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감독은 올해 59살(1964년생)이다. 1990년대부터 충무로 영화판에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하지만 ‘영화’보다는 ‘소설’로 더 유명하다. [고령화가족], [고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을 쓴 작가이다. 그가 아주 늦은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아니라, 남(!)의 작품으로. 김언수 작가의 하드보일드 ‘부산건달’ 이야기인 [뜨거운 피]이다. 23일 개봉을 앞두고 감독이 된 천명관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부산 출신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 출신이란다.
Q.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게 되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천명관 감독: “충무로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30년 전이었다. 그때는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후 영화에 대한 꿈도 꾸었고, 좌절도 겪었고, 충무로를 떠났었다. 그러곤 다시 돌아왔다. 특별한 감회는 없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이 영화 마지막에 ‘뜨거운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허깨비처럼 쓸쓸하고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 헛것을 뒤집어쓰고 살아갈 것이다. 치욕과 슬픔에 발을 담그고.’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내 심정이 약간 그런 것 같다. 30대 때는 뜨겁고. 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작은 것이라도 이뤘다면 생이 또 달라진 것 같다.”
Q.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를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은?
▷천명관 감독: “나도 이야기꾼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만의 스토리가 많다. 자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했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10편은 될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다 까였다. 메이드가 안 되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감독을 맡게 되었다. 저를 믿어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원작 소설이 너무 재밌었다. [뜨거운 피] 감독 제안은 엉뚱했다. 매일 가위만 내다 계속 지다가 다른 것 한 번 내볼까하는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Q. 소설가 천명관에서 영화감독 천명관이 되는 부담감은 없는지.
▷천명관 감독: “소설가로 등단했을 때 ‘천재가 나타났다’는 그런 소리를 들었지만 그 이후는 내가 천재가 아니란 것을 거듭 증명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처음 영화를 만드는 것이어서 부족한 게 많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재주가 없다면 관객들이 먼저, 업계가 알아볼 테니. 결과에 따라 도태되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닐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가겠죠.”
Q.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은데.
▷천명관 감독: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브루스 리]도 어디선가 지금 영화로 제작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한테 시나리오 작업과 연출 제안은 있었지만 거절했다. 어려울 것 같다. 소설은 썼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작업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늪에 빠질 것 같았다. 비전을 가지고 더 열정적인 창작자를 만나기를 바랐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감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 작품은 라이트한 것이어서 부담이 적다.“
Q. 작품의 배경은 1990년대 부산 변두리 마을이다. 사투리 등 그때 분위기를 영화에 담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천명관 감독: “내가 부산 출신이 아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연출이란 것은 연기 지도가 다인 것 같다. 사투리를 할 때는 그 대사의 뉘앙스를 잘 몰라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했다. 부산 출신의 배우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들을 격려 고무하는 것이 감독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산 출신의 감독이라면 확실했을 텐데.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에 대해 멋진 비전을 가지고 연기를 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Q. 원작 소설의 인물, 관계를 영화로 옮길 때 어려웠던 점은.
▷천명관 감독: “어려웠다. 새로 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에는 장황하게 인물들 간의 역학관계, 갈등이 나온다. 건달들이 나오고, 유곽이 배경이고, 밀수이야기도 나온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다보니 2시간 분량의 영화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소설에) 있는 것을 담아내고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에 재밌게 넣은 것이 목표였다. 영화는 플롯의 예술이다. 나이는 있지만 영화 연출의 감이 없어서 어려웠다. 다른 감독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었을까.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Q. 극중 정우의 흡연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아주 ‘상’골초이다. 저런 상황에서 담배를 계속 피는 것은 초조함의 상징일 것 같은데, 흡연 장면에 대해 설명을 좀 덧붙인다면.
▷천명관 감독: “정우가 연기한 희수 캐릭터의 저변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건달이라 하면 상남자 포스에 우락부락한 체격도 갖췄을 것이다. 그런데 정우가 연기하는 희수는 곱상하다. 얼굴도 작고, 눈도 크고, 쌍꺼풀도 있다. 그런 모습이 건달에게 어울리나 갸우뚱할지 모른다. 그런 불안이 희수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불안감, 초조감의 상징이다. 거의 알코올 중독이라 할 만큼 술과 담배에 빠져 산다. 마흔 나이에 오갈 데 없는 건달의 초상을 정우 씨가 잘 구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Q. 소설가로서, 다른 작가의 글을 영화로 옮기면서 차이점을 두려고 한 게 있는지.
▷천명관 감독: “원작자(김언수 작가) 작가와는 잘 안다. 책을 쓸 때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다. 제가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 작품의 감독 제안이 왔었다. ‘형이 이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마시고 그랬다. 그때 뭔가 믿음을 준 모양이다. 내가 소설가 출신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소설가로 15년을 살았지만 그 전에 영화인으로 살았기에.”
Q. 영화를 하려다 소설을 했을 때 느꼈던 차이, 한동안 소설을 쓰다 영화계에 다시 돌아왔을 때 작업 방식의 차이가 느낀 게 있는지.
▷천명관 감독: “영화란 것은 대중의 검열을 받는 셈이다. 엄청난 거장이 아니라면 2시간 내에 맞춰야한다. 소설은 듀레이션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려줄 수 있다. 영화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갖고 있어도 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플롯의 예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럴 속임수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소설과 영화의 플롯은 다르다. 영화를 하다가 소설을 쓸 때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으니. 다시 영화로 오니 그게 어려웠다.”
Q. 조연들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천명관 감독: “철진을 연기한 지승현.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이다. 원작에서보다 조금 더 무게를 주고 키우고 싶었던 인물이다.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다. 뒤틀린 야망,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운명 같은 것. 악역이지만 불쌍한 면도 있다. 사이코패스 같은 면도 있고. 복잡한 면을 가진 인물을 잘 연기해 주었다.”
Q. 2020년 여름에 개봉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이제 개봉되는 소감은.
▷천명관 감독: “30년 만에 영화 데뷔를 했다. 하늘이 도와주시지 않아서 개봉이 2년이 미뤄진 것이다. 나와 안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봉되기 2년 동안 편집도 다시 하고, 녹음하고, 음악작업에, CG작업을 계속했다. 편집이 많이 바뀌었다. 퇴고의 시간이 길었다. 소설 쓸 때는 퇴고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 말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도움이 된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Q.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하기 위해 로케이션에 공을 많이 들였을 것이다. 원래 구상한 것과 달라 달라진 게 있는지.
▷천명관 감독: “1990년대는 먼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로케장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도로 표지판, 선까지. 그래서 시대극 찍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아예 사극이면 세트를 할 것인데 애매한 시대이다 보니 부산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김해, 진해, 기장, 포항, 울산, 창원 마산까지. 뒤지고 다녔고. 빨래공장이 있는 그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동네 자체가 아직도 낙후된 모습이 살아있었다. 호텔은 아쉽다. 마지막까지 찾을 수 없었다. 부산 송도, 감천항이 배경인데 촬영한 곳은 목포의 한 호텔이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사이즈가 비슷해서 선택했다. 외관이 비슷했다. 사이즈는 너무 커서도, 작아서도 안 된다. 바닷가 호텔이라서 CG를 사용했다. 호텔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게 아쉽다.”
Q. 부산의 사투리에 대해 자막을 넣을 생각은 없었는지.
▷천명관 감독: “자막을 고려했었다. 대사가 뭔지 모르겠다면 큰 리스크인 셈이다. 고민을 했지만 100프로 못 알아 듣더라도 뉘앙스 정도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자막을 넣는 것은 형식을 깨는 것이다. 내키지 않았다. 잘못 알아듣는 것은 다시 후시 녹음했다.”
Q. 느와르 장르에 흔히 나오는 잔인한 장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어떤지.
▷천명관 감독: “잔인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영화도 많다. 잔인하게 표현해서 얻을게 있을까.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보시는 분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것 같다. 너무 잔인하다고 눈을 감았다는 분도 있었다.”
Q. 이 영화의 정서는 어떤가? [신세계]보다는 [친구], [대부]보다는 [영웅본색] 같은 홍콩느와르에 가까운 것 같다. 느와르나 범죄영화에 대한 애정도는?
▷천명관 감독: “그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한국 조폭영화를 보면 검은 양복을 입은 수십 명이 도열해서 90도로 칼같이 인사한다. 승용차가 줄지어 있고. 그런 것에는 끌리지 않았다. 나도 홍콩느와르 많이 본 세대이다. 후배 영화인이 이 영화는 홍콩느와르 중에 [무간도] 터치가 아니라 초창기 [열혈남아]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왜 그렇게 보았을까 생각해 보니 이야기가 현실적이어서이다. 큰 조직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은 누추한 점이 그렇게 표현된 것 같다. [대부] 좋아하고, 마틴 스콜세지 좋아하고, 브라이언 드 파머 좋아한다. 아벨 페라라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같은 감독의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거창한 조직보다는 언저리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Goodfellas,1990)을 보면 조 페시, 로버트 드니로, 레이 리오타가 마피아 조직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이야기가 더 재밌는 것 같다. 복잡한 포지션이, 캐릭터의 실존이 더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다.”
Q. 천명관 감독의 영화감독 입봉과정이 남다르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천명관 감독: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처음에 문단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문학수업을 거치지 않고 소설가가 되었으니. 정상적인 코스라 하면 대학 국문과나 문창과를 나와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난 대학도 안 나오고 소설가가 되었다. 충무로에서는 영화과를 나오지 않았고, 연출부 경력도 없다. 대게는 연출부에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처음 충무로에 발을 들인 것은 특별했다.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그런데 이상한 영감이 생기더라. 서른 넘은 나이에 연출부 하려고 하니 조감독들이 저보다 어리더라. 누가 써주겠나. 몇 군데 두드리다가 영화사 총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냥 ‘따까리’였다. 집기비품 관리. 주차관리 일을 하면서 영화의 꿈을 키웠다. 물론 감독까지 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시나리오 작가로 픽업되면서 감독 꿈을 꾼 것 같다. 그러다가 일이 꼬였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충무로에서 쫓겨났다. 마흔 넘어서. 영화 쪽 일이라면 연출부는 안 해봤지만 궂은일을 많이 해봐서 일의 과정을 배울 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덕목이라면, 내가 생각하기엔 감독처럼 생겨야할 것 같다. 그게 중요하다. 돌아보면 1990년대에 감독처럼 생겼다는 것은 뭘까. 그때는 그때의 감독 상이 있다. 그 상에 가깝지 않으면 그 감독을 믿지 않았다. 아마 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여 확신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보험외판원하다 왔으니 누가 절 믿겠어요? 시나리오를 열 편 들고 다녀도 안 믿는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나리오가 못 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는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 홍보용 사진을 찍을 때 촬영팀에서 나보고 ‘어느 모로 보나 감독님처럼 생겼다’고 하더라. 재밌었다. 이제야 내가 감독의 얼굴을 가졌나. 너무 늦었지만 말이다. 내가 말한 감독의 얼굴(상)이란 복합적인 자기확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더 큰 확신, 정치적인 능력 그런 것이다.”
Q. 등장인물은 모두 하나같이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건달들의 처절한 인생 말고 더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천명관 감독: “빌런이나 안타고니스트에 더 끌린다. 빌런의 경우 불안한 자아를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위협받으며 자랐다. 불쌍한 인물일 수도 있다. 결핍된 것일 수도 있고. 복잡한 자아를 갖게 된다. 그런 인물에 끌렸다. 철진도, 손영감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구암이라는 동네가 그렇다. 원작에선 ‘남자들은 자라서 건달이 되고 여자는 술집으로 가는 그런 동네’라고 했다. 선택이 아니고 그들의 삶인 것이다. 처절해질 수밖에 없고,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들이다.”
Q. 30년 전 처음 충무로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그때 심정을 지금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 이후에도 30년 동안 영화의 꿈을 놓지 않고 계속 도전하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명관 감독: “꿈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다. 꿈은 젊은 사람이 갖는 것이고. 내게 뜨거운 것은 모두 지나갔다. 그래서 허깨비처럼 무의미한 게 되었다. 희수가 결국 저 위로 올라가서 왕이 되겠지만 한없이 무의미할 것이다. 제 마음속에는 그런 게 있다. 만약 내가 젊었을 때 감독에 대한 꿈이 간절했더라면 지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꿈을 포기하고 소설가로 살아보니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죽기 전에 영화 한 편 만들어 영화감독이 된다면 제 인생 꽤 괜찮은 것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말이다. 꿈을 좇아 열심히 한 것보다는 하다 보니 감독이 된 것이다. 그래도 잘하고 싶다. 한번해보니 더 잘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며 또 할 것 같다.”
Q.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천명관 감독: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감독을 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이 걸 완전히 망치겠구나, 쓰레기더미로 만들었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작자와 농담 삼아 ‘잘 되면 감독이 잘 된 것이고, 망하면 그것도 다 감독 책임’이라고 했었다. 프리 프로덕션에서 코로나로 개봉이 연기된 것까지 해서 5년이 걸렸다.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영화를 보면서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 힘들었지만 감독이란 것이, 영화란 일이 나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근사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멋졌다. 다음에 할 수 있다면 좀 더 잘 할 것 같다. 뭐, 다음에도 헤매겠지만.”
“여하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애쓴 흔적들이 좀 더 잘 전달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천명관 감독의 [뜨거운 피]는 23일 개봉한다.
[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