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할 신인감독이 등장했다. 오늘(24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축복의 집]의 박희권 감독이다.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천재감독은 아니다. 오랫동안 충무로에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영화인이다. 어떤 영화?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김성수 감독의 <감기>(2013)의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지난 주 티빙에서 선보인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의 극본도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축복의 집]은 완전히 다르다. 어둡고, 무겁고, 갑갑하고, 처량하다. 개봉을 앞두고 직접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 1층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 건물에서 드라마 각본 작업을 하고 있었단다.
**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 감독의 의도가 자세히 나와 있으니, 영화관람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전주(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해외영화제로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블랙나이츠영화제에 소개되었다.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 말에 본선에 초청을 받아 탈린에 갔었다.”
Q. 영화제에서 GV는 했었나? 관객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던가.
▷박희권 감독: “(2020년) 전주와 평창에서 영화제가 열릴 땐 코로나로 비대면, 제한 상영이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 촬영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Q. 그럼, 이 영화를 어떻게 찍게 되었는지.
▷박희권 감독: “다큐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사람이 죽어서 검안소에 왔는데 실족사로 처리된다. 그런데 염습하는 분이 목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였고, 수사결과 아들이 보험금 노린 범죄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감이 떠올랐다. 자기가 사는 곳이 아닌 먼 동네의 의사를 찾아가서 급하게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며 검안서를 발급받고, 경찰은 그것으로 사건을 종결하고, 염까지 하는 것이다. 각각의 행정처리 과정이 의심스럽다. 단계별 검증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았다.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볼까. 장르영화에 맞는 시나리오를 써볼까 생각했는데 촬영본이 이렇다.”
Q. 사실 영화에서 어떤 일이 정확하게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죽음을 둘러싼 어떤 음모가 펼쳐진다.
▷박희권 감독: “다른 영화에서는 부가적인 설명이 자세히 들어갈 것이다. 저런 상황에 놓였구나하고. 영화를 시작하면서 사연이 어떻게 되는지 일부러 넣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사연을 듣고 그 캐릭터를 응원하거 인물의 감정에 경도되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사건을 진행시켰다. 시체를 우연히 발견하고 처리하는 것으로. 그런데 사실은 치밀한 계획이 있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세가 깊다는 것을 알고 이미 수차례 자살을 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딸 해수(안소요)는 말도 안 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몇 번의 실패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딸은 직감적으로 엄마가 죽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많은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보험금 처리까지. 해수는 묵묵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 해수는 정말 말이 없다!)
Q. 그런 점에 보자면, 김재록 배우가 형사라는 사실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박희권 감독: “경찰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수갑이라도 노출시킬까 생각했었다. 아까 말한 시스템의 문제와 같다. 마주 앉은 사람이 진짜라고 느껴졌으면 좋겠다. 김재록이 들고 있는 문서에도 (경찰)독수리마크가 있고, 검안서나 사체인수서 같은 것으로 공관서 느낌이 난다.”
Q. 영화의 배경은 어디인가. 해수의 집은 부산(범천동 재개발지역)이다. 영화에서 사는 곳 주소를 말할 때 (서울) 신길동이라 말해 순간 당황했다.“
▷박희권 감독: “서울이 배경이다. 촬영을 부산에서 했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도움으로 로케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Q. 그럼, 해수가 엄마의 죽음을 앞에 두고 ‘보험금 수령’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인가? 경찰과 보험관계자가 선의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란 말인가.
▷박희권 감독: “다들 나쁜 사람들이다. 범죄공모자이다. 해수 같은 사람을 이용해서 보험을 이용해서 돈을 빼가는 것이다. 해수의 목표는 보험금이다. 그 이후의 계획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보험금에 대한 압박이 컸다. 다큐를 보고 상상을 더한 것이다. 언론에도 가끔 보험사기 이야기가 나오잖은가. 하나의 시스템이 원팀으로 이루어지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검안소와 보험 관계인이 굴러갈 수 있겠다 싶었다. 예전에 교통사고 나면 어느 병원 가라고 그런다. 나일롱 환자가 가득한 병원이야기와 보험관계자와 연계되어 있고 말이다.”
Q. 해수를 연기한 안소요 배우가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박희권 감독: “캐스팅이 막막했었다. 힘든 상황에 처한 인물이다. 가난과 고난 끝에 궁지에 몰려있는 이미지이다. 전형적으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 <인 허 플레이스>(알버트 신 감독,2014)를 보게 되었는데 소녀 역할을 한 안소요 배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역할 자체가 충격적인데 어린 소녀가 두려움 속에서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 연기를 했다. 아슬아슬하게 어떤 경계에 진입하려는 소녀의 역할을 잘 표현했다. 저 배우를 꼭 만나고 싶었다. 결국 캐스팅했고, 2018년 여름, 8월 한 달 동안 촬영했다.”
Q.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가 출연했다.
▷박희권 감독: “그렇다. 이정은 배우는 당시 저예산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TV드라마에 나오며 친숙한 정도였다. [기생충] 개봉되며 대배우가 되셨다. 후배가 영화한다면 작은 역할이라도 달려와서 도움을 주셨다. 요즘은 너무 유명하신 분이라, 시간이 없으실 것이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아마 기생충 이후라면 출연 제의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Q. <잔칫날>(김록경 감독,2020) 보셨는지.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가난한’ 남매의 이야기였다. 이 영화와는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박희권 감독: “그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Q. 영화에 자전적인 요소가 있는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경험이 포함되었나.
▷박희권 감독: “그런 것은 없다.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어 각본을 준비했다. 하나 있다면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 쓰던 시절,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식당에서 몇 달 일했었다. 입관하고 염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봤다. 병사, 사고사로 온 사람들. 끔찍하기도 했지만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Q. 이미 오래 전부터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데뷔를 독립영화로 할 생각이었나.
▷박희권 감독: “데뷔가 늦어졌다. 상업영화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저예산 독립영화를 먼저 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다른 매체에서 하는 것이 재미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관람형태가 다르다. 발품 팔아 직접 가서 봐야하는 것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각각에 맞는 작품이 있다. 그게 조금씩 달라 재밌다.”
Q. 시나리오와 드라마 각본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
▷박희권 감독: “본질적으로 같은 작업이겠지만 다르기도 하다. 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Q. 영화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화장터에서 해수가 엄마의 유골을 담을 ‘유골함’을 고르는 장면이다. 가격표를 보고 멈칫하는 장면. 그리고 이어 산에 유골함(나무곽)을 파묻는 장면이 슬펐다.
▷박희권 감독: “그렇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의 모든 절차에는 돈이 들어간다. 장례식장, 분향, 화장터. 해수는 돈이 없다. 화장한 후 뼈(가루)를 담는 유골함도 최소한의 것으로. 나무로 된 것이다. 추모공원에 안치하거나 땅으로 매립하려고 해도 돈이 더 들어간다. 그래서 남몰래 산 속으로 들어가서 맨손으로 파묻는다. 그 과정 자체를 신경을 썼다.”
Q. 영화를 찍으면서 신경을 쓴 장면이 더 있다면.
▷박희권 감독: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정사진. 테두리가 없는 모양이다. 원래는 해수가 돈이 없어 기본적인 것을 갖추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따로 제작을 한 것이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한다. 심플하게, 유골함조차도.”
Q. 1년이 지나, 남매는 다시 한자리에 모여 제사를 지낼까.
▷박희권 감독: “글쎄다. 보험금 중 2~3천 정도는 손에 쥐지 않을까. 남매는 제사를 치를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해수는 이후 어찌 됐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전쟁터에서 적이 몰려오는데 부상당한 병사가 있다. 몰살당하는 것이 현명한가 아니면 부상당한 동료를 버릴 것인가. 그들이 살 수 있는 더 현명한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축복할 수 있는 선택이기를.”
Q. 왜 제목이 <축복의 집>인가. 전혀 축복스럽지 않다.
▷박희권 감독: “집이 필요하다. 집이란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 가정일 수도 있고, 확대되어 동네, 사회, 국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들어갔으면 했다. 엄마의 집, 허물어지는 집이 과연 축복을 줄 수 있을까.”
Q. 준비 중인 작품은 있는가.
▷박희권 감독: “생각하는 것은 많다. 스릴러 시나리오도 있고, 코미디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야지. 각본은 티빙 오리지널로 어제부터 방송되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하고 있다. 12부작이다.”
Q. 아, 영화(시나리오)를 하다가 드라마를 하는 경우도 있는가. 흥미로운 경력이다.
▷박희권 감독: 이전엔 각색 작업을 했었다. 영화 쪽에 일이 많이 들어왔었다. 연출을 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돌렸는데 ‘시나리오는 좋은데 연출은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한 적이 있는데 그걸 드라마로 만들어보자는 제의가 있었다. 그게 중간에 엎어졌다. 영상화되지는 않았지만 대본이 관계자들 손에 돌다가 제의를 받았다. 써놓은 대본 없느냐 할 만한 작품 없느냐 해서 15년 전에, 처음 입봉 준비할 때 쓴 작품이 ‘제3의 매력’이었다. 그게 16부작 드라마 <제3의 매력>이었다. 아, 그전에 MBC에 방송된 <생동성연애>(2017)도 썼었다.“
Q. ‘엄중한 시기’에 영화가 개봉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으면 하는지.
▷박희권 감독: “개봉하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는 이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영화적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물론 상쾌하거나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어둡고 힘든 이야기지만 충분히 영화적으로, 장르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저예산독립영화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재밌는 영화로 접근해 주셨으면 한다.”
Q. <축복의 집>은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단편을 찍은 적은 없나.
▷박희권 감독: “10년 쯤 전에 ‘내 이웃들’(2011)이란 단편을 찍었었다. 미장센단편영화제에 출품했었다. 그때는 초청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아무 생각 없이 찍은 것이다.”
(어떤 내용인지) “따지고 보면 그 영화도 어두운 작품이다. 실연을 당한 한 남자를 랜선 이웃들이 응원한다. 그런데 힘내라 힘내라하고 응원하는 것이 알고 보니 ‘자살클럽’이었다. 여고생도 있고, 애기 엄마도 있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도 있는.”
(감독에게 부탁하여 영상을 받아보았다. 8분 16초짜리였다. ‘자살’을 다루는 방식이나, 그 사람을 지켜보는 관찰자들, 인간관계의 비정함이나 삭막함이 굳이 연결을 시키자면 연결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Q. 영화가 힘들다. 안소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 당시 어땠나.
▷박희권 감독: “처음 건네준 시나리오는 메모 형태에 가까웠다. 감정이 배제된 짧은 시나 대사 형식이었다. 그 행간을 보고 상황을 연기해야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단편영화도 아닌데 대게 짧았다. A4 10장도 안 된다.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어떤 느낌인지, 어떤 식으로 연기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사실 영화는 불친절하게 점프된다. 애가 어떻게 된 것이지? 저 상황은 왜 같은 내용이 생략되었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인 것은 열어놓고 대화로 풀어나갔다. 누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해수가 계단에서 전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누구한테 전화를 한 것일까? 나는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엄마가 오늘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해수는 동생한테 한 것 아닐까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해수가 장례식장에서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을 때 문밖에 어떤 사람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 사람이 누굴까. 보험사 직원일까? 확인하려온 철거반원? 어쩌면 아빠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생각한 것이 다를 수 있다. 해수에겐 위협적인 상황이 분명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가 해석한대로 연기를 한 것이다. 따로 디렉션을 주지는 않았다.”
“해수를 연기한 안소요 배우가 고맙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 촬영 할 때는 소속사가 없을 때였다. 가방 하나 갖고 와서,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던 친구였다. 다시 한 번 고맙다.”
박희권 감독의 <축복의 집>에 대해 영화잡지 <시네21>에서 김소미 기자는 "무정한 시스템 아래 휘발되고마는 가난한 개인의 죽음, 그것을 지켜보면서 허물어졌다가 다시 억세지는 가족의 초상에 관한 영화인 <축복의 집>은 근래 만난 가장 집요한 데뷔작이다."이라고 평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안소요(해수), 이강지(해준), 김나영(엄마), 김재록(형사), 이정은(보험), 나종지(의사)가 출연하는 박희권 감독의 '집요한 데뷔작' [축복의 집]은 오늘(24일) 개봉한다.
[사진제공= 고앤고필름/필름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