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있어 온도는 중요하다. 한 쪽이 뜨거울 때 다른 쪽이 뜨겁지 않다면 결국 애매한 온도에서 서로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하기에, 끝난 후 더욱 큰 고독과 공허감으로 돌아온다.
영화 '파리, 13구'(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사랑의 온도가 높을 것만 같은, 화려하고 낭만적인 도시 파리 13구에서 사랑과 고독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흑백 화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아파트들을 비추며 나체인 에밀리(루시 장 분)가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다소 파격적인 나체 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고객들에게 요금제를 추천하는 영업 쪽 일을 하는 에밀리는 전화를 통해 고객들을 만나는 똑같은 일상 속에 산다.
이후 에밀리는 룸메이트 면접을 보게 된 카미유(마키타 삼바 분)를 만난다. 첫눈에 서로의 성적 매력에 빠진 그들은 처음에는 육체적인 관계만을 유지하지만 에밀리는 카미유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진지한 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그의 태도는 에밀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작품 내내 에밀리의 표정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쓸쓸한 내면이 묻어난다. 카미유에게 거절당한 이후 에밀리는 힘들어하고 직장에서 그는 결국 고객에게 대신 화를 내는 사고를 친다. 이후 회사에 잘린 후 가족에게 전화하지만 제대로 된 위로조차 얻지 못한다.
어딘가 분출구가 필요했던 에밀리는 클럽을 찾고 의문의 약까지 전달받으며 방탕한 삶으로 뛰어든다. 모르는 낯선 이와 키스를 하고 집에 와서도 다른 여자와 자고 있는 룸메이트를 붙잡으며 자신의 성욕을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들이대는 에밀리에게 진절머리가 난 카미유는 짐을 당장 싸서 떠나려 하고 에밀리에게 전화해 친구로서의 결별을 통보한다. 에밀리는 그를 잡는 과정을 통해 카미유에 대한 감정이 깊어졌음을 깨닫고 전화를 끊기 전 "나 보고 싶을걸"이라고 한마디를 남기는 표정에는 공허함만이 맴돌 뿐이다.
이후 '파리, 13구'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어진다. 자신이 동경하는 성인 배우처럼 꾸미고 입고 나간 뒤 대학에 알려져 성인 배우라는 오해를 산 뒤 대학을 나가지 않고 부동산업을 시작한 대학생 노라(노에미 메를랑 분)가 등장하며 작품의 서사는 격변한다. 이로 인해 후반부로 갈수록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눈을 뗄 수 없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정사신을 비롯해 파격적인 이 영화는 낭만과 사랑의 도시인 파리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로맨틱한 파리를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감이 아닌 무채색으로 담아내 낭만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대사의 힘이 막강하다. 사랑의 무게와 온도에 관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이끌어내며 사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도중에 떠나 앱으로 만난 남성과 함께 즉흥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에밀리, 성인 방송 배우를 따라 하며 그 속에서 분출구를 찾는 노라, 그리고 자신을 바람둥이라고 칭하지만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사는 카미유까지. 하지만 그 끝에서 사랑을 찾아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흔들리고 불안한, 하지만 때로는 그 불안함에서 오는 낭만에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5월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