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점심시간을 막 지나면서 화상으로 연결된 강길우 배우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10일(목) 개봉하는 독립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에서 강길우는 자살하려는 남자 모인을 연기한다. 매일같이 술에 의존하는 그는 자살하려는 생각뿐이지만 술 때문에 그 생각을 잊고 만다. 다음날 술이 깨면 또다시 죽을 생각이다. 어느날 화림(박가영)이라는 여자를 만나 함께 태백으로 삶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CF를 찍던 김지석 감독의 장편영화데뷔작이다.
Q. 죽으러 산으로 갔다가 죽으려는 한 남자를 보고는 급히 달려가서 구해서는 인공호흡을 한다. 아주 능숙하게 조치한다.
▶강길우: “”군대 갔다온 대한민국 남성이면 다 배우는 것 아닌가.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Q. 재작년(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때 GV에서 관객들은 어떤 질문을 주로 하던가.
▶강길우: “코로나로 열린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소규모로 GV가 진행되었었다. 영화 속 에피소드에 대해 많이들 여쭤보시더라. 여배우가 내뱉는 ‘중국’ 이야기, 뉴스에 흘러오는 ‘통일’에 대해서. 사소한 대사와 소재에 혼란을 겪는 것 같았다. 그런 걸 많이들 궁금해 하셨다.”
Q. 그건 나도 궁금하다. 뉴스에서 ‘남북통일 어쩌구’하는 이야기는 뜬금없다고 느껴진다.
▶강길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통일의 의미라기보다는 죽으러 가는 마당에 그런 것이 그 인물에게 중요한가? 생뚱맞다는 느낌을 들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모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분석했는지.
▶강길우: “중요한 것은 모인이 서울의 집에 있는 모습과 태백으로 떠난 후의 모습을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다. 1부와 2부로 나뉜 것처럼. 뒤로 갈수록 죽음의 시간에 가까울수록 모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죽음이 더 행복하고, 죽기 전에 갖는 1박2일의 짧은 여정동안에 생기가 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같이 호흡을 맞춘 박가영 배우는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지.
▶강길우: “박가영 배우는 영화제에서 만나 한 번 인사한 게 다이다. 함께 작품을 한 적은 없다. 박 배우가 저를 감독님에게 모인 역으로 추천했다고 하더라.”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Q. 극중 모인은 지속성 알코올 중독자여서 기억을 잃어버리는, 아니면,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그것을 잊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는지.
▶강길우: “전자에 가깝다. 알코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사 중에 누군가를 죽이고, 영혼(유령)이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그런다. 그게 실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환상, 착각이다. 꿈속의 이야기를 착각하는 것이다. 100퍼센트 알코올성이라고 생각한다.”
Q. 극중 모인과 화림은 기이한 동반여행을 떠난다.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는가.
▶강길우: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촬영 전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전 버전에는 비슷한 상황이 있다. 모인의 집에서 둘이 관계를 나누는 듯한 광경이 있다. 그 버전에서도 모인이 알코올 때문에 힘들다. 관계가 흐지부지 된다. 그런데 굳이 그런 것을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모인에게는 죽는 것(자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Q. 기이하지만 둘은 어떤 감정적 교류를 하는 셈이다.
▶강길우: “화림의 입장에서는 죽음의 동행 속에서 약간의 로맨스 감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았을까. 죽으러 가는 길이지만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모인은 결국 죽을 것 같고, 화림은 발버둥 치다가 죽지 않고 살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Q. 최근 소개된 작품에서 강길우 배우는 감정 소모가 많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연기하기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무엇인가.
▶강길우: “최근에 그런 인물을 많이 연기했네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정말 먼 곳> 같다. 인물들도 많이 나오고, 내가 맡은 역할은 극의 중심인물로 관계하는 것도 많고, 누구 하나나 말하기도 어려운, 레이어를 많이 가진 캐릭터라 연기하기가 어려웠다.”
강길우 배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브로커]에도 출연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이유가 출연하는 한국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마 올해 칸에서 공개될 모양이다. 개봉 전이라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대신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것에 대해 “저한테는 너무나 스타 같은 감독이라서 함께 작업한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영화를 찍는 데는 큰 차이가 없었다”면서, “대신 한국말을 못하시니 통역을 거쳐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를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명 한 명을 보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강길우 감독은 곧 TV드라마로 만난다. 송중기와 이성민, 신현빈이 출연을 확정 지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JTBC에서 올 하반기 쯤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촬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Q. 독립영화에만 출연하다가 세계적인 감독 작품, 종편 드라마에도 진출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하는 것이야 똑같겠지만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강길우: “많이 다르죠. 환경 자체가. 현장 스태프 수부터 다르다. 작품 만드는 현장이 많이 다르다.”
Q. [온 세상이 하얗다]는 5일 촬영으로 완성했다는데 가능한 일인가?
▶강길우: “저도 처음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5일에 못 찍는다’고 했었다. 감독님은 광고회사에서 일하기에 타임테이블을 잘 맞춘다고 자신하더라. 주말 이틀, 그리고 그 다음 주 금,토,일. 이렇게 닷새 만에 촬영을 끝내더라. 독립영화 여건상 제작비가 한정되어 있으니. 그리고 원래 직업이 있는 상황이라 촬영시간이 타이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업할 때 불편한 점은 없었다.”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Q. 독립영화에서 충무로 영화로, TV드라마도 연기의 폭을 넓혀나간다. 야심이 있다면.
▶강길우: “야심이라기보다는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연기자로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큰 영화, 작은 영화 구분 없이 꾸준하게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Q. 코로나 시국에 [온 세상이 하얗다]가 극장에 내걸린다.
▶강길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이 많다고 들었다. 상업영화도, 독립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배우로서, 그리고 영화팬으로서 갑갑하고 아쉬운 마음이 있다. 다행히 [온 세상이 하얗다]가 개봉되니 감사할 따름이다.”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Q. 참, 영화제목 [온 세상이 하얗다]는 어떤 숨은 의미라도 있는가. 영화 마지막에 보면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눈발이 휘날리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긴 한다.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는 영화 배경이 된 태백시 홈페이지에서 본 문구이다. 겨울 눈 축제는 정말 ‘온 세상이 하얗다’. 그것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찍을 때 눈이 쌓여있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감독님은 상관없다고 하셨다. 태백(太白)의 뜻일 수도 있지만, 죽고 나서의 세상이 일수도 있다. 비극이 아니라 더 나은 상태, 어둠이 아니라 온통 하얗게 되는 것.”
Q. 그럼,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해석했나. 산을 내려오나?
▶강길우: “난 열심히 죽으러 가는 느낌으로 찍었다. 여기가 아니면 저 쪽으로.”
Q. 살면서, 극도로 좌절을 해 본적이 있는지.
▶강길우: “저는 그 정도까지 좌절을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Q. 그래도, 결말은 조금 조심스럽다.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강길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것도 오지랖 같기도 하다. 그냥 이 영화는 모인과 화림이 하루, 이틀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충실하게 사는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충실하게.”
Q. 다시, 영화 속 이야기를 하자면, 휴게소의 강도 에피소드나 점집(무당) 신은 조금 뜬금없다고도 느껴진다.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인가?
▶강길우: “논리나 개연성은 잠시 내려두고, 삼자가 보면 우픈 상황의 연속이다. 죽으러 가는 길에 둘이 겪는 뜬금없는 장면의 반복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Q.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단다. 미대를 다니다 연기자로 방향을 튼 계기가 있나.
▶강길우: “미술팀으로 무대작업을 하다가 문득 연기가 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대단하고 느꼈다. 그렇게 시작한 것 같다. 연극을 줄곧 했다. 작품 한 편이 끝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또 한 편을 올리고. 또 다시 공허감. 그렇게 쉼 없이 해온 것 같다.”
강길우 '온 세상이 하얗다'
Q.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지.
▶강길우: “앞으로가 숙제이다.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진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맡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충분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연기를 한 것 같다. 검은 색, 흰색만 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회색도 있고 많은 인물을 연기한 것 같다.”
Q. [온 세상이 하얗다]를 어떻게 보았나.
▶강길우: “처음 봤을 때는 출연배우로 작품 확인차 보게 되더라. 두 번째 볼 때는 관객 분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볼 때부터는 너무 재밌었다. 뜯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궁금하게 하는 장면도 있고. 두 인물의 케미, 얼굴을 따라가면서 응원하게 되더라. 묘하게 위로받는 느낌도 들고. 두 인물이 어떻게 되었든, 좋은 선택이었기를 바란다.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보셨으면 한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강길우는 [신과 함께 -죄와 벌]과 [스윙키즈]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단편 [명태])2017)와 장편 [한강에게](2018)로 본격적인 독립영화의 기대주가 되었다. 작년 상반기에는 그가 출연한 <정말 먼 곳>, <더스트맨>, <식물카페, 온정> 등 무려 세 편의 작품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특별출연한 <아이>도 작년에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KBS독립영화관을 통해서는 [파도를 걷는 소년], [한강에게], [기대주], [사는 게 먼지] 등이 소개되었다. 그야말로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임에 분명하다. 올해엔 고레에라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와 JTBC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만나볼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KBS독립영화관을 통해 그가 출연했던 독립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을 듯 하다. 어쨌든 강길우, 박가영 주연의 [온 세상이 하얗다]는 10일(목)개봉한다.
#인터뷰진행=2022.2.7 화상인터뷰 #박재환 KBS미디어 #사진제공=눈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