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리저렉션 스틸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8년 만의 후속작을 만들려면 이보다는 더한 각오가 있어야 했다. '매트릭스' 3편에서 평화를 대가로 죽음을 택한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를 다시 매트릭스 세계로 끄집어낼 것이었다면 정말 '제대로' 보여줘야 했던 4편은 그저 긁어 부스럼일 뿐이었다. 대체 147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에도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대신 관객들의 하품을 유발하는 작품이 탄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매트릭스' 시리즈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사람의 선택을 다룬 철학적인 주제가 담겨 있는 영화였기에 기존 팬들에게도 이해 진입 장벽이 높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소재의 참신성과 액션적인 재미, 그리고 관객들 또한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개연성 있는 서사를 통해 폭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스틸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에 18년 만에 돌아온 대망의 4편,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감독 라나 워쇼스키)은 3편에서 죽음을 택했던 네오가 그의 과거가 그가 창조한 가상의 게임이었을 뿐이라는 설정 아래 게임 개발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자신의 현실이 사실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빨간약을 삼키고 기계들과 전쟁을 펼치는 현실로 돌아간다.
물론 작품 부분 부분 등장하는 떡밥들은 흥미롭다. '매트릭스' 시리즈 전작들에 숨겨져 있던 흰토끼, 빨간 약과 파란 약 같은 상징들은 이전 시리즈들을 좋아했던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서사 자체가 중구난방인 덕분에 이러한 떡밥조차 적재적소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감독이 무엇을 설명하려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명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전작들에서 등장했던 명장면을 교차시키며 똑같은 대사, 똑같은 배경에서 그저 리플레이하는 듯한 장면들은 지루함만 유발할 뿐이다. 더불어 '매트릭스'의 묘미인 액션신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3편에서 주인공 버프 제대로 받아 무적이나 다름없었던 네오는 이번 작품에서는 각성했지만 총알을 막는 능력밖에 쓰지 못한다. 팬들을 전율시켰던 고공 점프 능력을 활용했다면 더욱 재밌고 창의적인 신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스틸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캐스팅이다. 18년 만에 재회한 네오 역의 키아누 리브스,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를 보는 것은 반가웠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캐스트들이 교체됐다.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도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정이 가진 않는다. 특히 그중에서도 충격과 공포의 캐스팅은 새로운 모피어스다. 세상 방정맞은 모피어스는 '결국 왔군'이라고 말하는 등장 신 등 다양한 명장면을 따라 하지만 재미없는 성대모사를 하는 코미디언을 보는 듯한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에 존재했던 레전드 캐릭터의 멋을 지우는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매트릭스' 4편의 등장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는 지금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역대 스파이더맨들과 빌런들의 짜릿한 동창회를 통해 기존 시리즈들을 좋아했던 모든 스파이더맨 팬들에게 헌정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었다면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오히려 '매트릭스' 시리즈 팬일수록 실망감을 크게 느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관객들의 탄식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마치 영화 '해바라기'의 명대사처럼, "꼭 그렇게 4편을 만들었어야 했냐!"라고 외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매트릭스'의 열렬한 팬이라면 단언컨대 높은 기대감이 독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12월 22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