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한 짓이 아니라 죽으려고 한 짓인 거야."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 김정영)은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시다' 혹은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성장해 현재가 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다. 노동운동을 했던 당시의 청춘이 지금의 청춘에게 보내는 기록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말 그대로 미싱을 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청계피복노동조합에 속해 노동운동을 했던 소녀들은 이제 중년의 여성들이 되어 미싱 앞에 선다. 그들의 손은 이전과 다르게 주름졌지만 몇십년 전의 섬세한 움직임을 정확히 기억하듯 칼 같은 솜씨로 미싱을 탄다. 더불어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거릴 정도로 귀여운 수다를 떠는 이들의 모습은 시간만 그들을 지나쳤을 뿐 소녀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잠 좀 잔 것이 그다지도 잘못된 일일까."
이어 청계피복노동조합에 속했던 이들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당시 서류 없이도 일을 할 수 있었던 평화시장에 모였던 소녀들은 취직을 한 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했었다. 소중한 이들을 위해 이른 나이에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들이 다른 의미로 살기 위해 농성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노동 운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갔던 이야기들, 누군가에게는 열정적인 청춘의 기록이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어둡고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지점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여기서 '미싱타는 여자들'이 타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차별화된 지점이 드러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색다른 이야기 전개 방식을 취한다. 노석미 화가가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프로젝트의 포맷 아래 노석미 화가의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고 그 뒤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타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미지를 함께 보며 당시 여공이었던 이들이 대담을 나누고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은 인상 깊다.
과거의 자료, 사진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된 장면들이 교차되는 편집된 부분 또한 108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찬찬히 끌어나간다. 전태일 열사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던 여공들의 이야기는 몇십 년이 지난 후의 우리에게도 마음에 벅찰 만큼 와닿는 청춘의 기록이자, 투쟁의 역사라는 사실을 뭉클하게 드러낸다. 1월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