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전후하여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한국영화 초고속 성장의 밑바탕에는 충무로 영화인의 노고와 그 전(前)의 아카데믹한 열정이 깔려있다. 한국영화(산업)의 실무자를 양성하는 기관 중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는 영화에 열정을 가진 재원들이 단편과 장편을 실제 만들어보면서 ‘영화’와 ‘영화산업’에 자연스레 진입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롯데시네마 타워월드에서는 ‘KAFA 십세전’이라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KAFA에서 장편을 만드는 과정을 도입한지 10년을 맞이하여 열리는 행사이다.
오늘밤 12시 35분에 방송되는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서도 KAFA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판타스틱 단편선 기획’의 첫 번째 시간으로 <하트바이브레이터>(엄태화 감독,2011), <아귀>(송우진 감독,2014), <균열>(안용해 감독,2014), <침입자>(박근범 감독,2014)가 방송된다. 이중 엄태화 감독의 <하트바이브레이터>를 소개한다.
엄태화 감독은 동생 엄태구가 출연한 <잉투기>로 각광받았다. 엄태구는 이후 TV드라마와 영화에서 ‘비주얼’에 어울리는 개성강한 연기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 형제와 류혜영은 <잉투기>와 함께 단편 <숲>과 <하트바이브레이터>를 찍었다. <숲>은 올 1월에 독립영화관 시간에 방송된 적이 있다.
<하트바이브레이터>는 10분짜리 단편이다. 방과 후 고등학교의 한 교실을 배경으로 단 세 명의 배우만이 등장하는 소품이다. 아마도, 무슨 일로 태구가 싸웠고, 벌로 청소를 하게 되었다. 교실에 남아있는 석재와 이야기를 나눈다. 석재는 주삣거리며 자신도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왠일인가 싶은 태구는 석재의 몸을 훑어보고는 몇 가지 발레자세를 잡아본다. 이때 혜영이 교실에 들어와서는 “나 발레 배우고 싶어”라고 말한다. 석재 때와는 달리, 태구는 혜영에게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발레’를 둘러싸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미묘한 감정이 캐치되는 순간이다.
소녀적 감성이 묻어나는 석재, 남성적 매력의 태구,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긴장감을 북돋는 혜영까지. 10분의 짧은 시간에 감독은 누가 누구를 마음에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의 아슬아슬함이 어찌될지 ‘밀당의 묘’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교실에 혼자 남아 뜻밖의 발레모습을 보여주는 홍석재도 엄태화처럼 단편영화와 충무로 스태프로 차곡차곡 캐리어를 쌓아온 영화감독이다. 작년 변요한, 이주승, 류준열 주연의 <소셜포비아>로 주목받았다.
<하트바이브레이터>는 독특한 감성의 틴에이지 퀴어영화다. 이 영화는 2011학년도 한국영화아카데미 28기 단편제작실습작이다. KAFA는 단단하고도,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박재환)