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해효는 현재 어떤 때보다도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지난 1일 개봉했던 영화 ‘태일이’(감독 홍준표)의 한미사 사장 목소리 역을 맡기도 했으며 이번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또 한 번 사회를 맡았다. 영화인들의 출발과 성장을 응원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아이콘이자 한 명의 배우로서도 누구보다도 더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Q. 최근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일정도 있지만 극중 한미사 사장 역의 목소리를 맡은 영화 '태일이'도 12월 1일 개봉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한가?
메인 출연진들이 사전 녹음을 하고 그 녹음에 맞춰서 목소리를 입히는 형식을 가졌는데 나는 그때 일정이 복잡해서 해외 촬영하고 나서 완성된 그림에 입을 맞췄는데 전문 성우가 아니다 보니 어렵더라.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방향성도 바뀌고 말의 템포가 바뀌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이전에 영화 '사이비' 같은 경우는 미리 최초로 작업 전에 선 녹음을 하고 그 녹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굉장한 차이가 있더라.
Q. ‘태일이’는 전태일 열사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열사의 연대기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일상적인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여서 가족 관객들에게도 잘 어필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볼 때랑 모니터로 볼 때랑은 달랐다. 대표님께서 많이 말씀하셨겠지만 50년 전의 이야기라서 요즘의 세대들에게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다. 나 또한 유년기 때 벌어진 일이었고 정작 20대가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어서 모두에게 그런 고민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족이 손잡고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한 가난하고 배움도 짧았던 소년이 이타심을 가지고 했던 행동들의 실재했던 기록이 나올 때 주는 묘한 감동이 전해졌으면 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한 명이라도 더 보게 하고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Q. 그림체를 보면서 만화 ‘검정고무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정만화 같고 이전 추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걱정도 있었다. 치열하고 살기 힘들었다고 하는 봉재 노동자의 삶, 열악한 공간들이 그림체에 담길 것일까 라는 큰 눈에 순정만화 같은 얼굴들의 모습과 실제 전태일이 살았던 모습하고 거리에 대해서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것은 감독과 제작자가 돌파해낸 구간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의 느낌이 묻어난다. 불의에 항거하거나 억울함을 가졌던 것은 전태일이 가족간에 갖고 있었던 유대와 좋은 기억들이 강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 점을 그림체가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Q. ‘태일이’의 개봉도 경사지만,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도 그러하다. 20년 넘게 개막식 사회를 봐왔다. 이제는 거의 ‘서울독립영화제’를 떠올리면 권해효라는 이름이 같이 떠오른다. 아이콘으로서 감회가 매년 새로울 것 같다.
그렇진 않다.(웃음) 개,폐막식은 우리가 잔치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실제 영화제의 꽃은 폐막식이다. 특히 경쟁이 있는 이런 영화제라는 것은 환희와 박수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폐막식이 흥분되고 즐겁다. 아이콘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지내왔다. 30대에 시작했는데 5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으니 10년 전만 하더라도 ‘언제까지 하지, 젊은 영화제에서 나이든 사람이 오는 것이 괜찮은가’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생각을 바꿨다. 해외 영화제가 됐든, 야구중계자가 됐던 한 팀에서 오십 년 넘게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런 것처럼 새롭게 독립영화 잔치에 온 친구들에게 "어서와, 환영합니다"라고 손 벌려 주는 사람이 이 머리 하얀 아저씨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서울독립영화제는 배리어프리고, 비청인 관객들 또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영화 축제다. 매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아끼지 않으며 ‘태일이’ 같은 영화에 참여하는 권해효 배우 또한 서울독립영화제와 같은 상징성을 띄는 것 같다.
이번에도 유튜브 생중계라는 전제가 있다 보니 수화 통역도 처음 같이 하고 조금씩 디테일하게 신경써 나가고 있다. 이번 코로나 2년을 지나면서 영화계 전체가 겪고 있는 대혼동이 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극장으로 와서 영화 보는 일을 일상처럼 과연 할 수 있을까 고심한다. 각자의 방에서 모바일로 영상들을 보고 한 달에 한 두번 극장가는 일이 대신 OTT 요금을 내는 시대에 시네마와 콘텐츠들을 정리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최근 2년 동안 객석 점유율이 정해져 있었고 영화제들마다 일종의 위기 의식들이 남아 있다. 그런 면에서도 독립영화축제에서 관객도 배려해야 하고 감독들 영화에 대한 배려도 세심함이 더 필요해진 때인 것 같다.
Q.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영화인들이 이전보다 많이 모이지 못하는 일에 대해 서글플 것 같다.
영화제는 페스티벌이다. 모여서 그 영화에 대해 축하해주고 박수 치고 같이 맥주 한 잔 건배한다. 상영 이후의 만남이 제한되다 보니 최근 2년 동안 이런 저런 영화제에 갔지만 그 영화제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었다. 분명 영화를 봤는데도 영화 전체에 대한 기억이 없더라.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보고, 서로 격려하고 축하해주는 자리인 것 같다. 이전의 영화제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