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묵 감독의 ‘흑백’ 독립영화 <소설가 구보의 하루>가 오늘(9일) 개봉된다. 문득 박태원 작가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어본 영화팬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소설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발표한 것은 1934년이다. 박태원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 월북하여 북에서 작가 생활을 계속하며 대작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했다. 여하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흥미롭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구보씨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라는, 그리고 참한 아가씨 선을 보라는 엄마의 걱정 반 근심 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하루밤낮을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늦은 밤, 혹은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구보씨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임현묵 감독은 일제 강점기 룸펜의 방황기를 2021년 버전으로 바꾼다. 무명소설가 구보는 집을 나서며 엄마의 걱정 가득한 소리를 뒤로 한다. 그의 앞날을 걱정하는 출판사 사장은 “네 글도 좋지만, 요즘은 읽지 않아”라며 자서전 대필이라도 하라고 권한다. 굶어죽어도 순수문학을 계속하고 싶은 구보는 그길로 서울 밤거리를 배회한다. 역시 이 사람, 저 사람 만난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친도 만나고, 걷다보니 대학로 연극판 리허설 현장에 이른다.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 소설과 연극과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아도 문학적이고, 연극적이고, 고답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임현묵 감독의 이 영화를 보면 문득 정성일 감독이 생각난다. 한국최고의 영화평론가로 휘황찬란한 말의 성찬을 펼치는 그는 2010년 <카페 느와르>라는 영화를 직접 감독했다. 그 영화는 ‘세계소년소년교양문학전집’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내용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야’가 이어지는 구조였다. 아마, 감독은 계속해서 ‘세계문학전집’을 영화로 만들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모양이다. 임현묵 감독은 이 영화 만들기 전에 김승옥 작가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오마주한 단편 <서울, 2016년 겨울>(2016)을 만들었다. 임 감독도 문학과 영화의 만남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계속해서 원고지와 필름의 만남을 기대한다.
영화 <소설가 구보의 하루>에서 무명소설가로 고뇌하는 주인공은 박종환이 맡았다. 수중에 든 돈을 얼마 없고, 가슴 속 야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자신의 문학세계는 흐릿해 가는 상황에서 하루 동안 서울 곳곳을 배회하면서 무력감과 소외감을 홀로 삭히는 모습을 안성맞춤으로 연기한다. 그런 의기소침한 소설가에게 응원의 손길을 보내는 인물은 연극 리허설무대에서 만난 오랜 친구 이몽(류제승)과 연극배우 지유(김새벽)이다. 박태원의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의기소침한 무명작가는 좋은 벗이 건넨 “좋은 소설을 쓰시오.”라는 말에 작은 행복을 느꼈었다. 무명소설가는 어떤 말에 힘을 얻게 될까. 영화를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최근 개봉한 임정은 감독의 독립영화 <아워 미드나잇>도 한밤의 서울 풍경을 흑백의 필름으로 담아내더니 이 작품도 서울의 풍광을 흑백으로 채집한다. 흑백 화면 안에 담긴 을지로 골목과 종로 거리, 청계천, 익선동, 혜화역 대학로 등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워 미드나잇>도 <소설가 구보의 하루>도 ‘필름다빈’이라는 영화사가 배급한다. 관객이 좀 많이 들어, 독립영화도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