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이제한 감독의 <마지막 손님>(2020)과 문재웅 감독의 <김녕회관> 등 두 편의 단편영화가 시청자를 찾는다. <마지막 손님>은 최근 개봉한 <소피의 세계>의 이제한 감독의 단편이다.
작은 영화사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진호(신석호)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수영(김새벽)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수영은 그동안 스위스의 몽블랑에 있었다고 한다. 진호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대표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감독인데 앞으로 작품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벽시계가 고장 난 모양이다. 진호는 소파에서 잠이 든다. 대사는 엇갈리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한 감독은 사무실에 혼자 있다가 문득 든 옛날 생각을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고, 그들 중엔 이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이들도 있었다. 사이가 틀어져서, 다시 만나는 것이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이들. 그 사람들은 무엇이었을까?”라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한 감독은 한동안 홍상수 감독의 영화사(전원사)에서 스태프로 일했었다. 영화는 마치 ‘영화과 교수’ 홍상수의 제자가 졸업작품으로 완성시킨 듯한 느낌이 든다. 흑백이며, 미니멀하며, 배우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역할에 몰입하여 ‘일상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내뱉는다. 그러면서 인물의 동선이 교차되고, 서로의 기억이 엇갈린다. 분명, 영화사 사람들이 영화 일을 하며 겪게 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그 파탄- 혹은 어긋남-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의 작품과 인간적 궤적(?)을 알고 있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물론, 이제한 감독은 그 속에서 자신의 영화적 미학을 다듬고 있다. 인물과 사건, 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 흐르듯이 지나간다. 아마도 그 인물들은 각자의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나, 기억의 왜곡, 혹은 상상이 가미된 것이리라.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그 인물의 정서를 조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근 개봉된 ‘소피의 세계’에서는 ‘소피’가 주인공이 아니듯이, ‘마지막 손님’의 주인공은 ‘손님’이 아니다. #박재환 KBS미디어 #영화리뷰
▶마지막 손님 ▶연출/각본/편집:이제한 ▶출연: 신석호, 김새벽, 설찬미, 문인환 ▶촬영:김수민 ▶녹음:서지훈, 이진근
■■인터뷰■■ 이제한 감독 - ‘마지막 손님’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마지막 손님>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이제한 감독: “<마지막 손님>은 2019년도에 쓰고 찍었다. 당시에 저는 작은 영화제작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혼자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킨 날이 있었다. 혼자 있으면서,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 특히 만난 지 오래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동반한 여러 생각들을 했다. 그러고 나니, 그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꽤 특별하게 보였고, 그것을 영화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고 영화를 찍게 되었다.”
Q. <마지막 손님> 제목의 의미는?
▷이제한 감독:. “영화는 수영이 진호를 찾아 사무실을 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 전체가 어떤 장소를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손님’은 잠시 방문했다가 그 장소를 떠난다. 수영 그리고 경수와 동수처럼. 사무실을 지키던 진호와 영주도 얼마 후면 그 장소를 떠날 것이다. 모두가 떠난 곳에는 ‘손님’이 있을 수 없으니. 아마도 그들은 ‘마지막 손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정하게 되었다.”
Q. 적은 인원의 제작진이 함께 했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이제한 감독: "작게 찍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곁에서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마치 소풍 가듯 옹기종기 모여서 촬영을 하고 싶었다. 옹기종기 모여서 찍고, 찍은 것들을 편집하고, 집에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작게 뒤풀이를 하는 내내 즐거웠다. 작은 규모였지만, 다들 능력이 뛰어났기에 가능했고, 그래서 촬영이 재밌었다.“
Q. 주인공 진호를 연기한 신석호 배우 캐스팅 과정은.
▷이제한 감독: "신석호 배우와는 <마지막 손님>을 함께 작업하기 전부터 꽤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신석호 배우는 제가 일했던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에 제작부나 연출부 일을 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자연스럽게 신석호 배우에게 부탁을 했고,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Q. 영화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던 진호로 시작해, 잠이 든 진호로 영화가 끝이 난다.
▷이제한 감독: "진호의 오래전 동료 수영이 그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게 되는 게 어쩌면 진호에게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에서 진호는 수영을 만나는데, 깨어난 진호는 사실 수영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수영은 그날 분명 사무실을 찾으려고 했었다. 잠을 자고 있는 진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호숫가에서 휘파람을 불던 수영이었으니까. ‘꿈’은 그렇게 진호의 마음을 그리고 동시에 수영의 마음을 이루어주는 어떤 장소가 되고, 깨어나고 나선, 그 마음만은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진호와 수영의 만남을 반증하는 장치가 된다. 저는 그러한 둘 사이의 거리, 마음은 있지만 재회에는 실패한 둘 사이의 거리가,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드러나기를 바랐다."
Q. 영화에서 수영이 먹고 있는 귤과 프랑스어, 그리고 고장난 벽시계에 대해서.
▷이제한 감독: "사무실에서 수영이 사소한 뭔가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귤을 까먹는 모습이 생각났다. 가끔 먹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가방에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게 전 항상 재밌게 느껴졌었다. 그 모습이 세심하고, 섬세한 사람들만의 특징 같다고 평소에 생각했다. 수영이 먹고 남은, 그 귤껍질은 영주가 사무실을 찾았을 때, 테이블 위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없는데, 그 흔적만 남은 모습이 재밌을 것 같았다.”
"수영은 스위스 몽블랑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진호에게 전하며, 그녀가 아주 잠시 한국에 들른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아주 먼 곳에서 온 사람이다. 그 느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수영이 프랑스어, 그러니까 다른 장소의 말을 하면 그것이 좀 더 드러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수영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 프랑스어 대사 장면을 만들게 되었다. 스크립터로 참여한 조희영 감독이 프랑스어에 능통해, 대사도 프랑스어로 번역해 주었다. 김새벽 배우가 프랑스어 대사를 외우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커다란 종이 보드에다가 대사를 발음 나는 대로 한국어로 적어서 장면을 촬영했다. 김새벽 배우가 시선처리를 잘해서 전혀 티가 안 났다. 재밌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손님>을 쓰면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무엇’이 사무실이라는 장소로 되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계를 상상했다. 진호에겐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공간에 여러 다른 시간에 있었던 과거들이 겹쳐지는 모습과 맞지 않는 시계가 재밌는 조합처럼 생각되었고, 그래서 그 사물을 영화에 등장시키게 되었다."
Q. 흑백영화로 제작한 이유가 있다면.
▷이제한 감독: "흑백영화를 좋아한다. 흑백영화는 칼라영화와는 다르게 화면이 단순하고, 또 단순한 만큼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가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명암으로만 표현되면서, 장면들이 꽤 생경하게 보이게 한다. 영화를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었다. 화면이 명암으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빛’이 무척 중요해졌다. 일광을 잘 포착하기 위해 촬영하는 시간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시간대마다 해가 비치는 장소의 특징을 꼼꼼하게 체크해서, 되도록 빛이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에 그 장소에서 촬영을 하려고 노력했다.“
Q. 영화는 크게 진호와 영주가 이끌어가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이제한 감독: "영화에서 진호(신석호)와 영주(설찬미)는 같은 장소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도착합니다. 엇갈릴 뿐, 만나지는 못하죠. 또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경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영주가 사랑하는 경수가 있고, 수영이 알고 지낸 경수라는, 실은 두 명의 다른 경수가 존재한다. 그 중 한 경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진호와 영주, 두 사람의 여정이 엇갈리듯 인물과 인물들은 서로 마주하기도 하고 금세 엇갈리기도 한다. 저는 그러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의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고 슬펐고, 그런 감정이 영화의 마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Q. 평소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이제한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작품 중엔 백 번 가까이 본 영화도 있을 정도로요. <마지막 손님>의 줌(Zoom), 꿈이라는 구조, 일상을 닮은 이야기의 형태, 그 외의 많은 것들이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에릭 로메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켄 로치, 차이밍량,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의 영화도 흠모하고 좋아한다. 영화에 대한 태도와 애정은 본받고 싶다."
Q. 근황을 전해주신다면.
▷이제한 감독: "주위의 도움과 운이 따라서 <소피의 세계>라는 장편영화를 만들고 개봉을 하게 되었다. <소피의 세계>가 개봉을 하고 관객을 만나며 영화를 좋아해 주신 분들이 건네준 작은 말과 사소한 눈빛에 큰 응원과 위로를 받았고, 그게 힘이 되어서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
Q.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이제한 감독: "영화를 찾아주시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손님>을 만들면서, 만드는 과정 그 자체에 다 함께 순수하게 즐거워했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심을 다하려고 모두가 노력했고요. 시청자분들께도 그런 저희의 마음이 닿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 이제한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