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직자들'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이다. 경제규모는 커지지만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일자리도 기간이 지나면서 다운그레이드 되고, ‘구직자들’은 더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펼쳐야하는 현실과 마주친다. 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황승재 감독의 <구직자들>이 방송된다. 삶의 막바지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2220년이다. 지금부터 200년 뒤의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200년 뒤의 한국’을 다룬다고 해서 SF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지금의 한국이다.
200년 뒤,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AI자율주행자동차가 돌아다니고, 모바일은 사람 손을 떠나 어떤 식으로 신체와 결합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데 <구직자들> 속 2220년의 서울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아니, 있다. AI, 복제인간의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구직자들’이 독립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독립영화는 일단 저예산이니까!)
2220년이 되면 복제인간들이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이용된다. 황승재 감독이 그린 미래의 모습은 이러하다.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인공’이 등장, 아니 만들어진다. 복지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1인 1인공’ 의료서비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마도 아기가 태어나면 제대혈을 보관해두었다가 이후 활용한다는, 그런 개념의 확장인 듯하다. 스페어를 준비해두는 셈이다. 그런데, 부작용도 생긴다. ‘원본’의 인간은 자신의 ‘인공’을 위해 매달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한다. 그러다가 유지를 못하게 되면(원본이 자살하거나, 실직자가 되어 보험료를 지불 못하게 되면) 인공은 내버려지는 것이다. 그런 ‘인공’이 노동시장에 쏟아지더니 나중엔 대부분의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그나마 있던 괜찮은 일자리를 잃어간다. 정규직에서 하나씩 밀려나더니, 결국 벼랑에 내몰리게 된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다. ‘원본’ 인간 정경호는 지금 절망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년(강유석)을 만나 함께 구직활동에 동행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 청년이 ‘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구직자들'
영화 [구직자들]은 AI시대가 몰고 올 ‘부정적’ 미래세상을 참신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저예산독립영화다 보니, ‘인공’의 디지털스러운 모습은 만나 볼 수 없다. 그냥, 인간 모습 그대로이다. 여하튼 ‘원본’ 인간과 ‘클론’ 인공이 만나 함께 ‘구직난’을 겪으면서 시대상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 정경호는 아들의 병원비를 위해 자신의 건강보험, 그리고 자신의 인공을 포기한 상태이다. ‘인공’ 강유석은 자신을 버린 원본 인간이 누구인지 모른 채 노동시장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는 진짜 사람이 되고 싶고, 진짜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워낙 인간 같아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AI, 혹은 인간의 영역을 탐내는 존재 말이다. 컨셉은 훌륭하고 철학적이다.
황승재 감독은 극초저예산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미끈한 CG의 ‘인공’은 만나볼 수 없고, 인간과 인공이 만나 펼치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대신 굉장히 많은 인터뷰 장면이 들어간다. 감독은 연기학원 섭외, 지인 동원 등의 방법으로 ‘블록버스터 급’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정경호-강유식의 2인극과 함께 이들 ‘인터뷰 장면’이 영화를 채워 넣는다. 실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컨셉은 참신하고, 내용은 현실적 고뇌가 가득하다. 아마도, 수십 명의 인터뷰 대상자가 진솔하게 밝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듣다보면 분명 자신의 이야기도 몇 개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편의점에서 ‘원 플러스 원’ 상품을 사먹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한다. 애잔하다. 오늘밤 KBS [독립영화관]에서 방송되는 영화 ‘구직자들’은 지난 연말 극장에서 아주 잠깐 걸렸던 독립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