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를 떠올리면 배우 권해효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20년 넘게 서울독립영화제의 사회를 맡아온 그는 영화제의 서막을 알리며 영화 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열정에 대한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특히 배우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들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흙 속의 진주 같은 배우들을 발굴하는 작업까지 시작한 그는 심사위원으로서, 그리고 선배 배우로서도 선한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다.
Q. 배우 프로젝트가 4회차를 맞았다. 이 프로젝트에 관한 감회가 매년 새로울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취향은 다를 수 있고 연기에 대한 취향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인간은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정작 많은 연기자들이 똑같은 연기를 할 때가 많다. 자기를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사람들을 찾는 일이 배우 프로젝트다.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번 프로젝트에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지원 영상을 보냈는데 본선에 든 24명의 사람들에게 사인을 받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스스로 연기에 대해서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Q. 이번 해 만의 특별한 심사 기준이 있었는가?
뭔지 모르겠는데 끌리는 마음에 선택하기도 한다. 하나의 일관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뻔한 흔한 대사들을 할 때, 보다 생각하고 마음을 써서 대사를 고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 배우가 표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배우는 소통하는 직업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텍스트를 읽어내는 직업이다. 좋은 텍스트를 선택하고 좋은 텍스트에 대한 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좋은 대사를 골랐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본심에 오른 사람들은 일관된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Q. 매년 회차가 진행되면서 심사 기준도 조금씩 엄격해지는가?
나 역시 매년 기대치가 높아지다 보니 예심을 진행하는 조윤희 씨도 나도 훨씬 더 엄격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1,2회에 비하면 훨씬 더 상향 평준화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매년 심사 기준이 매년 변하고 있다. 본선에는 와서 편하고 재밌게 하라고 한다. 참가자들이 본선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많이 울기도 하고 부모님도 좋아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어쩌면 생각하는 이상으로 페스티벌이 훨씬 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좀 더 해볼까 고민하고 있다.
Q. 매년 배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참가자들마다 그 해만의 특징이 있을 것 같다. 올해의 참가자들은 어땠는가?
역대 참가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안일하고 게으른 모습들을 볼 때가 있다. 낡은 대사들, 시대에 맞지 않는 말들을 한다. 연기 학원에서 그것만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2000명이 200명 정도가 똑같은 대사만 한다고 생각해 봐라. 배우 프로젝트 1,2회 때까지만 해도 영화 '파수꾼'의 대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별한 영화였고 거기에서 나오는 배우 이제훈, 박정민, 모두 다 스스로 완벽한 캐릭터를 구축했고 자신을 완성시켰던 작품이다. 그러기에 정말로 그 배우들의 대사를 할 때는 완전히 새롭거나 더 잘할 자신이 없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그 대사를 하던 시절의 이제훈의 분위기, 박정민의 무드와 태도만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파수꾼'은 많이 줄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올해는 4분의 1이 엄마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그 해마다의 주제가 있는 것 같다.
Q. 작년 인터뷰를 했을 때 배우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선에 오른 참가자들에게 당신은 이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배우 프로젝트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무용이 됐던 음악이 됐던 운동이 됐던, 어떤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체력도 필요하고 스킬도 필요하다. 일관되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선이 있는데 연기에서는 단정 지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훨씬 더 애매하고 막막하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잘 하고 있는 것이야”라고 이야기 해주는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OTT 시장이 열리고 나서 다양한 작품들이 더 등장하고 있는데 꾸준히 적게나마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배우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독립 영화 쪽에는 영화인들에게라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 독백 페스티벌은 배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60초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난 3년을 거치면서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고 캐스팅이 되고 독립영화도 참여해 수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다. 배우와 대중들과 만나는 지점은 한 번에 잡히지 않는다. 모두가 배우가 되는 것에 있어 시간이 필요하지만 배우 프로젝트는 긴 시간을 줄이려는 작업이 아니라 그 긴 시간을 잘 버티게끔 해주는 작업이다.
Q. 이번 해 배우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으나 내년에 열릴 경쟁에 뛰어들 수많은 연기자들을 위한 팁은 없는가?
내가 뭘 제일 잘 하고 어울리는지를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자기에게 어울리고 정말로 좋아하는 대사를 했으면 좋겠다. 연기의 목표는 자연스러움이 아니다. 각자의 존재 가치를 알 때 가장 자연스럽다. 자연(自然)이 '스스로 자'에 '그럴 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자신의 이유를 가지고 서있는 사람들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고정관념을 깨고 점프하는, 과거에는 송강호가 그랬고 지금은 구교환이 그렇다. 배역들에 대한 뻔한 일반적인 기대와 상상들을 뛰어넘는다. 자기만의 호흡, 시각으로 보는 연기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조금 더 과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Q. 왠지 이 인터뷰를 읽고 잘못 이해해서 다음부터 과감한 감정 연기만 골라서 지원하는 참가자도 있을 것 같다.
자기 계발서를 읽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들 자기가 아는 것 같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서 A4 용지 4, 5장 정도 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안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