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최근 막을 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신작 [브로커]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주 삼청동 인근 한 카페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브로커’를 포함하여 자신의 영화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가족’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영화는 8일 개봉된다.
Q. 한국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소개해 달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처음부터 이야기 하자면 2009년, 배두나와 함께 [공기인형]을 찍으면서 다음에 작품을 하나 더 하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한국배우와 작업을 한다면 누구와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그 때 [밀양]을 본 직후라서 송강호와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그 곳에 송강호 배우가 딱 서있더라. 이게 인연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송강호를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강동원은 2015년 [검사외전]의 홍보를 위해 일본을 찾았을 때 만난 것을 시작으로 인연이 이어졌다. 이렇게 세 사람이 만나는 플롯을 쓰고 보여주었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이야기로 뼈대는 만든 상태였다. 여기에 구체적인 조언과 서포트를 해 준 배우가 강동원이다. 한국에서 찍는다면 어떻게 하지, 어느 회사와 할지 연결해 주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점차 구체적인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Q. 배두나의 [공기인형]과 이 영화에는 빈 것을 타인으로 채워 넣는다는 연결점이 있는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는 [공기인형]과 관련하여, 요시노 히로의 ‘생명은’이라는 시가 언급된다. “생명은/그안에 결핍을 지니고/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는 구절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그건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한 것은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다. 작은 상자 속에는 작은 생명체가 있고, 조금 더 큰 상자로 엄마가 운반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상자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작은 상자 속 아기, 더 큰 상자 속 사람, 가장 큰 상자 속의 타자까지. 가장 큰 상자에는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큰 상자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모이는 엔딩을 생각했었다.”
Q. 타이틀 로고가 실과 실이 엮인 자수이다. 그리고 상연(송강호)의 작업이 세탁소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맞다. 자수처럼 서로 이어진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왜 세탁소일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가족]에서 안도 사쿠라가 일하던 직장이 큰 세탁공장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었지만 나는 세탁소에서 벌어지는 스토리가 좋았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강동원이 있는 교회에 자연스레 드나들 수 있는 업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식배달을 하는 직종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아기 기저귀를 수거하고 세탁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싶었다. 아, 말하고 보니 변명을 하는 것 같다.” (하하하)
Q. 한국의 명배우들과 연기를 펼쳤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일본에서 만들 생각은 없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 영화는 일본의 이야기를 전제로 썼다가 실현이 안 되어 한국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한국의 배우를 전제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다. 송강호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신부복을 입은 송강호가 베이비박스에서 아기를 꺼낸다. 자상한 웃음. 그리고는 아기를 팔아버린다’는 이미지. 그런 설정이 한 번도 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다.”
“일본에 있는 아기우편함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후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베이비박스의 원형이 되는 것으로 일본 구마모토 현의 한 병원에서 운영하는 아기 시설함이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들면서 일본의 입양제도를 조사하던 과정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과 비슷한 시설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10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입양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일본보다 더 정착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고, 이 소재를 영화를 만든다면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Q. 감독님의 에세이에서는 어릴 때 미아가 되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런 경험이, 소외나 공포의 그림자로 이 영화에 영향을 끼친 점이 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하하하.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나는 방향치이다. 수시로 길을 잃는다. 어릴 때 수시로 미아가 되었었다. 그중에 한 에피소드를 책에 쓴 것이다.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다. 항상 반복하는 일이니. 아이에 관심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처음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한 시나리오가 [아무도 모른다]였다. 그 영화는 부모에 버려진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내가 20대에 쓴 이야기인데 그게 왜 출발점이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떠올려보니 [아무도 모른다]를 쓸 때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찍은 것은 나가노현의 한 초등학생이 소를 직접 키우는 이야기를 홈비디오로 찍었던 것이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런 자연풍경을 담은 다큐보다는 당신이 나고 자란 도쿄의 아이들이 있지 않나’고 따끔한 충고를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한가하게 시골 풍경을 담고, 소를 키우는 것으로 힐링을 받을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아무도 모른다]의 바탕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찍는 게 재밌다. 이번 경우에도 해진 연기한 아역배우가 정말 재밌었다.”
● 이 때의 이야기는 감독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 나와 있다. 감독은 자연학습을 하는 나가노 현의 이나초등학교를 3년 동안 취재한다. 아이들이 목장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키워 젖을 짜는 이야기까지 담아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미소가 예정일에 앞서 송아지를 낳다 사산한다. 울면서 송아지 장례식을 마친 아이들. 그래도, 어미소의 젖을 매일 짜줘야만 했다. 아이들은 젖을 짜고, 데워 마시고, 시를 썼단다. (“쟈쟈쟈/ 기분 좋은 소릴 내며/ 오늘도 젖을 짠다/ 슬프지만 젖을 짠다”)
Q. 이지은 배우의 연기에 대해 말해 달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를 이지은의 목소리로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지은 배우가 작품에서 각자에게 말하는 톤이 다른데 내가 따로 특별히 주문하지는 않았다. 말투 포함해서 모든 것을 이지은에게 맡겼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장면이다. 그 장면자체가 이지은의 목소리를 전제로 쓴 것이다. 캐스팅 된 후에 추가된 장면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태어나줘 고마워’라는 말이 동수(강동원)에게 좀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 등장인물 입장에서 다 달랐을 것이다. 만나지 못한 어머니 목소리, 앞으로 만날 수 없는 딸의 목소리로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영(이지은)과 동수의 관계에서 보자면 그 직전에 관람차에서 ‘엄마 대신 용서할 게’라는 말을 한다. 이지은이 화답하듯이 그 대사를 한 것으로 생각했다. 서로 호응을 한 것이 좋았다.”
Q. 이번에 한국배우들과 소통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원래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일본에서의 촬영방식과 똑같다. 나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우들과 의식적으로 소통을 하고 전달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긴 하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라 더 의식한 것 같다.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펼쳤을 때 외국감독이라면 화려한 리액션으로 칭찬한다. 그런데 우리 동양 사람은 그런 걸 잘 못한다. 쑥스럽기도 하고. 저는 그러는 것이 가식적인 것 같다. 일본에서 작업할 때는 그런 리액션을 하지 않는데 이번엔 그렇게 했다.”
Q. 시사회 때에도 ‘언어의 뉘앙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는 부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지역적 언어의 묘미는 느낄 수 없다. 외국인 감독으로서 그런 ‘한국적 언어의 특성’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그런 생각은 했었다. 캐스팅할 때 사투리가 가능한 배우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배우가 있었다. 한 사람은 사투리를 하고, 또 한 사람은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예 지역색을 지우고, 신경을 덜 쓰자고 판단했다.”
Q. 범죄자를 다루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선악의 경계에서 측은지심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기본적인 생각을 말해 보겠다. 결말이 언급되니 조심해서 써 달라.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는 범죄란 것이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 개인 책임이라는 풍조가 있다. 범죄가 개인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고, 생활보호를 받는 사람의 권리가 제한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영화에서는 사건을 다룰 때 개인적 요인 외에 어떤 게 있을까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 범죄를 일으키는 것이 정말 개인적이 이유 때문일까. 항상 사회적인 이유를 담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장이 이 영화 근저에도 깔려 있다. 물론 범죄를 용인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상연(송강호)도 처음엔 이기적인 입장에서 아기를 팔려고 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아기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고 생각한다. 그 수단이 살인이라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옳지 않지만 그랬기에 우성의 생명을 지켰다. 아까 이야기한 ‘세 번째 (커다란) 상자’ 속에 상연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했다.”
Q. 차기작 계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다음 작품은 일본에서 찍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또 아이가 나오네. 그렇다고 트라우마가 이유가 아니다.” (하하하)
통/번역과정에서의 뉘앙스 전달 문제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집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서 흥미로운 경험담을 전한다. 2018년 칸에서 [어떤 가족] 상영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이다. 영어로 진행된 라운드인터뷰였던 모양이다. 한국기자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기사의 일본어판이 있어서 인터넷을 하다 보니 눈에 띄었다. 그중 한 기사의 제목은 ‘피를 섞어야 식구인가, 일본의 가족은 무너졌는데....’였다. ‘피를 섞다’라는 표현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 혈연을 말하나’하고 곧 납득했다. 분명 ‘피가 아닌 것으로 이어진 가족을 그리고 싶었다’는 취지를 말을 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내가 쓴 이 ‘혈연’이라는 일본어가 영어로 통역됐고, 그걸 들은 기자가 한국어로 바꾸고, 그것이 다시 일본어로 번역됐다. 이런 말 전하기게임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뉘앙스가 변한다는데 새삼 놀랐다. 그 외에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 몇몇 표현이 조금씩 보였다..... ”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찾아보았다. 우리말 기사가 크게 이상하진 않은 것 같은데, 감독은 의아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뉘앙스 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한일간의 미묘한 감정 차이, 일본인 감독 연출과 한국인 배우 연기 사이에서 펼쳐지는 미세한 갭을 느낄 수 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이주영이 출연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내일(8일) 개봉한다.
[사진제공= 영화사집/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