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김희정 감독의 <프랑스여자>가 방송된다. 이 영화는 코로나 시국이었던 2020년 6월에 극장에서 개봉되었던 독립영화이다. 영화는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영화이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갔던 미라(김호정)가 오랜만에 서울을 찾는다. 배우가 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파리로 떠났던 미라는 배우가 되지 못하고,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다. 그런데 그 프랑스 남편에게 딴 여자가 생기면서 이혼한다. 그렇다고 실패한 삶일까. 트렁크를 끌고 서울로 온다. 오래 전 그와 함께 공부한 친구, 후배들이 모인다. 영화감독이 된 영은(김지영), 연극 연출가 성우(김영민)이다.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미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다르게 기억하는 여러 상황이 펼쳐진다. 풋내기 연기학도들이 술 마시며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누가 누구와 키스하는 식의 홍상수 식 이야기. 해란(류아벨) 이야기도 등장한다. 후배 해란은 몇 년 전 죽었단다. 그런데 미라는 작년에 파리에서 미라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미라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아니,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 카페에서 미라와 남편이 문제의 여자(김예은)와 대면하는 장면이다.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구나.” 한국여자였고, 후배였다. 낭패한 마리는 화장실로 가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순간, 천장의 등이 깜빡거린다. 그리고 서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울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과거의 인물은 현재의 술자리가 된다. 미라는 기억과 추억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해명하고, 변호하고, 합리화 시키려한다. 아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이야기를, 내 감정을 왜 알려줘야 하지?”라는 식으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정확히는 미라의 상태를 모르는 상태에서- 등장하는 ‘세월호 천막’ 씬은 뜬금없다. 갑자기 찾아온 한국, 서울의 광화문에서 천막에 불쑥 들어가 드러눕는 미라. 영화를 다 본 이후에야 그런 미라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굳이 해석을 붙이자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청춘에 대한 애통함일 것이다.
<프랑스여자>는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단순하게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거리감이나, 이상과 현실이라는 청춘의 고뇌, 그리고 배우와 연출자의 시각에 대한 해석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경계선의 착각에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삶이 끝날 때, 그런 극한의 순간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수많은 기억의 편린과 삶의 무게감이 순간적으로 응축된 것이다. 마치, 점멸하며 꺼져가는 전등불처럼.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감독의 스토리텔링은 깊이가 있다. 해럴드 핀터의 <배신>과 장 주네의 <하녀들>로 그들의 관계를 확장시키고, <줄과 짐>의 호수씬은 남편과의 관계를 은유한다. 김희정 감독은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 문예창작학과 교수이기도 하단다. <프랑스여자>는 그런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백만 가지 비밀과 사연을 숨긴 굉장한 작품이다. 과연, 미라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독립영화관 시간에 <프랑스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절대 놓치지 마시길. ‘방황하는 넋’은 안타깝다. 오늘밤 12시 10분,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된다.
▶감독:김희정 ▶출연: 김호정,김지영,김영민,류아벨,알렉산드르 구안세,박현선,백수장 ▶음악: 마르제나 마이처
* 이 글은 <프랑스여자> 극장개봉 당시 올린 영화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