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그물'에 걸린 것은..
‘충무로의 야생동물’ 김기덕이 최근 22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1996년 <악어>이후 20년 동안 정말 쉬지도 않고 가열하게 투쟁해오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아주 특이하게도 ‘15세이상관람가’라는 ‘포근한’ 심의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항상 따라다니던 논쟁거리도 이번엔 그다지 없다.
영화 ‘그물’은 한 북한 어부의 뜻밖의 남한표류 이야기이다. 북에서 아내와 어린 딸과 나름 행복하게 살던 류승범은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지척엔 ‘남조선 땅’이 보이지만, 그는 단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그날 일용한 물고기만 잡으면 된다. 그런데, 스크루가 그물에 걸리고, 어찌 손써볼 도리도 없이 남으로 밀려온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남쪽 기관원들. 국정원 관계자는 그를 붙잡아두고 심문하기 시작한다. 간첩인지 아닌지. 인간적인 이원근이 있고, 악마 같은 김영민이 있다. 류승범은 단지 자신은 표류되어 왔을 뿐이라며 얼른 북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국정원은 이번엔 ‘남한으로의 전향’을 윽박지른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 국정원은 그를 명동 번화가에 풀어 본다. 남조선의 휘황찬란한 자본주의 성과물을 보고, 감동받고, 주저앉으라고. 하지만, 류승범은 단호하게 북을 택한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단순하게 찍는 사람이다. 하나의 ‘스토리’가 떠오르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북에서 표류한 어부가 국정원의 회유와 공작에 흔들리지 않고 귀환한다. 그런데, 이번에 북의 안전보위부로부터 남쪽에서의 행적을 추궁당하는 난처한 입장에 놓인다.’ 복잡한 남북 이야기는 단순한 ‘표류어부 심문과정’을 통해 희화적으로 펼쳐진다.
류승범은 북으로 넘어갈 때 남조선에서 준 옷과 선물을 모두 거부한다. 하얀색 속옷만 입고 북으로 돌아간다. 아주 오래 전 (1978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남으로 표류한 북한어부들은 선물을 한 보따리 안고 북으로 보내진다. 그들은 판문각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선물을 내동댕이치며 만세를 부르면 ‘북의 수령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 이미지는 남과 북의 사상적 경직성, 혹은 옹졸함과 자기 정권의 우월감에 대한 유치한 퍼포먼스를 나타내는 우화였다. 살기 위해 쇼를 펼쳐야하는 인민의 비애. 김기덕 감독은 북으로 돌아간 류승범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북도 남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다만 ‘가난함이 더해진’ 비굴함이 측은하다.
류승범의 현실적인 선택은 최인훈의 ‘광장’을 연상시킨다. 남과 북, 그 어디도 아닌. 그렇다고 새로운 세상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으로 종결되는 비극적 현실인식. <광장>은 1960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말이다. 북과 남의 사상적 결박은 여전히 구시대 어느 시점, 어느 지점에 묶여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톤다운된 김기덕의 미학도 성장을 멈췄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