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은 데뷔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후,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르기까지 22년동안 무려 19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가 많은 요즘 시대에 그게 전부 ‘장편영화’라고 하기엔 단촐한 영화도 있고, 상업영화라 하기엔 너무나 사적인 영화가 많이 포함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배우들은 무보수(혹은 저가)에도 영예롭게 출연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끈질기게 자신의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국내개봉에 앞서 유럽의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되며 충분히 “세계적 명성의 신작”이라는 홍보 플래카드까지 완성시키며 영화팬을 만난다. 이번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널리 알려진 대로 ‘유부남’ 홍상수 감독이 ‘여배우’ 김민희와 로맨스를 펼치며 아내와 이혼소송을 불사하며 ‘사랑과 예술미학’을 꽃피운 작품이다. 지난 13일 열린 기자시사회장에서 홍상수 감독은 예상 밖으로 “우리 사랑하는 사이 맞아요.”라며 이번 작품의 사랑의 결실임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대신, 이날 참석한 다른 배우들이 불편해 할만큼 “영화는 영화인데, 왜 영화 아닌데 대해 관심이 많죠?”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영화는 이렇다. 김민희가 한국에서 노(老) 감독과 불륜을 저지르고 도망가듯이 떠난 외국에서 아는 언니와 함께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냥 공원, 그냥 사람, 그냥 자유로움. 피아노가 있고, 책이 있고, 자유롭다. 아니, 자유롭겠지.
그리고, 영화 후반부는 한국. 강릉에서 학교 선후배를 만나는 이야기가 담겼다. 정재영, 권해요, 송선미 등등. 그리고, 홍상수영화답게 이들은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그 감독 이야기’와 ‘유럽에서의 자유로움’을 술김에 펼쳐놓는다. 그러면서 홍상수 감독은 적절한 순간에 “그럴 자격이 있냐”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털어놓는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어쨌든 그 여배우와 노감독이 다시 만나는 장면. 물론 홍상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문성근이면 충분하다. 또 다시 술집에서 사랑했노라, 너네가 뭔데. 같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김에 다 한다. (물론, 그 와중에 불쌍한 영화판 스태프들이 감독 눈치 보랴, 영화 코믹요소 채우랴 고생이 많다)
영화는 최근 홍상수 감독영화에서 남발하는 ‘남의 이야기하듯’, 혹은 ‘꿈속의 이야기인 듯’ 별안간 장면전환과 함께 비몽사몽 뒷수습하며 끝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말이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불편한 불륜의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혹은 그런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눈감고, 오직 ‘영화적 미학’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 그 잘난 유럽의 영화제 심사위원들과 미학과 도덕은 별개라고 여기는 영화우군의 입장에선 – 영화가 재밌고, 생동감있고, 살아 숨쉬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상찬할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으리오. 삶이 그렇게 재밌고, 흥미로운 걸 말이다. 23일 개봉한다. 홍상수 감독의 창작 활동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의 작품이 더 재밌고, 더 화려하고, 더 젊어질 것이다. 예술적 성취? 물론 그것도 깐느와 베를린, 베니스가 돌아가며 챙겨줄 것은 확실하다.
참, 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사람을 위한 정보. 유럽(독일 함부르그)의 공원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뜬금없는 사람, 그리고 강릉의 펜션에서 유리창을 닦는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홍상수 감독은 의미 없이 그냥 넣은 것이라며 영화 관객은 보고 싶은 대로 보시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유리창 닦이가 파파라치나 기자(이른바 기레기)라면? 그들이 보든 말든, 문지르든 말든, 치장하든 말든, 우리네 삶은 타르코프스키의 이야기처럼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니라고? 상관없다. 그게 홍상수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니까. (TV특종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