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이어 엄청난 쓰나미가 일본 해안에 들이닥쳤고,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하는 사상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노후화된 원전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 ‘걱정과 우려’ 속에 재난영화 한 편이 완성되었다. ‘판도라’이다. 한반도에 초대형 지진이 일어나고,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다는 내용이다. 끔찍한 상상력의 영화가 ‘결국’ 개봉하는 것이다.
9일 오전, 서울 CGV압구정에서는 영화 ‘판도라’의 제작발표회를 겸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판도라’는 영화에 대한 홍보는 최소화한 채 ‘거의’ 비밀리에 완성되었다. 그동안 이 영화 개봉을 저지하기 위한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만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과연 감독과 배우는 무슨 말을 했을까.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박정우 감독과 배우 김남길, 문정희, 정진영, 강신일, 김대명, 유승목, 김주현이 참석하였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붕괴 사고라는 사상초유의 재난을 다룬 내용이었고, 최근 어수선한 정국 때문인지 이날 제작보고회는 무척이나 진중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살인 기생충으로 인한 대혼란을 그린 영화 ‘연가시’로 450만 관객을 동원했던 박정우 감독은 4년 동안 재난영화 ‘판도라’의 완성에 매달렸다. 박 감독은 “연가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유형의 재난을 리서치했다. 그러던 중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웃나라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원전의 문제를 생각해야하는데 그러지 않더라. 그래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남길은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을 연기한다. 거의 메이크업 없이 최대한 편한 연기를 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눈빛 안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동네 바보오빠 같은 편안함을 관객에게 주려고 고민했다.”
정진영은 영화에서 한별1호기 원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등장한다. 보고서를 올렸지만 좌천되는 인물이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이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원전에 대한 사전 공부를 시켰다. 중수로, 경수로의 차이나, 원전구조 같은 것, 우리나라 원전의 실태, 문제점. 다큐멘터리처럼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진실성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했다.”가 영화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날 배우 강신일, 문정희, 김대명은 가슴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리본 뱃지를 달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강신일 배우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고는 ”‘판도라’는 가족애, 인간애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작품이다. 엄청난 재앙 앞에서 남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있다. 좀 더 건전하고 온전한 사회를 구축하는데 게을렀고 무책임했던 나이 먹은 사람의 반성의 의미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개된 동영상에서는 초대형 재난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의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공교롭게도 4년 전에 쓴 시나리오가 지진이며 현재 정국과 맞닿아 반갑지는 않다”며 “대통령은 멋있게 만들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면 짜증이 난다. 김명민을 두고 심성은 국민을 걱정하고 의욕적이지만, 주변 시스템이 대통령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결국 좌절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나서서···. 거기까지”라고 말해 영화 속 대통령의 결단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지진과 원전 폭발이라는 사상 최악의 재난을 다룬 영화 ‘판도라’는 12월 개봉된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