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가 어느 날 시청자에게 훅 들어왔다. 찾아보면 2018년 tvN 드라마 [마더]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 이설악을 연기했었다. 그 전에 넷플릭스의 [센스8] 시즌2에서 문 형사로 출연했었단다. 2018년 KBS [슈츠]에 이어 [최고의 이혼]에서 눈에 띄었다. 그리고 tvN [60일, 지정생존자]와 [멜로가 체질]을 거치더니 올해 넷플릭스 화제작 [D.P.]에서 얄미운 임대위를 연기했었다. 그리고 24일 개봉하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섹스컬럼을 쓰는 잡지사 기자로 출연한다. 전종서와 위험한, 혹은 아슬아슬한, 아니 현실적인 ‘연애 빠진 로맨스’에 도전한다. 손석구 배우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있을법한 이야기가 최대 강점인 것 같다. 특별한 게 있다기 보다는 주변의 이야기일 것이다. 쟤는 저랬다. 이랬다. 이런 이야기 있잖은가.” <연애 빠진 로맨스>는 그런 이야기란다.
Q.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캐릭터의 나이 때문에 고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애 빠진 로맨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손석구: "연령대에 대한 고민은 모든 작품에 해당한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지금 제 나이에 맞게 들어오는 역할은 거의 없다.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어서 맞춰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번에는 거의 7~8년 정도가 차이가 나는 것 같아 부담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 영화는 그 나이의 청춘이 가지는 리얼리티를 보여야 해서 고민이 더 됐었다. 하지만 정가영 감독님과 꼭 하고 싶었다. 원래 자영과 동갑이었다가 조금 올린 정도로 조정했다“
Q. 이른바 MZ세대가 느끼는 사랑과 욕망을 대담하게 표현했다. 실제 배우의 연애관은 어떤지.
▶손석구: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 연애관이 있다면, 솔직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중 박우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제가 훨씬 더 로맨틱하지 않을까. 저는 나이도 먹고 했으니 예전보다 현실적인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지금은 연애에 대한 로망은 없다.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할 것이니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영화 속 ‘우리’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것이다.”
Q. ‘우리’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한 부분이 있었다면.
▶손석구: “촬영장에 가면서 항상 생각한 게 있다. 얘는 나름의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소설가로서 자기 글을 펼쳐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을 해봐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자격지심이 있는 친구일 것이다. 그걸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 이 사람은 여자와 섹스를 하려는 그 관계를 넘어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애라고 생각했다.”
Q. 동안으로 보이기 위해 띠러 노력을 한 게 있는지.
▶손석구: “이 영화를 위해 레이저 시술도 받고, 피부과도 다녔다. 그런데 나온 걸 보니까 동안은 아니고 그냥 제 나이 또래로 나온 것 같다. 노안인 사람도 있고 동안인 사람도 있잖은가. 너무 꾸미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다.”
Q. 캐릭터 표현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손석구: “하나의 정서를 정하면 그걸로 쭉 간다. 연기할 때 항상 그랬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는 여러 캐릭터가 있고, 나는 그중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랑을 무척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관객들이 볼 때 어떻게 하면 가장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제일 사랑을 못할 것 같은 사람으로 잡ᄋᆞᆻ다. 찌질한 놈으로 그리려고 했다. 자기 주장도 잘 못하고 사랑을 쟁취 못할 것 같은 인물로.”
Q. 함께 공연한 전종서 배우에 대해 한 말씀.
▶손석구: “나랑 비슷한 것 같았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도 있고, 겉치레를 못한다는 점에서. 종서도 배우생활하기 힘들 것 같았다. 둘 다 웃긴 걸 좋아했다. 선입견 같은 것 없었고, 잘 맞았다.”
Q. 정가영 감독님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석구: “모든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감독이 있다면 나는 배우로 쓰이고 싶다. 정가영 감독에겐 항상 감독만의 작풍이 있으니 그것에 일조하고 싶었다.”
Q.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데이트앱(데이팅어플)을 통해 만난다.
▶손석구: “나는 그런 걸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만나든 그게 우연이든 인연이든 만났으니. 제 친구도 그걸 이용했었는데 나중에 상처받더라. 그래서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쨌든 저랑은 개인적으로는 안 맞아요.”
Q. 손석구 매력의 재발견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손석구: “그런 이야기 들으면 기분이 좋죠. 새것은 좋은 거니까. 배우로서 그만큼 수명이 연장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런 것에만 노력을 기울이면 부담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좋은 감독님 만나고, 전종서 배우 만나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면 그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Q. 손석구만의 캐릭터 창조방법이 있는지.
▶손석구: “음, 캐릭터에 다가가지는 않고 오히려 내게 가져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느냐는 결국 대본 안에 있다. 작품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 풀린다. 가장 어울리지 않을법한,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인물을 우선 설정해 놓는다. ‘나는 어땠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식으로 저의 모습을 찾아본다. 그렇게 분석한다. 이번엔 나의 20대 때 모습을 떠올렸다. 그땐 사랑을 못했었지. 왜 그때 못했을까. 그렇게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연기에 사용하는 것 같다.”
Q. 영화 속 박우리는 지질하다고 할 수 있다. 너드미의 완성판이다. 그런 면이 있는지.
▶손석구: “저도 글 쓰는 것 좋아한다. 내가 연기했으니 비슷하게 나왔을 것이다. 나도 혼자서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게 닮은 것 같다. 그리고 박우리를 이야기하자면 실수가 있었지만 의도가 나빴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해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남녀를 불문하고 호감을 갖게 하는 것 같다.”
Q. 무겁지 않은 로맨스가 잘 어울린다. 딥한 멜로나 치정 멜로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지.
▶손석구: “딥한 멜로도 하고 싶다. 치정 멜로가 뭐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멜로는 다 좋아한다. 대본만 좋으면 하고 싶다.”
Q. 정가영 감독이 우리 역으로 홍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손석구:“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했는지, 제작사 분 의견이었는지 모르겠다. 회사를 통해 대본을 받은 것은 아니다. 친구를 통해서 받아보고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저를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Q. 실제로 자영처럼 솔직한 사람을 만난다면? 우리를 연기하며 경계했던 부분이 있다면.
▶손석구: “저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자영 같은 여자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역할을 연기하며 마초 같은, 우악스럽고, 안하무인 같은 캐릭터는 보이지 말자라고 생각했었다.”
Q. 질문이 조금 조심스러운데, 남자 배우 이름이 굉장히 속된 표현인 것은 알고 있었는지.
▶손석구: “처음엔 몰랐다. 감독님이 알려주었어요.”
Q. 정가영 감독과 함께 작업한 소감.
▶손석구: “정 감독님은 세트플레이를 좋아하신다. 딱 정해진 것 보다는 참신한 것을 추구하신다. 정 감독님 앞에서 연기하는 게 부담이었다. 작품을 찍으면서 느낀 것은 정 감독님이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 진짜 리얼하게 잘 하셔서 내가 가짜로 연기하면 들통 날 것 같았다. 그게 처음에 부담이었던 같다. 처음엔 좀 쫄았다. ”
Q. 로맨스 영화는 배우 간의 호흡이 아주 중요하다. 이번 영화의 경우 대사나 장면이 민망했을 법도 하다. 어떤 식으로 호흡을 맞춰나갔는지.
▶손석구: “민망한 것은 없었다. 테이크를 아주 많이 갔었다. 기계적으로 자꾸 하니까 민망한 것은 사라진 것 가다. 호흡도 넓은 것에서 점점 좁혀 가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맞춰진 것 같다.”
Q. 술집 장면이 좋았다고 한다. 영화에 술 마시는 장면도 많이 등장하고. 어땠는지.
▶손석구: “나는 술을 잘 안 마신다. 거의 안 마신다. 회식자리가 있으면 마시긴 하지만 제 주위에 술 마시는 사람이 없다. 요즘은 코로나라서 더 안 마시는 것 같다. 그래도 연기를 해야 하니까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잔은 저렇게 잡고, 분위기는 저렇게 하구나 식으로. 어쨌든 술 마시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
Q. 단편 '재방송'으로 감독 도전을 했다. 연출을 한 소감은. (손석구 배우는 왓챠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에 포함된 단편 ‘재방송’의 연출을 맡았다)
▶손석구: “연기가 아니라 연출을 하면서 지켜보니 테크니컬하게 하는 부분이 많더라. 그런 과정을 한번 경험하니 연기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았다. 나도 연기하면서 저걸 한 번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막상 현장 가보니 똑 같아지더라. 안 달라져요. 예전에 하던 대로 하게 되더라. 연기는 10년 했고, 연출은 이제 한 번 한 것이니 그런 모양이다.”
Q. ‘재방송’ 정말 재밌게 보았다. 연출 데뷔작이 너무 매끈하게 잘 빠진 것 같다. 연출의 꿈은 있는지.
▶손석구: “아이구 감사합니다. 연출의 꿈은 있어요.” (어떤 작품?) “일단 제 관심사는 가족이다. 늘 가족을 향한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할 때 으레 느껴지는 그런 따듯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족이라도 무섭다. 가족은 인격을 형성하는 가장 작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Q. 올해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어떤가.
▶손석구: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작품을 많이 했다. 한 달에 하루 이틀밖에 못 쉰 것 같다. 그렇게 찍은 작품들이 잘 수확되었으면 좋겠다.”
Q. 이제 마흔이 된다. 40대의 손석구가 보여줄 연기는 어떤가. 내년 목표나 포부가 있다면.
▶손석구: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고 싶다. 40대가 된다니. 어른은 아닌 것 같은데. 금세 피곤해지는 것 보니 나이가 먹긴 먹는 모양이다. 생각도 고리타분해지는 것 같고. ‘맞어, 옛날에 그랬어’라는 생각도 들고. 40대가 되면 연기스타일도 바뀌겠죠. 배우들은 나이 들면 연기스타일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Q.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는 더 젊은 시절이다. 손 배우는 그 시절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았나.
▶손석구: “비슷했다. 우리 세대가 그 나이에 하던 고민이었다. 취직도 그렇고. 저는 지금 연기로 벌어먹고 사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자취방에 갇혀서 영원히 캐스팅이 안 될 줄 알았다. 30대에 하는 고민은 가볍지 않다. ‘우리’는 대개 똑똑하다. 결론을 내렸잖아요. 비슷한 것 같다.”
손석구가 출연하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24일 개봉한다. 의외로 15세관람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