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된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 설도 일가친척의 상봉이 왠지 죄스럽게 느껴지는 때이다. 설에 맞춰 내일(28일) 밤 KBS 1TV에서 방송되는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장아람 감독의 ‘전 부치러 왔습니다’가 시청자를 찾는다. ‘설’과 ‘전(煎) 부치기’라니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김병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들어 눈물이 많이 나죠? 갱년깁니다.” 아니라 다를까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라스트씬)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명절이 되자 결혼한 딸이 시댁으로 설 차례 지내려 내려간다. 가면서 먹으라는 ‘과일’상자도 내팽개치고서 말이다. 눈물 많은 아버지는 그 ‘과일상자’를 차에 싣고, 사돈댁으로 향한다. 부산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돈어른.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전 부치러 왔습니다.”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친정에서 시댁까지. 일가친척이 전도 부치고, 부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회도 먹고, 불콰하게 술도 마신다. 시집간 딸에 대한 애틋함이 물씬 묻어난다. 설이 끝나면 딸과 사위는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버지’(장인어른)에 대해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장아람 감독은 어느 해 명절, 가족에게서 벌어진 일화에서 이야기를 소재를 찾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명절에, 안쓰러운 딸을 위해 기꺼이 사돈댁을 향하는 갱년기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가깝고도 먼 그대를 위한 특별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단다. 어쨌든 설 연휴에, 특별한 귀향 풍습을 가진 한국 영화팬에게는 공감이 가는 착한 설 영화이다.
한편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한국 최대의 명절 설을 맞이해,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룬 세 편의 영화가 연속 방송된다. 장아람 감독의 <전 부치러 왔습니다>와 한준희 감독의 <삼춘>, 그리고 홍유라 감독의 <스노우볼>이다.
■■ 인터뷰 ■■ 장아람 감독 ‘전 부치러 왔습니다’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전 부치러 왔습니다>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장아람 감독: “명절 때 부모님과 함께 호박전을 부치고 있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제가 시집살이로 고생한다면 아빠가 대신 전을 부치러 가겠다고 하셨다. 제가 미혼이라 아빠는 왜 있지도 않은 시가에 엄포를 둘까 궁금해졌다. 그때 마침 아빠가 갱년기를 겪고 계셔서 감정의 동요가 자주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갱년기 때문인지 정말 저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신지 궁금했고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아서 만들게 되었다.”
Q. 가족소동극처럼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각 인물들의 설정은 어떻게 했나.
▶장아람 감독: “먼저 주인공들은 저와 가족에게서 가져왔다. 가족을 소재로 관객의 공감을 많이 얻으려면 너무 강한 개성은 반감 될 수 있으니 그 선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캐릭터들도 우리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해서 시나리오를 쓸 때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Q. 갱년기를 겪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장아람 감독: “주인공 ‘홍기’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딸을 둔 아버지로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 남성이다.갱년기를 마치 불치병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감정기복이 심해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그래서 자꾸 상황을 엉뚱하게 만드는데, 자세히 홍기의 행동을 들어다 보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인다. 홍기를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갱년기를 우울하게만 보내지 않고 갱년기로 딸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간 인물이다.”
Q.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장아람 감독: “저는 상업, 독립,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크레딧을 보며 좋았던 배우들의 이름을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다. 리스트를 보며 이 작품의 캐릭터를 빛내주실 것 같은 배우님들께 연락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함께 해주셨다.”
Q. 인물 등장에 있어서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장아람 감독: “아무래도 명절을 배경으로 한 가족 영화라 캐릭터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관계를 영화 초반에 모두 설명되도록 구성했다. 인물별 동선을 제일 고민했던 부분은 부산 시댁이었다. 거실과 주방을 한 번에 보여주기가 어려운 구조였고, 등장인물들에 비해 거실이 협소해서 여러 각도로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같은 장소가 영화에서 여러 번 나온다. 최대한 이미지가 중복되어 지루하지 않도록 인물들의 동선에 변주를 줬다. 화면을 2.35:1로 촬영한 이유도 인물에 있다. 양옆 공간을 활용해서 프레임 안에 많은 인물들을 담아 그들의 호흡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장아람 감독: “촬영 시작 전에 모여서 시나리오 리딩하던 날이 생각난다. 극 중 홍기의 사위이자 은영의 남편인 성훈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배우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는데도 각자 극 중 인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성훈이 너무 어수룩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편에 서서 토론을 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좀 더 확대해서 영화에 넣으면 좋겠다 싶어 시나리오를 수정 할 때 그날의 모습을 참고했다. 해당 장면은 광안리 횟집에서 술 한 잔 하는 장면으로 확인하실 수 있다.”
Q. 연출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면.
▶장아람 감독: “장르가 코미디인데 웃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웃음을 통해서 관객들이 유쾌하게 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되, 주인공 홍기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니, 홍기가 본인에게 집중하는 장면들을 잘 만들자고 다짐했었다.”
Q. <전 부치러 왔습니다>는 전작 <여자의 아내>와는 다른 소재, 다른 결의 작품이다. 연출할 때 작품의 소재나 아이디어는 어디서 떠올리는지.
▶장아람 감독: “저는 제가 느끼는 감정과 그에 따른 생각에서 많이 아이디어를 얻는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해석하려고 하고, 나름의 답을 내려도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잔상이 남는다면 이것을 작품으로 풀어봐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여자의 아내>를 시작 할 때는 제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디까지 내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고, <전 부치러 왔습니다>는 고맙지만 밉기도 한 가족과 함께 할 날이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고민되어 작품으로 만들게 되었다. 또한 전작과 다른 느낌인 것은 제가 특정 장르를 깊이 판다기 보단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아이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장르를 선택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Q. 작품을 연출할 때 영향 받는 것들이 있다면?
▶장아람 감독: “저는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를 좋아한다. 작품들 중에서 <허트 로커>를 제일 좋아한다. 인물들의 관계와 서사의 구조가 밀접하고 액션을 다루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이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많이 공부하고 있다.”
Q. 연출자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장아람 감독: “재생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흡혈귀라는 소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구상 중이다.”
Q. 연출의도에서 말씀하신 ‘가깝고도 먼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장아람 감독: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 아버지들의 이미지가 제게 다소 거칠고 투박했다. 지금은 아버지도 여린 마음과 섬세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성애도 모성애만큼이나 애틋할 수 있다는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장아람 감독: “‘가족’은 정말 애증의 관계 같다. 특히 명절 때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이 영화를 보시면서 미소가 그려졌으면 좋겠다. 또한 소원해진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지금 갱년기로 우울하게 보내고 계신 분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장아람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