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결산하는 독립영화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2021이 다음 주, 25일(목)부터 12월 3일까지 9일간 열린다. 한국 독립영화의 든든한 백(TV스크린) 역할을 하고 있는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오늘 밤, 서울독립영화제 특별기획으로 ‘변중희 배우전’을 내보낸다. 변중희 배우는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한국 독립영화계의 스타이다. 변중희 배우가 출연한 <실버택배>,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도와줘!> 등 세 편의 단편영화가 시청자를 찾는다. 이중 <도와줘!>(감독 김지안, 2020)은 작년 BIFAN과 미쟝센단편영화제 등에 상영되었고, 7회 카톨릭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상영시간 25분의 단편이다.
곽민규 배우가 연기하는 ‘공시생’ 종수는 지금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다.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채근하고, 각종 공과금이 밀려 가스도 안 켜진다. 갖고 있는 수험서를 헌책방에 팔아도 몇 푼 손에 쥐지도 못한다. 문틈을 막고 자살을 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절망적 순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옆집 사는 할머니 정애(변중희)이다. 치매 할머니는 집 비밀번호도 외지 못한다. 그렇게 종수는 할머니를 도우며 비밀번호를 알게 되고, 할머니의 통장도 손에 넣게 된다. 종수는 치매 끼가 살짝 있는 할머니를 상대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한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종수는, 치매 할머니를 속일 수 있을까.
영화 [도와줘!]는 연말, 한밤에, 모든 것이 뜻대로 안되어 절망에 빠진 사람이 보면 작은 삶의 불꽃을 보게 되는 작품일 것이다. 영화 초반부, 종수는 끔찍한 -그러나 이미 익숙한 - 방법으로 삶을 정리하려고 한다. 우려스러운 장면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종수의 절박함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그가 치매 할머니를 한 편으로는 돕고, 또 한 편으로는 범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모습에 조마조마해진다. 할머니의 사정도 딱하다. 할머니가 종수의 손에 쥐어 주는 사탕. 이 따뜻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힘든 삶, 고달픈 생. 바로 근처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김지안 감독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나를 돕는 것이 되었던 순간들이 많았다.”며 이 영화의 기조를 소개했다. 오늘밤 12시 10분에 KBS 1TV를 통해 방송된다.
■■■ [인터뷰] 김지안 감독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
Q. <도와줘!>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했다.
▶김지안 감독: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느꼈던 것들이 시나리오의 출발점이었다. 할아버지를 통해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저의 삶의 태도도 돌이켜보게 되었다. 제가 할아버지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할아버지께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동시에 자신을 돕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Q. 할머니 정애(변중희)를 만나게 되는 가난한 공시생 종수(곽민규)는 어떤 사람인가.
▶김지안 감독: “종수는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움직여서 실수투성이인 사람이다. 어딘가 늘 모자라고 부족하고 어긋나는 사람, 그렇게 혼자서 아등바등하다가, 도와달라고 좀 더 쉽게 말할 수 있었던 순간을 지나쳐 버린 사람이다. 할머니 정애는 모르면 모른다고,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말해서 어려운 상황을 빠르게 타개해 나가는 사람이다. 둘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로 설정했다.”
Q. 곽민규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김지안 감독: “곽민규 배우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어딘가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종수가 하는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지만 너무 밉게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그저 미련하고 답답한 인물로 보이는 것도 원치 않았다. 곽민규 배우는 극 중 종수와는 달리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한다. 캐릭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때에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편했다. 코믹 연기에 대한 센스도 남달라 함께 작업하며 제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종수라는 인물을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Q. 정애를 연기한 변중희 배우에 대해서.
▶김지안 감독: “변중희 선생님이 출연하신 영화들을 보고 함께 작업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정상 곽민규 배우를 먼저 만나게 되었는데, 곽민규 배우도 변중희 선생님과 연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더더욱 확신이 생겼고, 간절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뵈러 갔는데,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기뻤다.”
Q.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지안 감독: “소매치기를 쫓아 달릴 때 정애가 종수를 앞지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현장에서 인물 동선을 수정하여 촬영한 장면이다.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선생님께서 구경 나온 동네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며 놀아주고 계셨는데, 아이들이 씩씩거리며 분해할 정도로 너무 잘 달리셨다. 그 모습을 보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종수보다 어쩌면 정애가 더 잘 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동선을 수정한 것이다. 대사의 작은 부분까지도 선생님께서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
Q. 감독님이 생각하는 변중희 배우의 매력은?
▶김지안 감독: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와 눈빛, 넘쳐나는 아이디어와 유연한 소통 방식의 배우이다. 자체가 ‘멋있는 사람’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들이 배우로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중학교 교사로 오랜 세월 교직에 몸담으셨다가 정년퇴임 후에 배우로 활동하신다. 연락을 드릴 때마다 새 작품을 찍고 있다. 교사로서는 베테랑이지만 배우로서는 여전히 ‘신인’이라고 하시면서, 늘 새로운 경험, 새로운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는데, 정말로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다.”
Q. 차기작 계획은.
▶김지안 감독: “편안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겁이 많은 편이라 자극적인 장면들을 잘 못 본다. 저 같은 겁쟁이도 실눈 뜨지 않고 볼 수 있는, 무해하면서도 재미있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Q. [독립영화관]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지안 감독: “‘변중희 배우전’이라는 타이틀로 <도와줘!>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멋진 사람을 알게 되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독립영화관으로 선생님을 알게 되신 관객 분들도 분명히 같은 생각을 하게 되실 것 같아요. ‘변중희’라는 배우의 이름을 꼭 기억해 주세요!”
*** 김지안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