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에 큰 혁신을 이끈 것은 수에즈운하의 관통이다. 유럽은 더 이상 아프리카 대륙 남단까지 빙 돌아서 인도양으로 나서지 않아도 된다. 이집트의 북서쪽에 길-수로-을 뚫은 것이다. 1871년의 일이다. 당시 이집트는 이 엄청난 인류의 대역사(大役事)를 기념하기 위해 이태리의 음악가 베르디에게 오페라를 주문한다. 우여곡절 끝에 베르디가 완성시킨 것이 ‘아이다’이다. ‘아이다’는 이집트의 역사에 빛나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이집트와 이웃 나라 이디오피아(정확히는 누비아)의 피눈물이 서려있는 ‘사랑과 전쟁’이다.
100년 이상 사랑을 받았던 오페라 ‘아이다’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라이언 킹’으로 뮤지컬에 도전한 디즈니가 다시 한 번 엘튼 존, 그리고 작사가 팀 라이스와 손잡고 만든 작품이다. 팀 라이스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그리고 <에비타>의 노랫말을 지었으니 드라마틱한 역사의 시적인 가사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1998 애틀랜타, 1999년 시카고 공연을 거쳐 마침내 2000년 브로드웨이에 오른다. 우리나라에도 2005년, 2010년, 2012-13년 공연되었다. 그리고 이달 초 그 네번 번째 무대를 시작했다. 베르디의 오페라와는 다른, 브로드웨이와는 또 다른 ‘뮤지컬 아이다’이다.
장중한 오프닝 스코어에 이어 밝은 조명의 박물관 전시관이 보인다. 여기는 이집트관. 이집트의 고대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파라오의 공주 ‘암네리스’가 있다. 그 중아엔 커다란 조형물이 하나 놓여있다. 동굴의 형상이다. 이 곳에 오가는 관람객이 호기심으로 쳐다볼 때 암네리스가 노래를 부른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수천 년 전, 이집트 나일강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사랑과 전쟁’이 펼쳐지는 이집트로.
이집트군 사령관 라다메스는 강 건너 누비아를 정벌하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다. 포로 중에 용감하고, 다혈질의 누비아 여인 아이다를 노예로 삼아, 그의 약혼녀인 철부지 공주 암네리스의 시녀로 선물한다. 라다메스의 아버지는 야심가. 아들을 암네리스 공주와 혼인시켜 이집트를 차지할 생각도 있고, 늙은 파라오를 독살할 음모도 꾸민다. 그 와중에 라다메스는 ‘아이다’의 거침없는 행동에 점점 빠져든다. 알고 보니,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였다. 적대적 관계의 두 나라. 이집트와 누비아의 공주를 동시에 사랑하게된 라다메스. 장군은 사랑을 위해 나라를 버릴 것인가, 공주는 사랑을 위해 나라를 버릴 것인가. 역사상 가장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뮤지컬 ‘아이다’는 엘튼 존의 음악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대 이집트라면 먼저 떠오를 피라미드의 장관 없이도, 나일강의 붉은 노을을 통해 그 시대로 빠져든다.
이번 시즌 공연에서 라다메스는 김우형과 민우혁이, 아이다는 윤공주와 장은아가, 철부지 파라오의 공주 암네리스 역은 아이비와 이정화가 캐스팅되었다. 더블 캐스팅의 매력답게 개성적인 배우들이 펼치는 제각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암네리스에 빙의된 듯한 아이비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무대공연 특성상 ‘중력을 거스르는’ 푸른 수영장의 비키니 이집트 공주의 장면을 포함하여 화려한 패션쇼는 엘튼 존의 음악적 매력을 비주얼하게 강조한다.
수천 년 전, 나일강가에서의 펼쳐지는 사라진 왕궁의 러브스토리는 마치 ‘스타워즈’의 스페이스 에픽만큼 ‘현실성 없는’ 동화로 다가올 수밖에. 그런데, 나라 잃은 민족의 백성과 그들이 떠받드는 굳센 의지의 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북간도에서 펼쳐지던 우리의 ‘아리랑’과 어느 면에서 겹쳐진다. (뮤지컬 ‘아리랑’도 신시컴퍼니가 무대에 올렸다)
뮤지컬 ‘아이다’는 내년 3월 11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