙스 차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배두나: “대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감독님은 영감을 받으면 현장에서도 수정을 한다. [공기인형]을 할 때도 그랬었다.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바뀌니 배우 입장에서는 고민하지 않고 완고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완고를 보니 어렵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쓰신 원본을 보고 싶다고 그랬다. 배우의 역할은 각본에 나오는 그 사람을 현실에 있을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한다. 대사를 하고 표정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그 자리에 있어야한다. 그런데 (한글번역) 대본만으로는 잘 모르겠더라. 관객은 모르겠지만 배우는 그 사람의 발자취를 알아야할 것 같았다. 일본어 대본에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말줄임표가 있었다. 어떤 여자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뉘앙스가 살짝 있었다. 말줄임표에서 상상하고 힌트를 얻었다.”
Q. 어떤 식으로 수진 캐릭터를 잡아갔는지.
▷배두나: “수진 캐릭터는 알쏭달쏭했다. 수진의 역할은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다. 대사에서 그녀의 인생을 이해할 백그라운드가 있어야했다. 그런 게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연기를 하면 민폐만 끼칠 것 같았다. 나 말고도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은데.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어대본을 챙겨보았다. 뉘앙스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니면 포기했을 것이다.”
Q. 수진은 처음엔 송강호 일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다가 점차 시선이 바뀐다. 수진의 심리는 어떻게 변하는가.
▷배두나: “배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연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발가벗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수진은 경찰로서 범인인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를 잡아 실적을 올리는 것이지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반에 ‘이럴 거면 납치를 말지’라는 대사를 한다. 소영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다. 저 애에게는 분명히 전사가 있을 것이고 아기와 관련한 말못할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똑같은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다.”
Q. 배우가 생각하는 수진은 어떤 인물인지.
▷배두나: “극중 수진은 나와 비슷한 연배이다. 20대, 30대 때는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정말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경찰이 되어 엄청나게 정의구현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수진에 대해 설명해준 것은 아이를 지웠던 경험이 있고, 경찰보다는 대학연극판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런 쪽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인간으로 갈등이 있을 시기이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하나. 난 잘 살았나 등등 생각이 많을 때일 것이다.”
Q. [브로커]와 함께 또 다른 출연 작품 [다음 소희]도 칸에 진출했다.
▷배두나: “너무 기분 좋았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에 송강호 선배가 있으니 칸 영화제에 갈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다음 소희]는 영화제 열리기 거의 직전에 끝났다. 2월말에 촬영 끝내고 3월 3일 출국했으니. 정말 짧은 시간 편집 끝내고 출품한 것이다. 올해 들은 소식 중에 제일 기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특별한 작품인데 함께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Q. 이지은 배우가 이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배두나에게 연락했다는데.
▷배두나: [고요의 바다] 촬영장에 있을 때 전화가 왔었다.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난 소영 역할이라고 생각하고는 ‘무조건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예, 무조건 하겠습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진짜 웃기죠. 이렇게 무뚝뚝한 여자들의 대화라니. 감독님이 믿고 맡기신 것이다. 이지은은 너무 멋진 배우이다. 소영이 연기를 보면서 울었다. 배우의 연기를 보고 운 경우는 얼마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배우이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한국영화를 찍었다. 고레에다 감독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배두나: “감독님 영화에는 완벽하다거나 엄청 멋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찌찔해 보이는 사람이 나오고,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하며, 같이 채우는 이야기이다. [공기인형]도 큰 주제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홀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서로 완성시켜주는 것이 감독님 영화의 특징 같다. 누구나 조금씩 허물이 있다. 그런 것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냥 없는 척 하는 거지. 그런 모습을 영화에서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사람이 모여 가족이 될 때 어떤 느낌일까. 그들이 조금 채워지는 것이 항상 힐링이 된다. 감독님이 관객에게 주는 힐링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배두나 배우는 해외 활동도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다. 연기자로서의 힘들지 않은지.
▷배두나: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렇다고 데미지가 올 정도는 아니고, 한국에서도 힘든 작품은 힘들다. 몸과 마음이 좀 힘들더라도 새로운 것을 할 때는 뭔가 만족감을 느낀다. 이렇게 외국에 나와 있으면 좀 더 강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다보면 동기부여가 된다.”
Q. 같이 연기한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배두나: “같이 연기한 이주영 배우와의 호흡이 제일 좋았다. 둘이서 작은 차안에서 잠복하는 연기를 계속 했다. 그리고 로드무비여서 계속 숙소생활 하며 붙어 다녔다. 주영이가 요리를 좋아해서 계속 요리를 해주었다. 자전거 갖고 가서 돌아다니고 그랬다. 콤비처럼.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팀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머지 배우와는 대사 같이 섞을 일이 없었다. 그래도 배우들과 같이 꽃게 먹으러 가고, 날씨도 좋았다. 정말 여행하는 느낌으로 찍은 영화이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배두나 ‘형사’의 복잡한 심사를 공감할 수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는 지난 8일 개봉되어 절찬리 상영 중이다. 배두나가 출연하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레벨 문]은 공개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배두나가 출연한 작품에는 정주리 감독의 칸 진출작 [다음 소희]와 함께 김윤석과 공연한 [바이러스](강이관 감독)도 있다.
[사진=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