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셔야 그 대의를 이룰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의와 대의는 한 끗 차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 되고 실패한 쿠데타는 반역에 그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승리가 곧 정의인가. 대의만 있다면 승리를 향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일까.
이렇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만한 도덕적 딜레마를 스크린 속으로 옮겨온 작품이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의적절한 영화인 '킹메이커'(감독 변성현)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김운범(설경구 분)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쟁취해 내는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분)의 만남을 그려냈다.
우연히 김운범의 연설을 길거리에서 듣게 된 서창대는 그에게서 무언가 반짝이는 힘을 발견한다. 서창대는 그날로부터 김운범에게 편지를 보내고 다짜고짜 김운범의 사무실에 들어가 다음 선거의 전략가가 될 것을 자처한다. 김운범은 처음에 서창대의 존재를 마다하지만 그의 탁월한 언변과 판단력에 넘어가 손을 잡게 된다. 둘은 연이어 선거에 이기며 전설적인 기록을 세워나가고 서창대는 김운범의 그림자, 킹메이커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정의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김운범의 가치관과 가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서창대의 가치관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빛이 밝아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그림자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서창대의 불만은 커져가고 그들의 대의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향한 오해를 빚어내게 된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 가있던 김운범의 자택에 테러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표를 얻기 위한 자작극을 서창대가 꾸민 것이라 의심하게 된 신민당은 서창대를 내치기로 결단을 내린다.
영화 '킹메이커'는 단순히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인 정치인과 전략가의 이야기와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전반적인 대한민국의 정치 세계를 다룬다. 국민들을 움직이고 선거를 이기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그 힘을 지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작품 속에는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이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낸 이야기이기에 당연한 추측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해져있는 그들의 결말일지라도 중간중간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와 배신의 서사는 관객들에게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연출이나 촬영 방식도 다채롭고 신선하다. 단순히 역사적인 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흑백 화면과 컬러 화면을 오가기도 하고 중간중간 만담이나 매체 등의 소재들을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시키기에 비는 공간이 없다. 특히 교과서로 배운 사실 이외의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도 친절한 접근을 제공해 주는, 정말 제대로 성의 있게 만든 영화가 나온 느낌까지 든다. 남북 분단을 겪은 우리가 또다시 지역감정이라는 분열의 아픔을 안게 됐는지,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현재까지 서로를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킹메이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메시지다. 국민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국가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찌른다. 민주주의로 오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자'고 목청껏 소리 질렀던 이들의 힘을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사회에 현재진행형인 질문을 던진다. 국민의 힘은 무엇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삼일 운동(1919년 3월 1일 국민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은 국민들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것이 과연 세상을 바꾸었는가. 그렇다면 정의라는 단어는 승리한 자에게만 있는 것인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이념들이 맞부딪히며 생기는 질문들은 뼈아프고도 애석하다.
하지만 이 모든 물음들의 답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잇는 닭장의 달걀 도둑 이야기에 있을 것이다. 달걀 도둑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서창대와 김운범이 내놓은 다른 대답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귓속을 맴돈다면 당신은 다가오고 있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무게의 책임감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12월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