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 스틸 ⓒ 판씨네마 제공
"진정으로 소중한 건 쉽게 얻을 수 없어."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랑하는 것들은 애석하게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꿈꾸는 영원 같은 시간도,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꿈의 기록도,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었던 당시만의 열정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소중하고 진정한 것들은 가짜들에 둘러싸여 가끔 현혹되어 알아보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영화 '피그'(감독 마이클 사노스키)는 숲에서 모든 속세와의 삶을 차단하고 트러플 돼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롭(니콜라스 케이지 분)이 자신의 돼지를 뺏기며 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스스한 행색에 돼지와 함께 지내며 머리 한 올 조차도 제대로 빗어본 적이 없는 듯한 몰골의 롭은 놀랍게도 과거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셰프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사랑했던 로리를 잃은 후 산산조각 나게 되고 마주하기보다는 상실에 대한 망각을 선택한 그는 포틀랜드를 떠나 산속 깊숙이 15년 가까이 숨어 지낸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자신의 돼지를 납치한 범인들로 인해 파괴된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폭행까지 당한 그는 기절한 후 다음날 겨우 몸을 일으켜 자신의 바이어인 아미르(알렉스 울프 분)와 함께 돼지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아미르는 부부 문제가 있었던 자신의 부모님이 처음으로 웃고 떠들며 식사를 했던 식당의 셰프였던 롭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그의 여정에 홀린 듯 함께하게 된다.
피그 스틸 ⓒ 판씨네마 제공
영화 '피그'는 관객들의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작품이다. 세 파트로 나눠진 이 작품은 파트마다 요리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여져있다. 이는 롭의 여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음식의 이름이다. 마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음식의 맛이기에, 극 중 등장하는 음식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제대로 자극한다.
'피그'의 등장인물이 지닌 이해관계 또한 인상 깊다. 롭은 죽은 로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시간에 갇혀있으나, 반대로 아미르는 살아있는 어머니를 자살했다고 여기며 산다. 상실에 대해 마주하는 태도가 다르면서도 같은 그들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감싸준다.
이 관계 속에서 나오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알렉스 울프의 연기는 경이로움 그 이상이다. 실제처럼 롭의 불행을 끌어안고 상실을 마주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실에 대한 잔인한 잔상을 끌어낸다. 그와 함께 호흡하는 아미르 역의 알렉스 울프 또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자신을 향한 분노와 상실의 아픔을 온몸으로 공명하며 롭의 마음을 받아낸다.
피그 스틸 ⓒ 판씨네마 제공이 작품은 마음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상실을 마주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으나 온기보다는 정말 시리도록 아픈, 냉기가 가득한 영화다. 자신이 사랑하던 로리를 투영시킨 대상을 또 한 번 잃게 된 그는 '돼지가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붙잡고 고군분투하지만 그런 그의 처연한 모습은 91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 또한 상실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그러기에 더욱 그의 여정 끝에서 마주하는 클라이맥스 신은 인상 깊다. 쫓던 것이 돼지가 아닌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는 롭과 앞으로 상상이 아닌 진실을 마주하길 바라는 아미르의 대화 속에서 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상실은 누구나 버티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힘겨운 고통 속에도, 바라봐야 할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살게 할 유일한 이유다. 그것이 바로 '피그'가 상실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간곡히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2월 23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