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결코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아."
세상은 언제나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한 세상에서 술은 불가피한 존재다. 조금이나마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먼저 찾는다. 하지만 잠시의 망각을 위해 술을 찾는 행위는 그저 더 큰 공허함을 낳을 뿐이다. 중도가 없는 위안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할 것
2. 밤 8시 이후에는 술에 절대 손대지 않을 것
영화 '어나더 라운드'(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에는 이 두 가지 룰을 통해 인생을 바꾼 네 남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같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교육에 있어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잃어가던 중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하나의 실험을 통해 인생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술을 마시며 달려야 하는 호수 경주 게임에 참가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초반부는 혼돈의 도가니와 청춘의 순수함이 서로 뒤섞여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들에 비해 영화의 주인공이자 교사들인 마르틴(매즈 미켈센 분),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분), 페테르(라스 란데 분), 톰뮈(토마스 보 라센 분)와 상반된 분위기다. 한때 그 아이들처럼 청춘을 즐겼던 그들은 현재 지루한 수업만을 반복할 뿐인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역사 교사인 마르틴은 학생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직접적으로 반항을 들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가정에서도 자식들이나 아내의 무관심에 익숙하다. 그가 어디를 가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묻지도 않는 가족 구성원들에게서는 그저 공허한 여백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니콜라이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네 교사는 삶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들이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그들은 인간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0.05%가 부족하다는 스코르데루의 가설 아래 술을 마시며 매일 0.05%를 유지했을 때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기록하기 시작한다.
근무 수행을 하는 시간에만 술에 손대는 것을 조건으로 업무 효율성에 대한 실험을 한 그들은 저마다 일상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새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게 되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자유롭게 던지고 학생들을 즐겁게 만들며 어느새 잊고 있던 교사 일에 대한 열정도 되찾아 나간다. 그러나 중도를 찾지 못한 그들의 인생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네 남성의 여정을 통해 술과 인생의 관계성을 넘어 우리가 인생을 진정 즐겁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답하기 위해 '어나더 라운드'는 다양한 장치들을 작품 속에서 제시한다.
작품 중간중간을 채우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역사적으로 술고래이자 술과 관련된 성악곡을 작곡했을 정도로 술을 사랑했던 슈베르트의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며 시퀀스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더불어 술을 마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매즈 미캘슨의 연기에서도 느껴지듯 네 중년 남성들의 고독한 서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만한 바닥없는 공허한 마음을 떠올리게 만들며 관객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술을 통해 상승하고 하강하는 마음의 곡선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감정을 유발하며 때로는 최고의 영향을, 때로는 최악의 영향을 끼치는 술의 존재를 들여다보고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술잔을 기울여야 할 때를 되새기게 만든다. 더불어 술이 있든, 술이 없든 우리의 인생이 가야할 방향을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중하게 시사한다. 1월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