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나요?”
“예! 그렇고말고요.”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장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그 정도 읽었으면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며, 비틀즈 매니아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하루키가 2013년 쓴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비틀즈가 1965년 발표한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 제목의 그 소설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영시간은 179분. 충분히 길다.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스케 감독이 직접 부산을 찾은 가운데 소개되었고, 마침내 어제 한국극장가에 개봉되었다.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류스케를 좋아하거나, 일본영화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 남편, 아내, 정부, 그리고 남편의 운전수
** 스포 있음 **
배우 가후쿠(家福)와 아내 오토(音)는 부부이다. 남편은 연극연출가이고, 아내는 배우를 그만 둔 뒤 드라마 각본을 쓰고 있다. 가후쿠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을 무대에 올린 날 아내가 쓴 드라마에 출연한 젊은 배우 다카츠키가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오토의 글도, 가후쿠의 연출도 너무 좋아한다.”고. 그런데, 얼마 뒤 가후쿠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다카츠키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아내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2년의 세월이 지난 뒤 가후쿠는 히로시마국제연극제에 초빙된다.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의뢰받은 것이다. 이제 가후쿠는 도쿄를 떠나 히로시마에 머물며 한 달 반 동안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습을 한 뒤 보름 동안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동안 스물 세 살의 와타리 미사키가 그의 빨간색 사브900을 운전하게 된다. 가후쿠는 오디션을 거쳐 몇 명의 배우를 뽑는다. 그중에는 ‘다카츠키’도 포함되어 있다. 가후쿠는 그 남자에게 주인공 ‘바냐’ 역을 맡긴다.
●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하루키도 모르고 체호프를 몰라도 남편 가후쿠가 처한 상황은 쉽게 이해된다. 사랑했던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 그것도 네댓 명이나. 중년의 남편은 아내에게 미소를 짓고, 집을 나서면 입맞춤을 하면서도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며 ‘어디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생각할 것이다. 아내의 멱살을 잡고 따지거나, 현장을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를 잊으려고 할지도 모르고, 사랑했던 아내와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지 모른다. 어쩌면 아내의 남자를 찾아가서 무언가 말을 듣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의 말과, 그 남자의 기억과 남편의 처지를 병행시키며 가장 아름다운 막장드라마를 섹스 씬 하나로 봉인시킬지 모를 일이다.
●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하루키 원작소설의 딜레마에 미스터리와 힐링을 더한다. 남편은 상처받고, 남자는 의아해 뿐이다. 거기에 23살 운전수는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인 커플, 대만인 여자,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까지 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작품은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드라이브 마이 카’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그 소설집에 수록된 [셰에라자드] 이야기도 영화에 녹아있다. 칠성장어와 앙큼한 빈집털이 여학생 스토리 말이다
류스케 감독은 이야기꾼 하루키의 풍성한 에피소드를 세심하게, 그리고 알고 보면 에로틱하게 펼친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상처받은 남편의 극복기이다. 가후쿠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주어진 일에 몰입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만나게 된 다카츠키를 통해 진실을 마주하거나, 자신이 놓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의미가 있든 없는 말이다. 감독은 그와 함께 홋카이도 가미주니타키초 출신의 미사키의 정서적 회복도 담는다. 물론, 하루키의 단편소설에서는 운전수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감독은 과욕을 부린다. 누구에게나 산과 같은 과거의 인연과 폭설과 같은 무게의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번뇌와 미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꽃 한 송이, 장거리 운전, 그리고, 연극과 같은 삶일지 모른다.
참, 원작소설에서는 가후쿠의 차는 노란색 사브900 컨버터블이다. 영화에서는 빨간색 사브900터보가 등장한다. ‘비틀즈’의 노래 ‘Drive My Car’는 1965년 발매된 앨범 ‘Rubber Soul’에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에는 ‘Norwegian Wood’도 수록되어있다. 아마, 이 영화를 봤으면,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찾아 읽을지 모르겠다.
▶드라이브 마이 카 (ドライブ・マイ・カー)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오카다 마사키(다카츠키), 키리시마 레이카(오토), 박유림(유나), 진대연(윤수), 소냐 위엔, 안휘태 ▶2021년 12월 23일 개봉/15세관람가 #박재환 KBS미디어 #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