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년의 류승룡이 진짜 중년의 삶을 완벽한 연기로 소화했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감독 조은지)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몇 년 동안이나 글을 쓰지 못하고 침체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작가 김현(류승룡 분)의 중년의 위기를 오롯이 담아낸 작품이다. 이혼한 뒤 새롭게 얻은 가정에서도 자녀와 부인을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사는 그는 슬럼프에 빠져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계속해서 회피하게 된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자신을 사랑하는 학생 유진(무진성 분)을 만나며 성장하는 모습을 마치 실제 모습처럼 훌륭하게 연기했다.
Q.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말 그대로 장르만 로맨스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장르가 배우에게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 같은데 대본을 봤을 때 이 작품이 어떤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장르를 명명하기가 힘들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닮아있는 것 같다.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 듯이 이 작품에 여러 명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누아르도 있고, 에로도 있고, 재난도 있는 것 같다.(웃음)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 코미디라는 생각이다.
선이 굵은 연기만 했는데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관계와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조은지 감독님과는 다른 작품에서 만났었고 회사 동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로지 시나리오만을 통해서 재밌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단편을 보고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하게 됐다.
Q. 작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김현을 연기했다. 중년의 고민을 오롯이 안고 있는 인물이고 기러기 아빠인데다가 생계의 전선에 선 고독한 인물이다. 대본을 보고 김현이라는 역할이 어떻게 다가왔는가?
고단한 삶을 살았고 슬럼프도 있고 한때 잘나가던 영광도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부분도 있고, 비호감인 부분들도 있고, 현실적인 부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얻어야 하기에 감독님께서 장치를 넣어서 맞거나 이런 후련한 부분들을 넣어줬다.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보여주면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우리는 어떤 관계에 살고 있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 안에서 치유가 되고 성장하기도 하지 않나. 김현은 누구나 투영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Q. "50대는 지천명이라지만 내 인생 XX 허접해"라는 대사가 정말 크게 와닿았다. 그냥 작품을 본 것이지만 마치 중년의 삶을 미리 들여다본 느낌마저 들었는데, 실제 본인이 가진 중년의 고민과 김현이 지닌 중년의 고민을 비교한다면 공통되는 것이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다른 점들이 있는가?
다른 점도 있고 공통된 점도 있다. 김현은 아들을 위해서, 미국에 있는 부인과 아이를 위해서, 직장에서 교수로서, 생계 전선에 서있다. 그 친구는 누구한테 위로를 받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었다. 나도 어느덧 사위로서, 아들로서, 아빠로서, 배우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다 보면 내가 이렇게 힘들 때 김현과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었다. 연민이 느껴졌고 짠했다.
Q. '장르만 로맨스'를 보며 대사의 말맛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직업'에서 본 배우들과의 티키타카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장면들도 있었는데 (아들과 문을 두고 다투는 신처럼) 혹시 지금도 촬영하면서 기억나는 신이 있는지 궁금하다.
모든 장면들이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아들하고 투닥거리는 장면도 기억나고,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도 굉장히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서툴게 위로를 하다가 나중에는 '많이 아프겠다'고 말하는, 그 와 중에 성장한 모습도 보인다. 유진과 옥탑방에서 투닥거리는 에피소드, 해프닝들도 즐거웠다.
Q. 애드리브 장인인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니 촬영장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본인도 준비해 간 애드리브나 촬영 에피소드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52시간 근로가 있고 콤팩트하게 끝내야 하는 기간이 있기에 물론 재밌게 찍었지만 시간들이 정확히 있어서 생각보다 긴장 속에서 몰입하고 치열하게 찍었다. 그 가운데 웃음들이 터지긴 했지만 이 시나리오 자체가 말맛이 많아서 애드리브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몸짓으로 하는 애드리브는 했다. 호다닥 뛰어간다던가 옷을 치켜 입고 간다던가(웃음) 그 여러 가지 몸짓들은 그때그때 그렇게 했다.
Q. 영화 속에 '관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유진에게도 '문학하는 애가 관계에 관심이 없어서야 되겠냐'고 꾸짖냐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던 반면에 김현은 관계에 대해 무심하고 아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혼한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진이 자신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했을지 초반에 회피하는 모습만 보인다. '장르만 로맨스'는 관계를 잘 알지 못했던 김현이 성장하는 성장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배우 류승룡이 아닌 중년의 인간 류승룡에게 있어서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맞다. 김현도 아빠고, 가장이고, 교수고, 소설가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서툰 자신이 많이 배운 것 같다. 책임감 있게 노력했지만 방식이 너무 서툴렀던 것이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 있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괴로운 마음이 이해가 된다. 배우들이 말하는 연극에서 대사 까먹는 꿈을 꾼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을 나는 아직까지 꾼다.(웃음)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작품에 담긴 것 같고 투영해서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져도 더워지고 조금만 떨어져도 타져버리지 않나. 그것처럼 관계는 적절한 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문제다. 살아보니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Q. 이하늬 배우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가끔씩 등장해서 근황을 알려주는 게 좀 반가웠는데 정작 본인은 SNS나, 그를 통한 다른 자체 콘텐츠 제작할 생각이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SNS 열심히 한다.(웃음) 어제도 엄청 열심히 올렸다. 공식적인 근황이나 그 외에 나의 생활들을 자주는 아니지만 올린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 제작은 어렵더라. 더 큰 콘텐츠 제작의 배우로서 참여하고 있어서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Q. 개인적으로 류승룡 배우님이 가장 각인에 남았던 작품이 '내 아내의 모든 것'이었다. 임수정 배우와 함께 소젖을 짜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이번 작품도 이혼을 두 번이나 할 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중년으로 나오고 치정 멜로 작품 속 역할도 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 그런 마성의 역할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웃음)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사하게도 '내 아내의 모든 것' GV를 했다. 그런데 지금 개봉해도 얼마든지 공감이 될 만큼 잘 만들었더라.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더 공감하게 되기도 했다. 임수정 배우의 대사들을 통해서 많이 느꼈다. 그런 만큼 지금 느끼는 감정이나 감수성을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연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있겠다.(웃음)
*한편,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오는 11월 1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